시민권 : 누가 시민이 되는가 - 시민권의 기준과 정당성의 재설계
엘리자베스 F. 코언.시릴 고시 지음, 권용진 옮김 / 씨아이알(CIR)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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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인 엘리자베스 F. 코언은 미국 펜실베니아 주, 스와스모어에 위치한 사립 인문 대학인 스와스모어 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 학사 학위를 수여 받고, 이후 예일대 대학원에 진학해 2003년에 정치학 석사, 철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2004년에 시라큐스 대학의 맥스웰 시민 및 공공정책 연구소의 교수진으로 합류하고, 2010년 여름에는뉴욕 대학의 와그너 공공 정책 연구소의 방문 연구원으로, 2014년부터 2015년까지는 러셀 세이지 재단의 방문 학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2009년부터 최근까지 시민권과 민주 정치라는 주제로 여러 논저를 출판했고,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 정치학회지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의 부편집자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다른 공저자인 시릴 고시는 1998년, 인도 콜카타의 자다브푸르 대학에서 정치학 학사를 취득하고 이후, 2년 뒤인 2000년에 국제 관계학 석사 학위 마칩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미국 시라큐스 대학의 맥스웰 시민 및 공공 정책 대학원에서 정치이론과 미국 정치를 전공하여 2005년에 석사 학위를, 2008년에는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2017년에는 뉴욕 대학의 로버트 F. 와그너 공공 정책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MPA)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연구 분야는 미국 정치 사상, 정체성 정치, 다문화주의, 공법, 인권, 시민권, 이민 등을 아우르고 있으며, 동성애자들과 미국내 LGBT+ 권리 정치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의 공동 저작인 이 책은 원제, "Citizenship"으로 지난 2019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5년 11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저명한 두 학자의 공동 저작물인 이 책은 오늘날 많은 관심과 논란을 낳고 있는 '시민권'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고민을 해보기 위해 출간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공통된 의견으로 작금의 세계에서 이 시민권은 이론적인 측면의 구상이나 분석보다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작동하고 더불어 어떠한 한계를 갖고 있는지 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었는데요. 저는 이 글의 1장과 2장에서 논의되는 바와 같이, 이 시민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과거 계몽주의와 이를 통해 연계된 자유주의적 맥락에서 발전하고 이해되어 왔으며, 이후 국민주의적 국가의 구축과 주요 체제인 자유 민주주의 하에, 시민권이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주목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글에서도 인용되는 바대로, 과거 한나 아렌트의 "권리를 가질 권리"는 보편적 인격을 가진 모든 인간에게 어떻게 보면 사활적 문제로 이는 현대적으로 재조정된 시민권의 기본 가치와 상당히 결부될 수 밖에 없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현재는 이 '시민권'이 기존 사회의 시민들과 최근에 유입된 이민자들과의 구분에서 특히 이들의 배제를 위해, 어느 정도는 작동되고 있는 것 만큼 우리는 '현실에서의 시민권'을 이 시점에서, 재인식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예를들어, 어느 국가의 '여권'을 갖게 된다는 의미는 단적으로 기본적인 시민권에 대한 이해를 돕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이 '혈통주의'에 기반한 시민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국적을 취득하고 성인이 되면 자유롭게 여권을 만들 수 있는 권리가 자연스레 이어집니다. 하지만 기존의 국적을 뒤로 하고 현실의 여러가지 이유로 다른 국가로 이주해 소위, '시민권을 취득한다'는 의미는 전자와는 달리,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국적의 교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시민권의 국가의 사회적 관념, 정치, 종교, 문화 등을 이해하고 존중하겠다는 다짐이 필요하고 이는 단순히 그 나라가 양해하는 권리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감도 지겠다는 일종의 신중한 맹세이기도 합니다. 또한, 무엇보다 이 시민권 개념은 과거 유럽의 계몽주의적 전통에서 비롯되어, '근대의 자유주의적 시민권 모델'로 확장되어 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존 로크와 장 자크 루소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 보이는데요. 그야말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의 증진"이라는 가치가 함축되어 있는 시민권은 그만큼 자유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가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어지는 2장에서 차츰 논증되는 바와 같이, 이 시민권이라는 개념은 어느 정도는 모호하고 경우에 따라 감정적인 호소로도 발현되기도 합니다. 흔히 어느 사회에서 시민권을 보유한 시민들과 여기에 편입하는 이주민들 사이에 감정적인 대립이 생기듯이 말입니다. 다만, 이번 장에서 서술되는 바대로, "많은 종류의 협회, 공동체, 조직들은 구성원을 포용하고 외부인을 배제하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처럼 일부 인식에 있어서 이 시민권도 누군가를 배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특히 여기서 언급되는 것처럼, "광활한 시민적 자유'를 누리지 못한 권위주의적 국가의 시민권과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헌법과 인권이 보장이 보장하는 '시민의 자유'는 분명 구별될 만한 사항이고, 이에 따라 각 국가와 사회별로 시민 스스로가 누리게 될 권리와 의무가 상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 자리에서 명시하고자 합니다. 일전에 읽은 카밀라 샴지의 소설에서처럼, 뿌리 깊은 이슬람의 율법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슬람 계 이주민들이 자신의 자녀들이 보다 개방되고 경제적 기회가 많은 사회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로서의 소망이, '시민권의 현실적 가치'가 사회나 국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현실과 부딪치는 모습을 적잖이 볼 수 있겠습니다.


