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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와 아슈카르, 중동을 이야기하다 - 중동 분쟁과 미국 대외정책의 위험한 관계
아브람 노엄 촘스키 외 지음, 강주헌 옮김 / 사계절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세계 지성계에 더이상 어떤 말이 필요없는 노엄 촘스키 MIT 교수와 레바논계 프랑스 지식인으로 반전운동가이자 유럽에서 손꼽히는 중동 정세 전문가인 질베르 아슈카르가 거의 종합적이고 근원적인 측면에서 현재의 중동 문제에 관한 대담집을 지난 2009년 사계절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을 했습니다. 주로 촘스키의 글을 맡아 번역했던 강주헌씨가 번역을 맡았죠.
전세계의 화약고라 불리우는 이 중동의 문제는 매우 복합적인 양상의 원인이 있는데요. 2차대전 이후 연합국에 의해 유대인들의 정착이 이뤄진 이스라엘의 건국과 심각한 내부 갈등 요인을 힘으로 누르고 중동의 맹주라고 자위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미국의 묵인 등이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창하는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 조직이 자생하여 왜곡된 정치체제, 종교적 폐쇄성, 외세의 개입, 빈번하게 촉발되는 내전 등이 현재의 중동을 초래한 대체적인 원인일 것입니다. 이에 아슈카르는 테러와 관련된 주제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사회 조직과 사회 안정망이 와해된 것”이 신자유주의와 테러사이의 본질이라고 밝히고 있는데요. 이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판단과 동일합니다. 촘스키는 한술 더 떠서 “미국이 전세계에 어필하고 강조하는 민주주의란 친미적이고 미국에 협조하는 민주주의 체제”라고 밝히며 그렇지 않은 국가들은 “미국의 정부적 테러”에 의해 공격당했다면서 과거 레이건 행정부가 일으킨 이란-콘트라 사건의 니카라과나 콜롬비아 등과 같은 합법적 선거로 선출된 민주주의 정부를 무너뜨리는데 CIA를 비롯한 미국 정부의 입김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미국이 현재의 중동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지원에 인색한 것은 만약 이들 지역에서 선거를 통한 정부가 탄생한다면 거의 반미 정부가 될 것이므로 세계 민주주의의 맏형이라 불리우는 미국이 이를 반기지 않는 것은 정말 한편의 희극과 같은 상황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아슈카르는 “워싱턴이 원하는 결과는 미국의 지배하에 있지만 민주주의란 얼굴을 가진 정부”라고 일침하는데요. 이것을 이념적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현재까지 CIA가 그런일을 해왔고 민주주의란 얼굴을 표명하지만 국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국가에 비민주적인 일도 서슴치 않았던 것이 바로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촘스키의 또 한가지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1970년대 까지도 미국은 국내 소비를 위한 중동의 석유 수입이 필요치 않았지만, 중동의 원유 자원을 장악하고 관리함으로써 서유럽과 일본에 석유를 보냄으로써 이들 서구 국가들에 대한 일종의 경제적 지렛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분석하는데요. 이런 것은 매우 명쾌하다고 생각합니다. 9.11 테러 이후 이라크 전에 뛰어든 것도 바로 이런 연유와 비슷한데요. 즉, 전세계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과 영향력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증거를 특히 서유럽과 일본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현재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와 봉쇄에 대해 서유럽과 일본은 말을 잘 듣지만, 중국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아 많은 미국 관리들은 이 때문에 중국을 매우 싫어한다고 촘스키는 부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관한 부분에서도 얼마전에 국내에도 출간되었던 존 미어샤이머의 ‘이스라엘 로비’에서와 같은 미국 의회에 대한 유대인 단체들의 로비 공세가 중동 문제를 악화시키는 진정한 요인이 아니라 미국 내에 지식인들, 특히 진보적 지식인들을 포함하여 조직적으로 친유대적인 발언과 지원을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촘스키는 덧붙이고 있습니다. 미국 내부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거의 이스라엘은 미국의 ‘분국’과 마찬가지로 여기게 만들고, 사실상 중동의 이스라엘이라는 존재는 주변의 중동 국가들에게 훌륭한 지렛대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미국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문제는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와는 달리 근본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의 문제가 큰 변수로 남아있는데, 이란은 그들의 지리적 위치와 외부 압력으로 인해 매우 당연하게도 핵무기를 개발할 이유를 갖고 있었다고 촘스키는 단언하는데요. 이와 관련하여 이 글의 개정판 후기에서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공격 가능성에 대한 입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미국은 대체로 이란 공격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매우 찬성하고 있어서 미국의 행정부가 이스라엘의 이러한 요구를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대입해 볼 수 있는 문제겠죠. 물론 촘스키도 이란과 같은 나라는 함부로 공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글에서도 언급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유심히 지켜봐야 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시리아의 공격을 받으면서 핵무기 사용을 심히 고려했다는 것을 끄집어내며, 자국의 안보와 관련된 문제에서 이란도 이스라엘과 같은 결정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중동을 쑥대밭으로 만들려고 할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보는 것은 얼마나 순진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중동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타협하지 않는 민족주의와 만나서 시리아의 내전을 통해 IS를 만들었고 친미 국가로 다시 태어난 이라크에서도 심각한 내부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그너머 이란은 더 위험한 국가이고 예맨은 현재 내전에 돌입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을 치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판단해보면 아마도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구는 이러한 중동의 분열과 혼란을 유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합법적이고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안정적인 체제를 지역의 각 국가들을 유도할 수도 있었음에도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들을 국익이라는 미명하에 방치했습니다. 아프리카에 왕처럼 군림하려고 하는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중동에서도 미국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이익을 보존하는데만 급급했지 별다른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정의롭고 합법적인 국가가 항상 정의로울 수 없다’는 처칠의 예언과 들어맞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전체적으로 촘스키와 아슈카르의 이 대담집은 중동의 미국 정책에 대한 아포칼립스적 입장을 담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을정도로 중동의 문제는 매우 극명해보입니다. 저는 이들의 문제를 그들의 믿고 있는 이슬람의 문제로 몰고 가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많은 국민들은 아직도 진정한 민주주의를 바라고 있고 얼마전의 이집트와 리비아에서는 이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어떠한지 잘 드러난 바가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도 딱히 방법이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오늘날에 중동이 처한 거의 모든 정치와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어쩌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남북문제 만으로도 이미 머리가 아프지만 혹여 중동 이슈에 관심이 있었던 분들이라면 ‘탁월한 지식인’ 촘스키 선생의 가차없는 분석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세계에 과거 버틀란드 러셀에 이어 촘스키라는 지식인이 존재하는 것은 뭔가 빗대어 대단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권력에 경도된 수많은 지식인들이 있는 상황에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