두 저자의 확언처럼, 시민권은 정치 이론상의 자유주의와 시민 공화주의에서 발전되어 왔고, 또한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4장에서 같은 맥락으로, "시민이란 일정한 권한과 권리를 행사하는 지위로 격상되어 다루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여러 의무와 책임이 수반되는 존재"라고 서술 되어 나오며, 어쩌면 이는 같은 장에서 도출되는 결론과 마찬가지로, "시민권은 시민 공화주의적 헌신을 포함"할 수밖에 없는 원초적 이유일 겁니다. 또한, 정교 분리를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 우리나라처럼 종교적 근본주의를 삶의 근원으로 끌어올린, 유일의 종교를 갖고 있는 이주민이 그저 권리만을 생각하고, 일찍이 제러미 벤담이 구축한, 그 사회의 공동체주의적 가치를 흡사 나와는 다른 무언가처럼 취급한다면 이들 자체는 현 사회에서 배타적으로 구분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근래의 영국과 프랑스의 이슬람 이주민들과 현 시민들과의 갈등으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민주주의 사회라면 국가의 시민이 아닌 사람을 그 국가 법의 영향력 아래 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면, 시민권의 부여는 이처럼 그저 손쉬운 무언가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는 이를 이론 상의 합리적 이상이 결국엔 현실의 엄연한 차이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존 로크와 장 자크 루소 등에 의해 점차 규명된 시민권의 논리가 사회계약론에 명시된 양도 불가능한 권리인, "재산에 대한 소유권, 자유로운 계약의 권리, 표현과 신념, 양심의 자유 등"으로 이러한 권리들이 대표권과 선거권을 있게 한 최초의 기본 인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민적 권리'라는 개념은 법에 의한 지배가 확립되면서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하지만 이 재산권과 투표권, 그리고 공적 영역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기존의 여성들에게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거의 수 십 년 간의 사회 운동이 필요했고,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에 공저자들은 초기의 소위 시민권 운동은 평등에 대한 헌신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시민권의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합니다. 지금에서야 이 평등이 좀 더 확장된 의미겠으나 그 이전에는 남녀 평등의 기준점으로 시민권 운동이 자리매김했다고 보여집니다. 아마도 같은 시민으로서의 서로 간의 평등성과 이를 그저 시민 간의 유대로 치부할 수는 없겠으나, 시민으로서 보다 사회에 기여하게 되는 방식으로, 우리는 누구보다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다만, 자유주의에서 비롯된 개인individual 이라는 개념이 그 자체로 근대의 산물로서, 고전적 의미의 공공public과의 대비를 넘어, 오늘날 독보적인 가치가 되었으며, 이러한 기반의 개인주의는 모든 시민들이 그 (간접적) 의무로서의 정치적 삶의 지향에 심각한 방해물이 되어왔습니다. 결국 이렇게 규범화 되고 확장된 시민권 자체가 개인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공적인 측면에서의 가치조화적인 확립이 필연적으로 요구되고, 더 나아가 참여와 의무, 책임감이 없는, 오로지 권리만 누리려고 하는 이 '반쪽 짜리 시민권'은 그만큼 사회에 해를 끼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어지는 3장과 4장은 이 책에서 매우 중요한 챕터라고 여겨지는데요. 주디스 슈클라를 비롯한 많은 정치학자들이 인용되는 이 두 장은, 무엇보다 시민권의 분화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기존의 철저한 시민권의 부여라는 아이디어에서 벗어나, 현재 각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기 영주권을 갖고 있는 비시민들에 대한 여러 행태를 논의합니다. 즉, 여기서는 데니즌denizenship과 마지즌권margizenship으로 구별해 다루고 있었는데요. "이제는 자유로운 이주의 권리, 이주한 곳에 정착하거나 다중 국적을 가질 기회에 대한 요구가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고 평가하고, 심지어 "외국에서 태어난 장기 거주자들의 요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더 취약한 사람들의 권리를 희생해서 그들의 권리를 우대하는 다른 구분점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의 시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치적 주체성과 더불어 '민주적 포용'에 대한 기준과 범위를 다시금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기 영주권을 갖고 한 나라에 오래 체류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 나라의 일부 시민들이 타국에 나가 오랜 삶을 지속하고 있는 이 상반된 사례는 오늘날 시민권의 규명이 얼마나 복잡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와는 별개로, 유럽의 이주 노동자들의 사례로 봤을 때, 그 사회가 이들의 사회적 기여를 차치하면서, 실제로는 이들의 시민권 취득이 대부분 좌절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인식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분화된 시민권에 대한 논의들은 현재 상황에서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데요. 종래와는 사뭇 다르게 기존의 시민권이 시민 사회 내부에서, 게이와 레즈비언 등 소수 성소수자들의 시민권 문제를 놓고 갈등에 놓이게 되는 것은 이처럼 난해한 현실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물론 앞선 성소수자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같은 시민임은 분명하나, 이처럼 우리의 인식이 그렇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이러한 문제는 사회의 노골적인 갈등과 더 나아가 혐오를 주입하는 양상으로 불거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젠더 문제를 부각시켜, 기존의 타 종교 이주민들과 다른 인종의 장기 거주자들을 동시에 분리해 내려는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특정 계층에게 이 시민권 문제는 더욱 배타적 조건의 권리로 승화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사회가 보장하는 시민권의 자격을 어느 범주까지 인정해야 하느냐에 대한 첨예한 논쟁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바로 4장이 이런 현실에서의 시민권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장의 도입에서 공저자들은 일견 특이하게도, 선거 투표권과 관련해, 다른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과 달리, 시민들에게 강제적인 법조항으로 의무를 지우고 있는 국가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호주, 브라질, 싱가포르, 페루와 같은 국가들은 시민의 투표가 사회적 권유가 아닌 의무로 못박고 있었는데요. 특히 호주의 사례는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은 시민은 중대한 벌금에 처해지는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호주 시민권을 취득한 이주민은 이 나라가 시민들에게 의무적으로 가하고 있는 '투표 강제'를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귀화를 통한 시민권 취득은 각 국가별로 체류 조건에 있어 상이한 의무 기간을 드러냅니다. 이는 영주권자의 자격으로 얼마 간의 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체류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항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시민권의 적격성 여부도 각 국가들이 내세우는 기준이 다르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오늘날의 시민권 문제는 각 국가가 처한 사회적 갈등과 여론 수렴 문제에 따라 이를 인식하는 방법이 천차만별이고, 국제 사회의 보편적인 도덕적 원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질적인 이주민들에 대한 자국 내의 시민권 취득에 있어서, 불편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다만, 독일의 사례와 같이, 자국내 1,2차 산업의 노동력 확보를 위해, 튀르키예와 같은 이슬람 계 노동력을 몇 십 년에 걸쳐 받아들였으면서도 이들의 사회적 권리를 지원하고 인정하는 것에 기존 시민 계층들이 난색을 표하는 점은 가히 낯 뜨거운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칸트가 강조한 보편주의적 입장에서 다른 국가에서 유입된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 연민이 그 사회의 여력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인간적인 측면에서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조건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5장에서도 존 롤스의 인식 기반에서, 모두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인정한다면, 단순히 국경 개방과 같은 극단의 조건이 아니더라도 이주민들이 기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쪽으로 여러가지 연구를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심각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일부 선진국들에게도 데이터를 열람할 구실이 된다고 여겨지는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이주민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그것의 결정은 민주주의 체제 하의 여론과 공통된 의견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권 자체로서의 선명성과 오랜동안 그 사회가 구축한 여러 제반에서, 이미 그것을 항유하고 있는 기존의 시민들의 동의가 필요한 것도 분명한 사실일 겁니다. 물론 여기에 더해, 국제 사회가 나서서 여러 국가들의 시민권에 대한 함의를 조정하고, 이것이 어떻게 인류애에 기여할 수 있을지, 그것을 더욱 논의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과거 우리의 일제 치하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조선인들에 대한 귀속과 동질감을 '같은 신민(臣民)으로 그때의 일본인들과 다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면면이 야멸차게 떠올랐습니다. 소위 그 시대의 신민권은 결정적으로 조선인들에게는 그 자격이 없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일부 매국노들을 제외한다면 당시의 조선인들은 일본 제국에 있어, 2등 혹은 3등 시민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시민주의는 모든 인류가 단일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도덕관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세계관이다.

시민권은 법적 신분, 사회적 지위, 제도, 정치적 범주화의 도구, 도덕적 행동규범의 목록, 시민됨, 자아정체성의 한 형태, 절차, 효능, 그외 여러가지 것들로 불리어왔다.

시민권에 대한 규범적 이론에서는 우리가 시민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가를 실생활에서 시민권에 대해 실제로 무엇이 관찰되는가의 문제보다 우선시한다.

이와 달리 로크는 무엇보다도 법의 지배가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특정한 ‘불편사항‘들을 겪게 된다는 점을 우려하였다.

우리는 시민적 권리가 발전함에 따라 평등에 대한 포용적 헌신이 근대적 시민권의 핵심 가치로 자리잡게 되고, 이것이 재산권이나 혈통과 같은 구시대의 권력조건들을 대체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시민권을 자유주의적 발식으로 구성하려면, 시민적 권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개인주의적 개념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구성원을 동등하게 대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시민권은 특정한 공동체나 집단의 구성원 자격을 설명하기에는 어색하지만 보편주의적 이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강점을 보인다.

점점 더 많은 시민권 학자들이 시민권이 완전히 포용적이든지 배제적이든지, 또는 어느 것도 아닌 애매한 것으로 되는지의 여부와 정도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기르고 있다.

자유주의 철학의 원형과 다수의 민주적 헌법에서 묘사하는 규범들의 포용성과는 대조적으로, (2차대전 이후 수십 년간 프랑스나 독일 같은 국가에 대부분 거주하던) 이주 노동자와 외국인들은 시민권을 얻을 수 없었음은 물론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시도 또한 대부분 좌절되었다.

젠더에 근거한 차별과 권리 박탈은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역사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것을 ‘2등 시민권‘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이다.

이언 샤피로가 날카롭게 지적하듯이, 이 ‘무정부적 자유지상주의‘지지자들은 "민주주의 내에서 생존하고 잘 자랄 수 있는 아이를 길러내는 대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따라서, 시민에게만 국한하여 투표권을 허용하는 미국 같은 나라의 경우 영주권을 획득하고 아직 시민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능력을 갖추기 위한 발달과 성숙의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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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고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인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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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6월 21일, 프랑스 옥시타니아 주 로트의 카자르크에서 태어난 사강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로트에서 보냈는데 자연의 동물들과 함께한 기억은 그녀에게 평생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부친은 알려지지 않은 회사의 고위 임원이었고, 어머니느 유서 깊은 프랑스 지주 가문의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2차 대전 당시, 도피네로 피난을 떠났고, 이후 알프스 산맥의 서쪽 지역인 베르코르에서 안착하게 됩니다. 유복한 집안답게 그녀의 집안은 파리의 17구에 집을 보유하고 있었고, 전쟁 후에는 그곳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어지는 사강의 개인적 삶은, 두 번의 결혼으로 점철되었는데 그녀 스스로도 연애 감정에 있어 꽤 자유로운 여성이기도 했습니다. 1960년의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문학 활동을 관통하는 주요 주제에 관하여 그녀는 "고독과 사랑"이라고 언급하고 당시 누보 로망이 유행하던 프랑스 문단에서, 주제와 형식으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던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제법 파란만장한 삶이 진행되는 가운데 2000년대에 이르자 그녀의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는데요. 이와는 별개로 2002년에는 전 프랑스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과 관련된 세금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기고 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2004년 9월 24일, 칼바도스 주의 옹플뢰르에서 폐색전증으로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La Laisse"로 지난 1989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이듬해인 1990년에 초도 번역으로 출판되기도 했으며, 제가 읽은 판본은 추측하건대 완전히 다른 번역본으로 2022년에 다시금 소개되었습니다.

저는 사강의 이 작품을 통해, 무엇보다 가장 이해하게 된 점은 여성들의 삶 속에서, 유년 시절의 경험과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구축된 감정들이 얼마나 평생을 좌우하게 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혹독한 기억과 친부모에게 받은 안좋은 영향들을 스스로 극복하고 다른 감정들로 채워가는게 물론 우리가 긍정적으로 지향해야 될 점이긴 하지만, 사람에 따라 그것이 잘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것을 단순히 '나약한 인간의 전형' 정도로 비난을 가하기보다는 인간에게 '환경'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충분히 인식하는 계기가 모두에게 필요해 보입니다.

주인공인 뱅상은 어려서 양친을 여의고 일찍이 고아가 되어, 세상의 냉정한 경험을 몸소 겪은 인물입니다. 그는 외형상 자유로움과 유쾌함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내면은 매우 불안정한 양태를 보이는데요. 사람이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무장하듯, 뱅상의 인물 조형 자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7년 동안 자신의 곁을 지켜준 로랑스라는 아내가 있습니다. 둘은 20대 초반에 벼락같이 결혼을 시작해, 남들이 보기에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또한 부부라는 틀에서 봤을 때도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는 커플입니다. 로랑스는 약간 성마른 듯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감정 표현이 서투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전형적인 여성성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요. 저는 흔히 서구 유럽의 드라마와 같은 영상 매체로 접한 여성의 인물상이 이 로랑스에게는 잘 들어맞지 않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강이 만드는 여성 인물에 대한 감각 자체가 독특하다는 것을 감안해 보더라도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부정적으로) 개성이 현존한 여성이었습니다.

앞서 얼핏 언급한대로, 소위 지참금으로 갖고 온 로랑스의 계좌로 말미암아, 뱅상은 자신의 인생 그 어느때보다 풍족한 생활을 지속합니다. 그는 자유로운 예술가의 기질을 갖고 있고 본업이라고 볼 수 있는 음악에 대한 태도 역시, 일견 독자들이 수용할 만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한 인간에게 스스로 접하고 택한 음악이라는 어떤 '탈출구'가 그에게는 삶의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뱅상에게서 드러나는 불안한 심리가 단순히 자신의 업(業)으로 충분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보다 장인과 심지어 아내에게서 심정적 동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진행되는 서사전반 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죠. 다만, 몇 년간의 지지부진한 답보 상태에서, 한 영화 작품에 자신이 참여한 앨범이 큰 히트를 보이면서, 비로소 '음악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주변과 세상이 알게된 것은 어떻게 보면 그의 개인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미 뱅상에 대한 장인의 화해의 제스처를 통해 잘 드러나는 바와 같이, 장인은 남편과 아버지로서 그닥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재력과 권력을 가진 남자들은 프랑스와 같은 개방된 사회에서 소위 정부(情婦)를 가질 수 있다고 보는 인물인데요. 그가 뱅상에게 하는 말들을 추론해 본다면,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자유로운 경험을 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린 시절의 딸들에게 불행한 어머니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직면하게 된다는 것은 그 아이의 인생 전반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사태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어떤 부유한 사내가 자신이 구축한 가정에는 충분한 경제적 여력을 투사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떤 '능력'으로 삼고 자신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근거로 삼아, 가족의 불행을 자초한다면 단순한 그 '경제적 안정성'으로 스스로의 행동의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닐겁니다. 더욱이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이는 가장이 자신의 아내에게 어떻게 행동할지는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할 정도입니다. 이런 대부분의 것들을 어린 시절부터 체험한 로랑스는 결국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안전하고 보장된 틀 내에서, 뱅상을 옭아매고 말았습니다. 이 점은 극중에서, "부정한 남편의 교만과 야비함을 피하며 살아야겠다고 작정했을지도 모른다"는 해석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로랑스는 이런 부분에서 사로잡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일차적으로 그러한 행동이 어느 정도 뱅상을 향한, 그녀의 선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두 사람의 결혼에 흡족하지 않았던 장인의 화해 시도가 드러나는 장면은 여기서 상세히 언급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극의 주요한 전환점이 되어 독자 여러분들이 직접 보시고 판단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후, 뱅상의 행동은 로랑스의 의도가 담긴 자신에게 가한 행동들을 불신하고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극은 불행한 마무리로 점철되기에 이릅니다. 물론 뱅상이라는 캐릭터 역시, 부모를 여읜 남들과 다른 세상의 멸시를 몸소 겪은 인물이면서,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아내를 경제적으로 건사하지 못하는 일종의 '기둥 서방'과 같은 상황을 복합적으로 자조하면서 어두운 내면으로 더욱 빠져버리는 자학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개인의 자유와 스스로를 얽매이게 만드는 로랑스의 실상을 대면하고 나서, 더욱 주변을 불신하게 되는 상황 자체는 인격적 개연성을 답보하고 있긴 하지만 중후반부의 대사나 그에 따른 서사가 음울한 느낌을 자아내게 합니다. 뱅상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나, 그가 나아가는 발걸음이 더욱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 어느 정도는 제어판이 없는 극단의 인물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남녀 사이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숙고를 자아내게 하는데요. 불행한 어머니를 목도한 로랑스는 자신은 결코 그런 경험을 하지 않겠다는 내면의 다짐에서 철저하게 로랑스를 비롯한, 주변과 삶을 의도대로 조정했고 그것이 결국 두 사람의 파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애초에 직업이 없는 가운데 가히 열정적이고 순수해 보이는 상대를 아마도 시작점에서 자신이 그 관계 전반을 조정할 수 있겠다고 믿고 그러한 과정 자체가 상대에게도 최소한 납득할 수 있는 응답을 기대했다는 점에서, 이 부부의 문제가 어디에서 근원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극의 결말에서 뱅상의 감정선을 살펴보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로랑스의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애달픈 말들과 고통들이 너무나 직접적으로 다가와서, 저의 마음 역시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사강이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말하는 바는, 인생 자체는 거의 도박과 같아서 많은 이들의 삶이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씁쓸한 결과가 재촉될 수밖에 없다는 점과 그간 온갖 경험을 해 본 성인이라 할지라도 그녀가 말하는 주제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다시금 생채기를 남겨주고 있었습니다. 


- 작가인 사강은 작중의 뱅상을 통해, (제 해석이지만) 마초에 근접하는 남성적인 인물상, 혹은 그런 남성들의 동경에 대해 장면을 할애해 분석하고 있었는데요. 자신이 어느 정도 남성적이지 못하다는 (외면과 내면 모두) 일종의 절규에서, 그녀는 약간 물러선채로 뱅상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랫동안 여성 작가들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동경하는 남성다움, 그리고 그것을 전형적으로 갖춘 남성들에 대해 어느 정도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 것은 사실입니다. 가부장제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이 바로 이런 남성다움에 기인한 것으로 치부하고 실상은 이들이 이것을 평범한 남성들에게 강요하는 사회적 압박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양상을 낳았던 것은 양쪽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극중 그 장면에서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 극 대미에 로랑스는 뱅상을 향해, 자신을 사랑했느냐고 절규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실상 뱅상은 여러 독백과 대화를 통해서 자신이 로랑스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남녀의 사랑이 굳이 이성적인 측면의 독해를 발휘하지 않더라도, 입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또한 사랑을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어느 정도의 응답과 고백을 원한다는 점에서 모두가 사랑의 근본적인 측면을 간과하기 마련이라는 점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그녀는 네가 그냥 그 집에 가만히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

그러다가도 로랑스가 그녀의 친한 친구 중에서도 가장 못생긴 오딜을 내 비서로 택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말하자면 내 몸과 마음은 언제나 함께 행동하기 때문에 나의 요구는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낀 후에야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성적 무능함만이 그들이 열정을 훼손하는 고통스럽고 결정적인 그 유예기간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럴 수 있는 형편이 되는 즉시 로랑스와 헤어지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짓인 것 같았다.

로랑스는 우리 부부 사이에 긴장이 지속되는 동안이면 높임말을 쓰는 버릇이 있었다.

나는 이처럼 자연스러운 로랑스를 보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녀의 목소리도 자연스럽고, 격분한 그녀의 표정은 거의 속되기까지 했다. 나는 이처럼 그녀가 뻔뻔스럽고, 격분하고, 자연스럽고, 냉정할 때가 아주 좋았다.

그런 말은 이처럼 오랫동안 같이 살았고, 동침하였고, 또 사랑의 말들을 나누었던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갈 수 있는 말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로랑스는 도덕주의자적인 자기 모습을 고수했다.

"나는 당신이 트루와 카르티에 백화점의 옷보다 샤넬 의상을 더 좋아하는 이유를 묻지 않겠어. 그건 말로도 표현할 수 없으니까."

"당신같이 순수한 사람에게는 당신에게 붙어서 먹고사는 기생충 같은 인간들이 달라붙어 다 빼앗아 가기 마련이고요,"

반면 그녀는 나를 속였고, 나를 이용해 먹었고, 나에게 기대어 살면서 명랑했던 나의 성격, 나의 남성적 기질, 내 선천적인 쾌활함에 얹혀서 살아온 셈이었다.

이번 일에서 제일 하기 어려운 것은 내가 오랫동안 모욕을 당해온 남자 노릇을 장시간 참아내야 하는 것이리라.

로랑스는 어린 시절 내내 그러한 혼란스러운 삶을 보고 자라왔기 때문에 부정한 남편의 교만과 야비함을 피하며 살아야겠다고 작정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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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 바스티유의 포성에서 나폴레옹까지 북캠퍼스 지식 포디움 시리즈 5
한스울리히 타머 지음, 나종석 옮김 / 북캠퍼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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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에 태어난, 한스-울리히 타머는 독일의 저명한 역사학자로 특히, 독일의 국가사회주의와 유럽의 파시즘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지식인입니다. 그는 1962년 언어 학자이자 동화 수집가인 야콥 그림을 기념한 야콥-그림-슐레를 졸업한 후, 헤센의 마르부르크 대학과 베를린 자유 대학에서 역사, 고전 문헌, 정치학을 공부했습니다. 1971년 유럽의 파시즘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에른스트-헤르만 놀테에게서 지도를 받으며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80년 역사적인 대학으로 일컫는 뉘른베르크 에르랑겐 역사 연구소에서 미하엘 슈튀르머의 지도로 교수 자격을 얻게 됩니다. 이후 1983년부터 2011년 은퇴할 때까지, 그는 뮌스터 대학의 현대사 정교수로 일했고 은퇴후에는 동대학에서 명예 교수로 재직합니다. 지금도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는 앞서 설명한 국가 사회주의와 파시즘 연구 뿐만 아니라 프랑스 혁명, 그리고 18세기와 19세기 프랑스의 지적 역사와 사회 연구로도 꾸준한 지적 연구에 힘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Die Französische Revolution"으로 지난 2007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5년 8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저자가 글 말미에 언급하고 있듯, 이 프랑스 혁명이 유럽인들에게 왜 '대혁명'으로 자리잡고 있는지는 그만큼 혁명이 후세에 끼친 영향이 지대했기 때문일겁니다. 특히나 프랑스는 1830년, 1848년, 1871년의 혁명을 거치며, 공화국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복잡한 심상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현실 정치와 시민들의 이상 사이에서 '어떤 정치적 균형점'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하고 어려운 일인지 대혁명 이후의 복잡하고 치열한 역사적 전개가 이를 여실히 증명하기도 했는데요. 이전의 혁명을 뒤로 하고 단순한 왕정복고를 위해 움직인 프랑스 주변의 절대 왕정 국가들과의 불협화음은 공화국 프랑스와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에 이르렀고, 이를 단순한 카이사르-보나파르티즘의 군사-혁명적 준동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전유럽에 혁명의 이상을 확산시킨 것도 사실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시대의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이 요구했던 만큼의 자유와 경제적 자립이 이뤄졌는지는 그만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의 발발 요인에 제일 먼저 추가해야 될 사항은 당시 군주였던 루이 16세의 우유부단함과 정치적 무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한국사 연구자들은 구한말 고종과 이 루이 16세를 자주 비교해 보기도 하는데요. 물론 세세한 정치적 작업에서 이 두 군주의 차이는 극명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목이 잘린 왕과 외세에 의해 강제로 퇴위 당한 다른 왕의 역사에서의 퇴장이 여러모로 학자들의 호기심을 이끄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 루이 16세는 당시 프랑스가 처한 '조세 위기와 국정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법복 귀족'에 힘을 실어다 주었지만 결국에는 저들 신흥 귀족들에게 무참히 배신을 당하게 됩니다. 그는 프랑스의 주요 세력 이었던 구귀족 세력들을 제어하지 못했고, 역설적이게도 구귀족들과 이해관계가 여러면에서 일치한 신흥 부르주아지에 대해서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그야말로 "베르사유 궁의 왕"으로만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미 다른 혁명사를 작성한 윌리엄 도일의 분석대로, 밀의 1788년의 대규모 흉작과 1788년과 1789년의 혹독한 겨울은 '수확량 감소'로 이어졌고 농민들은 자신들의 입을 건사하기는 커녕, 다음 농작을 위해 가축용 사료도 비축할 기회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왕과 국가에 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있는 농민들이 몇년 간의 혹독한 시련을 맞게 되었지만 왕과 귀족들은 전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점이 결국 혁명의 불씨를 잉태하게 됩니다. 물론 왕은 '삼부회'를 소집하여 세금 부족에 따른 국가 운영 위기를 어떻게든 해소해 보려고 노력해보지만 앞선 그의 '정치적 무능'이 극단의 위기로 스스로를 몰아넣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루이 14세 시절, 자신들을 프랑스 자체로 여겼던 그 귀족들이 여전히 국왕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 매몰되어 있었던 점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또한 지방의 정치가 베르사유의 그것과는 확연히 괴리되어 있었고 왕이 파견한 소위 '지방관들'에게만 그 지역의 정치적 안정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프랑스 정치가 큰 위기로 내몰렸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렇게 제3신분의 혁명적 발걸음은 이미 상징적으로 확인되었고 더욱이 성직자들기 근소한 표차이로 이 혁명에 가세함으로써, 혁명 대표들이 왕의 테니스 코트에서 소위 역사적인 '선언'을 하게 만드는 토대가 됩니다. 후세에 의해 이러한 왕립 회의의 인사들이 결과적으로 '제헌 의회'의 기초가 되었다고 후술되지만 왕은 여전히 자신의 정치적 특권과 권력 유지에 몰두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후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대로 주저하다 군사력을 동원하지만 결국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국왕 고유의 특권과 권력 제한의 움직임은 어떻게 보면 피할 수 없는 대세였던 것 같습니다. 이미 파리에서 도시 빈민들의 식료품 구입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자 쉽게 폭동에 휩싸인 것과 더불어, 이를 지켜본 국민의회는 "봉건제를 완전히 폐지한다"는 선언에 다수 시민들의 갈채를 받는 장면은 그만큼 의미심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는 '인권선언'으로 이어지고 "인민주권, 개인의 자유권, 법 앞에 평등, 자유로운 소유권, 대의 헌법의 원칙들"이 그곳에서 개념적으로 도출되기에 이릅니다.

1791년 10월 파리에서 새로운 입법 의회가 선출되어 그 즉시 소집됩니다. 이들 새로운 정치 엘리트들은 지방과 지역의 선출로 일정 수준의 정치 경험을 쌓은 인물들로, 여기에는 자크 피에르 브리소, 콩도르셰, 가데와 베르뇨와 같은 명사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자코뱅 당과 같은 의회 내의 정치 세력들은 이합집산의 결행 등을 통해, 1792년 9월 21일, 새로 소집된 국민공회가 역사적인 조치인 "왕정 폐지와 공화국 선포"를 역사적인 장면으로 등장시키긴 하지만 이 이후의 프랑스 정치는 그야말로 피와 폭력으로 점철된 내부 전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는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들은 프랑스의 경제적 상황을 호전시키고 동시에 사회 재건을 시작해야 될 당위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을 위해, 역사의 소중한 기회를 허무하게 소모시키기에 이릅니다. 여기에는 그 유명한 '절대로 부패할 수 없는 자', 로베스피에르를 역사 전면에 등장시키게 됩니다.

1791년 6월, 루이 16세는 오스트리아와 가까운 곳을 탈출을 시도 (바렌 사건) 하다 실패하면서 그에게는 사실상 정치적인 사형 선고가 내려지게 됩니다. 이 당시 전투적 언론과 각 구의 총회는 '반역자 루이 카페'의 처형을 촉구합니다. 더욱이 11월 20일에 튈르리궁에서 왕의 비밀 금고가 발견되면서 여론은 더욱 거세집니다. 이에 왕에 관대했던 '지롱드파'는 8월 10일 사건으로 왕이 폐위당해 이미 그 죗값을 치렀다고 보고 왕의 처형을 반대했지만 끝내 이런 시도는 무산됩니다. "왕의 처형은 민중의 이름으로 결의"되었고 그의 죽음으로 앙시엥레짐과 그 지지 세력은 최종적으로 갈 곳을 잃게 됩니다. 이는 프랑스 정치에서 중요 지위를 차지하던 세력이 공중분해됨과 동시에 정국을 위기로 이끄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 5장까지의 진술을 토대로 그 이전의 다른 역사가들은 쉬이 언급하지 않은 "혁명의 테러리즘 (물론 현대적인 표현이긴 하지만)"에 주목합니다. 1794년 7월 27일 그 공포의 로베스피에르가 몰락하지만 이 시기 동안 프랑스 정치에서 유혈이 낭자했던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특히 자코뱅과 상퀼로트의 존재는 단순히 정치적 의미를 넘어, 테러에 대한 소위 그들만의 합법적 의미로 승화되기까지 합니다. 저자의 입을 통해, "테러는 엄청난 인적 고통을 초래했고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언급되는데요. 여기에는 단순한 정치적 수준의 오해나 아무런 죄도 없는 무고한 자들까지 희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혁명의 이상이라든가 공화주의라는 숭고한 이념에 사회가 아무리 전도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조적 공감대를 갖추고 있지 않은 이상, 각자의 의견 대립이나 충돌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들 혁명파들은 이것의 해소를 위해 손쉬운 폭력과 테러를 사용함으로써 후에 보수주의자들의 우려를 갖게함과 동시에, 정치적 대결에서의 잔혹한 범죄 행위를 스스로 용인하게 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사실상 로베스피에르의 그 유명한 '혁명적 처형'은 1789년 이후의 혁명 동인이 사실상 몰락하게 된 상징적 사건이 됩니다. 1799년 이후, 등장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그의 군사적 재능 뿐만 아니라 혁명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프랑스는 그의 손아귀에 놓이게 됩니다. 물론 무능한 총재 정부는 차치하더라도 그를 막을 수 있는 정치 세력이나 권력은 프랑스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육군의 강성함을 보유하고 있던 프랑스의 군사적 확장까지 조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는 외부에서의 요인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요. 그럼에도 프랑스가 유럽의 열강과의 대결에서 연이어 승리하고 유럽 전체를 자유의 깃발로 해방한 것이 아니라, 육군 프랑스의 깃발로 점령했고, 더 나아가 나폴레옹 자신이 '제위'에 올라, 혁명을 과거로 돌린 점은 실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결국에는 이 나폴레옹이 남긴 유산,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나폴레옹 3세까지 이 나폴레옹 일가가 미친 영향력이 지금까지 프랑스의 공화주의에 일정 부분, '이 세포적 계승'이 여러모로 미쳤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저자인 한스-울리히 타머는 이 프랑스 대혁명이 후세에 끼친 영향을 무엇보다도 수시로 행해지는 '정치적 문화의 변화'를 들고 있는 것은 이처럼 단순한 변용이 아니라 그것이 수단 이상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는 점일 겁니다. 이 점은 지나온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상당히 의미심장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혁명의 진행과정에서 저자를 통해 파악한 놀라운 부분은 "1790년 1월에는 보르도와 아비뇽의 세파르디 유대인 (디아스포라 이후 이베리아반도에 정착한 유대인의 후손, 프랑스 유대인은 거의 세파르디)에게 그리고 알자스의 세파르디 유대인에게 완전한 (프랑스) 시민권을 부여한 사건"이었습니다. 

 



부르주아 엘리트는 지주 귀족이 소유한 것과 동일한 지위와 권리를 얻고자 노력했다.

대개 계몽주의는 국민의회의 위원회나 정치 클럽에서 정치 실천을 위한 구상과 근거를 마련해야 할 필요가 생기면서 비로소 열렬히 수용되었다.

오히려 금융과 경제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앙시엥레짐이 드러낸 기능적 무능함과 개혁에 대한 무능함이 문제가 되었다.

1788년의 흉작과 1788/1789년의 혹독한 겨울은 수확량 감소로 이어졌고 농민은 시장에서 곡물을 팔거나 가축용 사료를 충분히 비축할 기회를 잃었다.

귀족 신분의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90명의 귀족이 계몽적, 자유주의적 성향을 보였으며, 제1신분의 경우 3분의 2가 하위 성직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혁명 의회 대표들은 6월 20일 실내 테니스 코트에서 모여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해산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혁명적 행위였다.

공황과 자발적 포기, 과장된 몸짓이 난무하는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상위 두 신분의 자유주의적 대변인들은 애국적 희생과 상징적 행위로 자신들의 특권을 포기하고 봉건적 부과조를 폐기했다.

이는 시장 지향적 농업 경제를 운영할 수 있는 이들의 입장을 반영하며 사유재산적, 농업 자본주의적 질서의 사회적 이해관계와 구조를 명확히 드러낸다.

부르주아적, 개인주의적 사회라는 이상은 조합 전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예고하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종속을 예고하는 또 다른 결정을 낳았다.

국민공회가 소집되고 공화국이 수립되기까지의 40일은 전쟁과 국내의 학살 및 잔혹 행위로 점철되었다.

오히려 로베스피에르는 부르주아혁명은 "열정과 보복 폭력"(퓌레)의 혁명, 즉 두 번째 혁명의 지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학살을 정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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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62
나이절 워버턴 지음, 박준영 옮김 / 교유서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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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나이젤 워버튼은 현재 철학의 대중화에 앞서고 있는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입니다. 그는 브리스톨 대학에서 학사 과정을 마치고, 1989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다윈 칼리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후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노팅엄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잉글랜드 버킹엄셔 밀턴 케인즈에 소재한 공립 연구 대학인 오픈 대학에서 선임 강사직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그의 명성을 가져다 준 유명한 작업인 "철학 : 기본 (Philosophy : The Basics)"과 "철학 : 고전 (Philosophy: The Classics)"은 지금까지도 영국에서 철학 입문서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철학 전문 웹로그인 Virtual Philosopher 를 운영하고 있으며, 같은 철학자인 데이비드 에드먼즈와 함께, 정기적인 인터뷰 팟캐스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Free Speech : A Very Short Introduction, First Edition"으로 지난 2009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5년 10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저자의 요약된 주장대로 저 역시, 이 언론의 자유가 "개인의 자유 및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위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이 언론의 자유를 상징하는 여러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언론의 자유를 다시금 고찰하게 된 시점이 바로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가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 소설가 장정일, 연세대 국문과 김철 교수, 유시민 작가 등 국내 지식인 190여명이 박유하 교수의 형사 기소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이 사건에 대해 아무리 고찰을 해봐도 저자인 박교수의 역사관에 쉬이 동조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약간의 첨언이지만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시, 조선총동부가 엄청난 통치 자료와 해당 사료 및 문서들을 광범위하게 소각했다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일제의 잔혹한 식민 통치 행위는 문서만 없을 뿐이지 우리 민족을 수탈 했던 역사는 거의 자명한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박유하 교수의 (상이한) 개인 의견이 만천하에 피력될 수 있는 자유는 무엇보다 보장되어야 하며, 설사 거기에 허위나 왜곡이 의심된다 하더라도 이것은 법정에서 밝힐 문제가 아니라, 같은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들과 지식인들과의 토론과 논쟁에서 판단될 수 있는 사항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만큼 여기에 침잠해 있는 '사상의 자유'라든지 '발언의 자유'는 한낱 농담이나 소문에 지날지라도 개인의 그런 발언들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 글의 2장에서는 존 스튜어트 밀의 '절대적 무오류'에 대한 해석의 기반에서, 왜 나와 다른 사람의 의견이 비록 일치하지 않아, 그 사람의 입을 막기 위해, 그 자신은 무오류성을 견지한다고 비판합니다. 이는 지구상의 양대 종교라고 볼 수 있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경우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될 수 있는데요. 이들 모두가 자신이 믿는 신의 존재가 정확히 규명되지는 못했지만 일단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을 존중하고, 그 신성을 주장하는 것도 종교의 영역으로 두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정교 분리 사회에서 이러한 종교계의 주장은 어떤 규명의 대상이 아니라, 쉽게 말해 그냥 그렇다는 식으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일종의 공감대 혹은 사회적 합의일 겁니다. 이 언급된 진술이 약간 거친 내용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종교의 자유'가 무엇인지 잘 드러나는 면모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종교가 당신 자신에게 그만큼 중요한 문제라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당신의 신이 인정하지 않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의미"라고 볼 수 있겠죠. 뿐만 아니라 저자인 워버턴은 앞서 언급한 존 스튜어트 밀의 다소 이상향적인 진술에서, "(단순한 장소에서 뿐만 아니라) 대토론의 장에서 의견 대립이 있는 자들이 공개적으로 토론하여 그것의 진위 여부는 물론, 진리까지 규명한다는 밀의 이상"은 지금의 시대에서 아무리 허황된 논법이라 하더라도 그 맥락은 충분히 공감이 될 만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이 언론의 자유가 상대방의 입을 막게 하지 않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여겨졌습니다.

언론의 자유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지금도 서유럽에서 끊임없이 논쟁되고 있는 '홀로코스트 논쟁'입니다. 독일의 네오 나치나 영국과 프랑스의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이미 한참이나 규명된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터무니 없는 거짓 내지는 날조라고 보는 경우가 근래 들어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홀로코스트를 날조라고 보는 자들의 문제를 그냥 '지능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영국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웃지 못할 희극이 발생되기도 했습니다. 영국 작가인 데이비드 어빙이 미국의 사학자 데버라 립스탯을 중대 명예 훼손으로 고발한 사건은 바로 이 홀로코스트 날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사건은 2016년 믹 잭슨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기도 했습니다. 이 고소 사건은 어빙이 최종적으로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로 밝혀졌고, 그에 따라 학계나 방송에서도 거의 매장된 단계로 귀결되었습니다. 이처럼 역사 문제와 관련된 첨예한 대립 사항을 과연 법정에 세워도 될 것인가에 대한 논쟁도 그렇거니와, 저자는 "만일 누군가가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그를 침묵시킨다면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근거에 대한 이해도 갈구도 없는 독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즉, 어빙과 같은 사람은 법적인 처벌이 아니라 논쟁으로 낱낱이 논박 당해야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터넷 미디어와 가짜 뉴스의 범람으로 이러한 왜곡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적지 않을 것인데요. 이런 자들이 권력을 쥐었을 때, 국가와 사회를 구렁텅이로 이끌 수 있다는 우려는 어느 정도 이해되지만, 벼룩을 잡으려고 초가 삼간을 다 태울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은연중에 밝히기도 했지만, 우리와 같은 모든 시민들이 결코 철인이 될 수 없는 점은 자명합니다. 그는 2장 후반부에서, "노 플랫폼' 논증과 언론의 자유를 구분하고, 앞선 홀로코스트가 거짓이고 이것이 음모라고 믿는 자들에게 어떤 연단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과 이들의 발언을 보장하는 등의 입을 막지 않는 자유인 언론의 자유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매번 완벽한 정치적 변별력과 정신적 구분을 갖지 못하고 소위 시민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의 의견 피력이라는 명목으로 진실로 규명되지 않는 의견을 말할 자유는 분명히 보장 받아야 하지만, 그것을 기화로 상대방과 다른 종교, 다른 인종에 대한 아주 무분별한 혐오와 증오를 조장하는 발언은, 언론의 자유와는 다른 방법으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초반 1장에서, 저에게는 약간 어정쩡한 논의로 '방만한 자유가 아닌 어떠한 선에 이 제한을 그어야 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견제 역시도 사회적인 통념에서 보장 받아야만 하는 정당성이 요구됩니다. 일전에 네이딘 스트로슨은 네오 나치나 극우주의자들의 행태에 대해, 이들의 입을 막을 것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로 조롱하고 피식거리며, 저들을 웃음거리고 만드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저자 역시도 이와 비슷하게 '대항 발언'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는데요. "몹시 불쾌하고 짜증나는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언론 자유도 보장해야만 한다"는 3장의 서두나, 존 스튜어트 밀을 통해, "아주 조장된 폭력의 선동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언급 역시, 궁극적으로는 상대방의 발언 보장, 그리고 나의 반론을 이어, 이 언론의 자유가 어떤 위법 사태나 오도된 권력에 의해 침해받지 않게 하는 것이, "귀에 싫은 소리를 듣지 않는 것"보다 중요하고 엄중한 가치라고 우리는 이렇게 분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논증된 내용들이 4장에서, "자유와 평등은 늘 함께 달성할 수는 없다"는 점과 앞선 대립들은 발언의 자유를 언급할 때, 숱하게 머리를 스치는 내용들로, 어떤 메시지에 불쾌감이나, 역겨움, 노여움, 폭력성, 모멸감을 느끼게 될 때, 여기에는 유익과 균형이 고도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항 발언이나 그런 상대방의 발언을 조소하고 굴복시킬 수 있는 역량을 만든다거나, 한나 아렌트의 분석대로 양심이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하고, 굴복시키는 작용을 한다면, 우리는 저들이 양심도 없는 자들이라는 모욕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더욱이 광범위한 초고속 인터넷 시대를 맞이한 요즘에서 저런 수많은 발언들이 소위 자정 작용을 통해 걸러질 수 있을지가 앞으로 몇 세대의 민주주의를 위해 시급한 요청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우리 시대의 이런 획기적인 '통신 방식'의 발전은 수많은 화자들의 의견 개진을 '관리한다'는 말보다 우선 '자정 작용'이 무엇보다 적용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다른 의견'으로 개명된 문제의 발언들이 (인종이나 종교, 성차별과 관련된) 혹여 지독한 혐오에 근거한 폭력으로 촉발된다면 그것은 큰 재앙이 될 것임은 분명한데요. 현재의 기득권 정치 무대가 이들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는 극우 정치와의 연계를 통해서 저들이 뭔가 실익을 얻을 만한 것은 전무했다고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작금의 독일 정치가 제2의 아돌프 히틀러는 안된다는 경각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민주주의적 토대와 언론의 자유를 아주 마음껏 이용하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 세력과 배타적 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아주 실효적인 제어가 필요한 점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맥락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분문 40페이지, 172페이지에 띄어쓰기 오류 한 곳이 있었습니다.



즉 언론의 자유는 듣기 싫은 말을 들을 때조차 열렬히 옹호할 가치가 있다. 내 발언뿐 아니라 내 듣고 싶어하지 않는 발언을 보호하는 것도 언론자유의 책무다.

따라서 언론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구체적 사례를 이해하려면 해당 표현이 언제, 누구에게, 무슨 의도로, 적어도 예측 가능한 어떤 효과를 노리고 행해졌는지 파악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픽션 작가와 논픽션 작가 모두에게 특히 중요한데 사상을 공개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그들 활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부가 때로는 언론의 자유보다 국가의 기밀을 더 중시한다는 사실이 이 민주주의 정부가 종국에는 전체주의 체제로 변질되리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 시대의 화급한 언론 자유의 쟁점 하나는, 종교인이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는 표현을 제재하라는 요구에 민주주의 사회가 귀를 기울여야 하느냐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그를 침묵시킨다면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근거에 대한 이해도, 갈구도 없는 독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

‘노 플랫폼‘ 논증은 관용적인 사람만이 관용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달리 말해 타인의 발언을 제한하는 사람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줄 필요가 없다는 견해와도 구별되어야 한다.

앞서 보았듯 존 스튜어트 밀은 폭력 선동이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기 위한 적절한 간섭 시점임을 분명히 했다.

당신이 언론의 자유에 진심인지 아닌지는, 당신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몹시 불쾌한 예술도 당신이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를 보면 안다.

민주국가가 언론의 자유로부터 얻는 유익은 대중이 아주 다양한 발언자와 의견을 접할 수 있다는 데서 일정 부분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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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17 0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국민연금 입금되면 구매하려구요.

베터라이프 2025-11-17 03:50   좋아요 0 | URL
언론의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저자의 기본적 생각이 잘 녹아 있습니다. 물론 개론서로 생각하시고 일독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책임과 판단
한나 아렌트 지음, 서유경 옮김 / 필로소픽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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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 니더작센 주의 주도인 하노버의 자치구인 린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유대인으로, 부친은 그녀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사망했습니다. 모친은 열렬한 사회민주당원으로 매우 진보적인 인사였습니다. 베를린에서 중등 교육을 마친 아렌트는 독일 마르부르크에 위치한 공립 연구 대학인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그 유명한 마르틴 하이데거의 지도를 받았고 특이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지도 교수인 하이데거와 연애를 시작합니다. 1929년이 되자, 그녀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하이델베르크에 소재한 공립 연구 대학인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 당시의 지도 교수는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 카를 야스퍼스로, 그에게도 역시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4년 뒤인, 1933년에 아렌트는 '반유대주의'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혐의로 당시 비밀 경찰인 게슈타포에 의해 투옥되기는 했으나, 곧 풀려나왔고 이때 그녀는 독일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향하게 됩니다. 유럽의 급격한 정치적 변화로 말미암아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고 이때 바로 독일군에 의해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구금되지만, 곧 그녀는 탈출하게 됩니다. 그녀가 수용되어 있던 강제 수용소는 프랑스 남부의 캄프 베르네로, 당시 프랑스 남부 지역에 들어선 비시 정권의 혼란으로 그녀는 극적인 탈출을 감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툴루즈와 몽토방을 거쳐, 1941년 5월 22일 그녀는 거의 맨몸으로 미국 뉴욕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곤궁한 생활을 경험한 그녀는 계속 글쓰기에 매진하고 싶어서 독일계 유대인 공동체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게 되는데요. 이런 활동으로 1941년 11월, 뉴욕의 독일어 유대인 신문인 아우프바우 (Aufbau)에서 일하게 됩니다. 1950년대에 들어서자, 아렌트는 1951년에 '전체주의의 기원'을, 1958년에는 '인간의 조건'을 출판하고, 1963년에는 '혁명론'을 연이어 내보냅니다. 이 즈음에 아렌트는 우연히 마르틴 하이데거와 재회하게 되고 이로부터 2년 동안, 그를 만나게 됩니다. 1961년에는 그녀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했고, 뉴요커 (The New Yotker)에 실린 그녀의 보도 기사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1970년에 심장마비로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한나 아렌트는 미국 사회에서 독특한 이방인으로 이는 독일인과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한데 섞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제3자의 입장에서 그녀는 미국 사회를 비평할 수 있었고, 또한 신대륙에서조차 유대인이라는 이방인의 정체성은 스스로 학문적 성취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Responsibility And Judgement"로 지난 200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9년에 초도 번역되었습니다. 제가 구입한 판본은 2022년에 출판된 3쇄본입니다.

서두에 소개된 옮긴이의 설명대로 한나 아렌트의 이 논저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은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유 불능'에 대해, 그녀 스스로 오랫동안 숙고하고 성찰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뒤에 본격적으로 나오겠지만 어떤 한 인간이 자발적으로 성찰하지 못하는 그런 '도덕적 불능'에 대해 한나 아렌트는 누구보다 큰 관심을 기울였던 철학자였습니다. 그런 이 책은 한나 아렌트 생전의 열렬한 조교였으며, 현재 미국 뉴스쿨 대학의 한나 아렌트 센터 소장인 제롬 콘이 그녀의 생전 마지막 10년의 시기, 여러 강연록과 논문 등을 묶은 일종의 선집이기도 합니다. 이 선집은 아주 단순하게, 1부 '책임'과 2부 '판단'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여기에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소위 '서구 사회의 도덕적 성찰'의 부재와 그것의 역사철학적 연유, 그리고 그러한 배경에서 독일 제3제국의 나치즘과 유대인들에 대한 잔혹한 인종 살해는 과연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를 고찰해보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미리 약간의 개인적 감상을 늘어놓자면, 이 책의 후반부인 7장인 '심판대에 오른 아유슈비츠'와 8장 '자업자득'에서 드러난 '히틀러 졸개들'에 의한 잔혹하고 충격적인 유대인들의 학살 증거들이 낱낱이 드러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말았는데요. 저는 이 대목에서 악인들은 보이는 대로 멸절시키는 수밖에 없다는 어느 유명인의 언급이 떠올라 복잡한 심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인류의 죄악인 아우슈비츠를 비롯, 이들 '절멸 수용소'의 동시대 독일인들은 역사에서 결국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이러한 크나큰 죄업이 어떤 연유로 비롯되었는지 명확히 알고자 하는 노력이 전무했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는데요. 여러분이 이 글의 7장을 끈질기게 일독하다보면 제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쉽게 알게 되실 겁니다. 아렌트의 이 글로 인해 일전에 읽었던 하랄트 얘너의 서사는 그저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잔혹한 독재 정권에서 삶을 영위한 일반 사람들에게 어떠한 책임도 물을 수 없다는 인지적 가능성은 어디에서나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일 겁니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자신들의 '게르만주의'를 분리한다면 특히 슬라브인들과 여타 유대인들, 이들이 분류한 국적 불명의 수많은 무고한 피해자들에게는 순수한 악(惡) 그 자체였을 겁니다. 이 대목에서 한나 아렌트는 1장의 논증들을 통해, 사실상 수많은 독일인들이 '도덕의 붕괴' 상태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증명합니다. 이때의 많은 사람들이 "나치의 성공에 감명을 받았고 자신들의 판단을 스스로 독해한 역사의 평결"을 고려해 볼 수 없었다는 점이 이를 명확히 드러내는 부분이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도덕의 총체적 붕괴'는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글에서 좀 더 첨언되지는 않지만, 이는 나치 수뇌부와 소수인 그들을 추종하는 독일의 일반 시민들을 모두 포함하는 내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제 개인적인 의견을 보태자면, 나치에 부역했던 마르틴 하이데거나 카를 슈미트와 같은 엘리트 지식인들이 나치즘 자체를 어떤 정치적 돌파구로 여겼고, 이러한 민족적 범주 안의 배타적 인식을 방패 삼아, 국가와 민족 그리고 나치즘이라는 삼위일체를 최소한의 양심 없이, 전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나치즘 이전의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이질적인 뼈대와 그것이 초래한 모든 사회정치적 이행 - 혹자들이 자유주의의 역겨운 껍데기 라고 말한 - 이 앞선 이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개개인의 '양심의 자유'라는 것이 근본적인 사유와 성찰이 배제된 채, 그저 사전적인 의미나 단편적인 심상으로만 이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음 2장에서, 저자인 한나 아렌트에 의해서 충분히 고찰 되지만 인간의 이성을 발견한 근대 유럽의 몇 세기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그 역사가 결국에는 도덕적 성찰의 황무지와 다름 없었다는 결과물은 시대와 인종을 넘어 뼈아픈 진술로 이해됩니다. 저는 이를 마약과도 같은 합리주의의 산물이라고 싸잡아 몰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유를 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체는 어쩌면 합리성이라는 단어가 아우르는 손쉬운 개념 하에 더욱 조장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후반부인 7장에서 여실히 논증 되겠지만 아우슈비츠에서의 조직적인 독일군이 그 과학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유대인 절멸이 여러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진술은 그만큼 저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혐오를 갖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이에 저자는 "2500년씩이나 된 서구의 문학, 철학, 종교 사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양심이라는 것이 현존한다는 사실에 관해서 한 목소리로 얘기하는 모든 과장된 구절들과 설교들"이 세대를 거쳐 이어져 왔다는 것을 분명한 목소리로 밝히고 있었는데요. 오래전에 소크라테스가 "불의를 행하는 것보다 불의를 당하는 게 낫다"는 소위 말하는 '실재적 악'을 거부했던 의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연유로 '나와 세계와의 관계'를 면밀히 성찰하지 못한 자들이 이룩한 정부라는 것이 어떤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짐작할 만합니다. 이를 달리 해석해 보자면, 바로 양심이 누구에게나 실존한다는 그 허구성을 애써 대변하는 듯 보이는, "상당수 인간에게 양심은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극적인 메타포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누군가에 의해, 예를 들면 히틀러와 같은 자들과 같이, "인간종의 생존" 혹은 "자신을 포함한 민족의 생존"을 위해, 유럽의 암세포와 같은 유대인들을 멸종시키겠다는 그런 생각이 실제로 실행되었다는 점에서, 유럽에서의 허울 뿐인 양심이라는 문제를 아주 근본적으로 고찰하게 만드는 대목이었습니다. 특히 4장에서, "그 전체주의의 통치자들이 서구 도덕의 기본 계명들을 뒤집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이었던가"라고 진술하는 장면은 그만큼 몰락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역시나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한나 아렌트는 그 당시를 돌아보며, 소위 독일 사회의 주요 엘리트들이라 볼 수 있는 지식인들과 경제인들, 혹은 사법 관료들이 자신들의 숙고된 성찰이나 의견 없이, 오로지 "총통이 원하시는 것", "총통이 일관되게 내리는 명령"이라는 전제 하나 만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양심을 고려하지 않게 되었다고 진술합니다.

2장 도입에서 추동되는 이 "도덕적 질서의 총체적 붕괴'를 과거 유럽 철학의 근간에서 찾아봐야 하는지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답보하고 있습니다. 도덕의 총체적 붕괴를 거의 온 몸으로 표상하는 이 신종 살인자들이 일반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으며, 같은 동기에서 일반적인 척 행동하고 말을 하고 있다는 전범 법정에서의 증명은 어쩌다 20세기의 유럽이 그렇게 되었는지를 되내기에 만듭니다. 아렌트의 분석처럼 오로지 참혹한 범죄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이들 '살인마들'에게만 향하는 것은 면밀한 분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도덕 법칙 내에서, 행위의 일관성과 충분한 근거 이유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국가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에 그녀는 "정치 질서는 도덕적 고결성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 만을 필요로 한다"는 전제와 함께, 이마누엘 칸트의 입을 빌어, "한 국가를 조직하는 것의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와 상관없이 악마와 씨름을 하는 형국에서라도 그들이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기만 한다면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었는데요. 이는 전반적인 사유에서 철저하게 이성에 기댔던 칸트의 학문적 결과물들을 차치하더라도 저 최소한의 지적 능력이 기반이 되는 전제 조건이 존재한다면 설사 악마 뿐만 아니라 국가가 패망하는 순간에 놓이더라도 최소한 대안을 찾아볼 수는 있을 겁니다. 그래서 종교가 국가의 도덕적 질서의 구축에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한 연유에는 이것이 지식이나 진리와는 상당히 다른 조건이기 때문일 겁니다. 유럽의 가톡릭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 한 장면을 대입해 본다면 히틀러의 제국이 전유럽에 확장하고 그와 더불어 유대인들이 곡소리를 내며 죽어갈 때, 로마 교황청의 주인인 비오 12세의 행적은 아침 호숫가의 뿌연 안개처럼 유럽과 가톨릭에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물론 아렌트가 평생 연구한 칸트의 내력을 빌려서, 히틀러의 나치즘이 어떤 종교적 신봉과 같은 비이성적 귀결에 이르렀다고 아주 직접적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총통'이 당시 독일인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종교이든 정치이든 간에, 거의 거스를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그녀가 진술하는 칸트의 철학이 무엇보다 '올바른 이성'에 근거한 도덕적 법칙을 어느 정도는 옹호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모든 인간이 이런 합리성 유형, 즉 과거 칸트가 말한 바 있는 그 도덕법칙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다고 가정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물론 자신을 "졸개"와 다름없다고 밝힌 아이히만과 같은 나치의 졸개들은 이를 현실에서 여실히 부정 당했지만 어찌됐든 이들 살인자들의 예는 오로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이 대목에서 칸트가 말하는 양심의 기능이 "자기 경멸의 형태로 자신에게 위협을 가한다"는 해석은 실로 놀랄만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는 명백히 자기 기만에 빠진 인사가 아니라면 도덕적 문제에 대한 소위 "인식과 결단"에 있어, 이 양심이 작용하는 바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앞선 나치 졸개들과 이들에게 전무해 보이는 도덕적 법칙 내지는 양심의 결여가 단순하게 설명될 수는 없겠지만 이것이 내포하고 있는 바는 결국 정치적 질서 혹은 법칙과 도덕과 양심의 문제는 여실히 다르게 작용한다는 진실입니다. 아렌트는 이에 대해 "아무리 나치 정권이 합법적이라고 해도 그들의 죄는 남는다."고 밝히고 있었는데요. 저는 이 대목에서 왜 유럽의 정치적 유산과 그에 반하게 되는 도덕적 법칙 내지는 견제가 왜 함께 갈 수 없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매번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정치와 도덕은 다르다고 말하는 그 내심을 어느 정도는 스스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매번 도덕적 기만 위에 정권과 정부가 세워져 있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을 차치하더라도 "정권의 개"가 되는 저들. 그러니까 부역자들의 양심이 왜 보이지 않는지는 이로써 명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자인 아렌트는 앞선 논증들을 기반으로, 왜 진정한 성찰과 사유를 하지 않는 인간들이 왜 그토록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4장에서, 밝혀내고 있었습니다. 흔히 작금의 시대에도 "철학과 형이상학이 죽어버렸다"고 자주 언급되기도 하지만 칸트를 반증하여 언급되는 "사유함이라는 정신 능력"의 결과가 불확실하고 입증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어떤 인생의 책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저자인 그녀 역시 이미, "사유가 소수만의 특권이 될 수 없다"고 명백히 진술하고 있었는데요. 아렌트의 말마따나, 자신이 철학자임을 전제하지 않고서도 이미 사유하고 있다는 고백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이 고백이 담겨 있는 대목에서, "모든 시민이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그저 권리 만을 요구하는 것은 그저 자가당착을 넘어, 이런 자들을 시민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유가 없는 자칭 시민"이라는 어구에 저는 존 듀이와 로널드 드워킨을 떠올렸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이는 사유를 하지 않는 자들에게 도덕적 양심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거의 확신하게 만듭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 지점에서, 왜 아렌트가 아돌프 아이히만이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깊이 숙고하지 않아 보이는 인상에 왜 그토록 의문을 갖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런 '죄악의 유산'을 이어 받은 당시의 독일인들의 그 특유의 행태를 보면서, 마찬가지로 2차 대전 이후의 일본인들의 의식 구조를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후반부 7장은 바로 그러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연합군에 항복하여 탄생한 독일의 아데나워 정권은 태생적으로 나치 부역자들을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나치에 복무한 적지 않은 자들이 정권의 구성원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점은 아렌트가 명확히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제가 가장 충격적으로 여겨진 부분이 뉘른베르크 재판과 이어지는 프랑크푸르트 아우슈비츠 재판에서 수많은 독일인들이 그 재판 과정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이것이 그저 역사의 그늘 안으로 묻혀지기를 바랐다는 대목이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평생 자신이 독일인과 유대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여겨 왔는데요. 그렇다면 이 장면을 목격한 그녀에게 있어 이 "독일인들"이라는 집단에 갖는 복잡한 심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유대인들이 "즉각적인 가스 주입에 죽음을 맞이하거나, 몇 달이나 지나 지독한 육체 노동에 이르러 죽음에 이르는 사례" 이외에, 역시나 모두가 짐작하듯이, 그저 재미로 사람을 살해하는 "나치의 졸개들"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입니다. 아마도 적지 않은 분들은 이들 나치의 졸개들 가운데 그래도 양심을 갖고 행동한 자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는데요. 하지만 양 재판에서 드러난 자들 가운데 그런 자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 7장에는 무고한 유대인들이 어떻게 재미와 성적 추동에 의해 순식간에 살해되었는지 역사적 증거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과 어린 소년, 소년들에 대한 충동적이고 쾌락적인 살해 동기에서,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과 동시에, "정교하게 구축된 송장 제조 공장"을 운영한 "그 아무것도 모른다는" 저들은 그야말로 악마들 그 자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서류에 싸인을 했던 자와 그런 명령을 여지없이 수행하는 부속품과 같은 그런 자들로 구분해 볼 수도 있겠지만 저 부속품과 같은 자들이 태연히 인간의 탈을 쓰고 있었다는 점에서, (대전 중이나 종전 이후에도) 인간이 어디까지 죄악을 범할 수 있는지 이들은 생생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렌트는 양 재판(뉘른베르크와 프랑크푸르트) 에서 마치 판사들이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듯 보이는 여러 장면과 저 나치의 졸개들이 자신들의 무고를 스스로 증명을 해야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히틀러 부역자들이 별다른 제재 없이 무사 방면 되었다는 점은, 이 재판의 복잡하고 난해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여실히 드러난 참혹한 전쟁 범죄조차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그 정교하게 고안된 사법 체계가 스스로 모순에 빠졌다는 것을 드러내는 재판이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나치 독일의 그 철저한 합리성과 자신들이 스스로를 추앙하는 게르만 민족 이외의 다른 인간을 그저 절멸의 대상과 도구로 삼은 것은 이제는 역사의 과오, 그 이상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시대의 역사적 유산을 작금의 독일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이어받았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판단한다면 참혹한 전쟁 범죄의 파급물을 단순히 정치적으로 해석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데나워 이후의 독일 정권이 역사를 뼈저리게 반성했는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장의 철학적 논증들은 꽤나 놀랄만한 부분들이 있었는데요. 도덕적 양심을 큰 틀로 놓고 왜 과거의 유럽이 '반유대주의'와 같은 도덕과 양심을 거스르는 뿌리 깊은 증오로 귀결되었는지. 쉽게 말해, '인간의 배신'을 철학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유약한 영혼을 위해, 철저하고 근본적인 사유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사유가 만능이 아님을 아렌트는 밝히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사유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인간들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 우리가 처한 씁쓸한 '현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20세기 "국제적 인사들" 가운데 어느 누구 한 사람도 1930년대의 연대성에 대한 자신들의 집합적인 기대치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당시 벌거벗은 악마성에서 비롯된 공포 자체가 나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모든 도덕적 범주들을 초월하고 모든 사법권의 기준들을 파괴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새로운 형태로서의 현대적 독재 양태들을 알고 있는데, 그것의 우선적인 양태는 군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민간 정부를 무너뜨리며 시민들에게서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박탈하는 경우다.

이제 국가의 통치 행위 공식의 이면에 놓인 그 이론은 주권 정부들이 비상시국하에서 국가의 존립 자체와 권력 유지가 달려 있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범죄적 수단을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비합법성은 눈이 멀지 않고 심장이 돌처럼 굳지 않고 부패하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명확하게 보이며 그의 심장에는 거부감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도덕적 행위가 비합법적이고 모든 합법적인 행위가 모종의 범죄가 되는 조건 아래서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와 정반대로 우리의 모든 경험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나의 시대 초기 단계에서 지적, 도덕적 대변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존경할 만한 사회 구성원들이 제일 먼저 굴복한 자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무제약적인 양심의 자유라는 것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데, 이유는 그것이 모든 공동체 조직의 파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20세기 초입까지도 여전히 "영구적이고 필수적"일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많은 것들 중에서 도덕적 이슈를 택하여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 보려고 한다.

본래 양심은 모든 언어에서 옳고 그름을 알고 판단하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 즉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알고 또 자각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금껏 들어왔던 바에서 추론하건대 도덕적 처신은 일차적으로 사람이 자신과 더불어 수행하는 상호작용에 좌우되는 듯하다.

양심은 인간이 자신의 말보다 신의 말씀을 경청하는 기관으로서 이해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의 구체적인 도덕적 성격을 획득했다.

그 결과 그는 다른 이들을 좀 더 "도덕적"으로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도덕을 손상시키고 절대적인 신념과 무조건적인 복종 양자를 산산조각 내버린다.

소크라테스는 지금 우리가 도덕적으로 부르는 것이 정말로 단독성 상태에 놓인 인간과 관련이 있으며 또 한 시민으로서의 인간을 향상시킨다고 믿었다.

누구든 사유하는 일 없이 그리고 그 사유하는 과정 자체에 진입하지 않은 채로 소크라테스식의 검토 내용을 경청한다면 그는 당연히 [기존 도덕의 관점에서] 타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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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리얄리 2025-11-11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늑대의 시간]을 생각나게도 하고, ‘합법적인데 뭐가 문제냐?‘라는 자기기만의 우리 사회도 돌아보게 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위 글의 내용과 별개로 한나 아렌트와 하이데거가 연인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받았던 충격(?)이 생각나네요. 아직 소녀였던 한나 아렌트에게 하이데거는 철학의 신으로 보였을까요. 물론 나치 입당 전의 이야기라 할 수도 있고, 학문적 교감이 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장차 ‘부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하이데거와 나치로 인해 온갖 고초를 겪은 한나 아렌트 커플을 상상하란 여전히 어렵네요.

베터라이프 2025-11-11 19:44   좋아요 0 | URL
유감스럽게도 한나 아렌트와 마르틴 하이데거 이 두 사람은 명백히 불륜 관계였습니다. 물론 야스퍼스와도 그녀는 긴밀하고 가까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야스퍼스가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였던 것도 익히 알려진 내용이죠 ^^; 어찌됐든 하이데거의 철학적 결과물은 거의 인정하는 분위기이니 아렌트 역시 적지않은 감화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나치 부역과 그에 따른 개인적 책임은 나치가 패망한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은 그의 과오로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카를 슈미트에 비하면 하이데거는 조그만 양심이라도 있던 인물이었죠.

이 책을 일독하고 나서도 하루 종일 독일인들이 진정 과거사를 성찰했는지에 고민을
해보게 됩니다. 총리가 무릎을 꿇은 그 유명한 사진을 떠올려 본다면 국가와 국민의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가 어쩌면 다를 수도 있을 겁니다. 국가 사회주의라는 괴물을 앞세우고 뒤에 죄다 숨을 수도 있겠구요. 참 많은 생각이 드는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