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일본의 국제질서론
사카이 데쓰야 지음, 장인성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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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에서 정치외교사와 국제관계 및 외교론의 영향력 있는 학자이자 도쿄대 교양학부 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사카이 데스야 교수의 이 책은 지난 2007년 동일한 제목으로 일본에서 출간된 것을 2010년 연암서가에서 서울대 외교학과 장인성 교수의 번역으로 국내에 소개된 것인데요. 특히 저자는 한국 학계에서도 꽤 알려져 있는 인물로 이 책이 번역 출간되었던 당시에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대 일본은 우리에게 치유할 수 없는 식민지배를 강요했던 이웃 나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물론 위의 표현은 상당히 순화해서 언급한 것이고 사실상 오늘날까지의 한일 관계의 모든 불협화음과 문제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겠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일본에서 권위있는 국제정치학계의 학자가 자신의 근대과 외교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는 꽤 중요한 부분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일정 부분 통사론적 입장인 이 책의 성격으로 봤을 때, 학자인 저자가 자국의 국체라고 여겨지는 일왕과 관련된 민감한 주제를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꽤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므로 이를 감안하고 책을 일독하게 되었는데요. 미리 결론을 짓는다면 전체적으로도 꽤 유익한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근대 일본에서 자국의 국제 정치적 기조와 이념은 국제주의와 제국주의가 거의 한몸과 같았다는 저자의 분석은 꽤 설득적이었습니다. 일왕의 실질적인 일본 내 권력 복귀였던 메이지 체제의 시작과 동시에 정치권과 군부의 이념적 잣대였던 소위 ‘천황주의’는 이런 맥락에서 시도된 것이며, 일부 하급 무사들과 그들을 추종하던 무리들을 미화시키는 여러 작업들이 있어왔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막부체제가 종식되고 개화가 이뤄지는 시점의 일왕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동아시아 정치 무대에서 큰 변곡점이라 할 만합니다. 물론 부정적인 입장에서 말이죠. 동시에 오늘날 일본의 정치외교학에서 한스 모겐소와 E. H. 카 등의 현실주의적 이론가들이 외면을 받고 있는것도 국제정치와 외교 자체가 홉스가 말한대로 무정부적 상태의 법의 역할이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국가들간의 헤게모니 다툼이라면 앞의 두 거장들에게서 일본 국제 정치의 정당성이나 이론적 기초와 관련된 일왕제와 과거 ‘다이쇼 천황’이라 알려진 히로히토 일왕의 제국중심주의를 설명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즉, 서론과 종장을 포함한 사카이 데쓰야의 7편의 논문은 앞서 설명드린 어떻게 일본의 제국주의가 국제주의가 되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및 정치적 분석일텐데요. 흔히 매번 나오게 되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과 허구에 불과했던 동아협동론 내지는 대동아공영론과 만주사변과 같은 불법적인 일본의 외교군사적 전술에 대해 같은 맥락으로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 이상주의적 국제 정치에 경도되어 있던 많은 일본 지식인들이 만주사변과 만주괴뢰국에 관련된 태도에 있어서는 일본의 안보를 위해서는 부득이한 일이었다는 식의 입장 선회에 저자 역시 일정부분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작게는 동북아 지역내에서 동북아협동론 체제의 주도국이 되어야한다는 입장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그리고 일본 정치외교에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이 아주 잠시 미미한 영향을 끼친것을 제외하면 이러한 일왕중심의 일본 주도의 제국주의론이 이론과 현실적 배경에서 근대 일본의 중심이었다는 정치역사적 배경을 저자가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이 꽤 독자들 입장에서는 꽤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많은 일본 지식인들의 태도와 비슷한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다소 한 발 물러선 작위적인 객관적 입장의 서술과 표명을 학자의 양심이라 여기는 식의 분위기와 같은 글은 분명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과거 천황중심의 국가 통치 체제가 결론적으로 주권국민국가에 대한 노골적인 천대와 비판으로 귀결되고 많은 일본 정치인들이 같은 동맹인 독일의 나치 민족주의를 혐오하면서도 그들 자체도 그러와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을 애써 무시해왔다는 점에서 얼마나 일왕 중심 체제에 과도하고 무리한 정당성을 기울여 왔는지는 관동대지진이나 난징대학살 등과 같은 거의 인종 청소라 봐도 무방한 역사적 사건의 외면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자신들이 영국 및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 유일의 제국주의 국가라고 자부하면서도 실체로는 그 후진성과 폭력적 근성이 자리하고 있는 왜곡주의적 국가라는 것을 애써 인정하지 않은 것은 일본의 국가 지배 체제가 얼마나 허위에 기초하고 있는지 증명하는 것이겠죠. 이와 같은 입장에서도 오늘날의 ‘식민정책론’의 연구의 속성이 그러하고 “식민 정책학은 극히 국가주의적 이론 장치로 굳혀진 학문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이미 지적했듯이 이는 식민 정책학의 실상에서 벗어난 견해다”라는 저자의 판단은 약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과거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어쩔 수 없는 필요불가결한 이론적 근거를 위한 수단으로 ‘식민정책론’을 인용하고 있고 여기에 ‘역사 수정주의’가 맞물려 주변 국가들과의 이러한 파국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어 왔던 점은 절대 부인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본질적인 의미에서 사카이 데쓰야 교수의 이 입장은 단순한 과거 정치역사적 통설의 근거한 제한적인 해석일텐데요. 조금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저자 역시 무비판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입을 빌어 식민정책론에 대한 완곡한 평가를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것과 같은 부분말입니다. 이 5장의 뒤에서 식민지 없는 식민지정책과 자유주의적 기조가 덧입혀진 1920년대 이전의 일본의 정책에 대해 논의하는 것으로 보아 이 양자적 입장에 대한 분리를 저자는 시도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아직도 저로서는 판단하기 어렵군요.

지금까지도 “우리는 미국에게 진것이지 아시아 국가들에게 패퇴한 것은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것과 패배주의적 역사를 극복해야 된다는 역사 수정주의적 입장, 주변의 국가들이 너무나 변함없이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고 내정간섭이다 라고 말하는 등의 근거는 결국에는 일왕의 책임을 끝까지 묻지 못한 1945년 당시의 정치 역학 구조에 비롯된 것이고 그것의 여파가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의 의식 구조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아주 근본적인 것으로 결국 일본 정치의 근간이며 핵심이므로 이것을 일본 정치인들 자신이 보편적인 입장으로 선회하기란 매우 어려운 부분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물론 이 해석은 일본인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해 매우 뿌리깊은 본질적인 국가 정체성의 문제로 결부시키는 핵심이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약간의 논외로 저는 한국인들이 일본 왕에 대해 일왕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근거는 과거 역사에서 삼한시대의 백제와 고구려 등은 ‘내제외왕’ 즉 국내에는 왕이 황제로 자임하고 국외에는 왕으로 대신했는데요. 물론 매번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더불어 당시 백제는 당나라 황제를 당왕이라고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다 당태종을 이세민이라 지칭하기도 했죠. 즉 여기서 요점은 자국인들이 황제든 천황이든 마음대로 부르는 것은 관여치 않겠으나 동아시아인들의 입장에서 일본 왕을 ‘천x’이라 부르라고 직접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적 입장에서 천[하늘]의 의미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굳이 우리가 천뭐시기로 부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식민지배한 역사를 제외하더라도 대한제국 시절의 우리의 고종황제를 황제로 여기지 않는 일본의 역사학계의 입장을 봤을때도 그러하고 결국 우리는 한국인이지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왕이 아주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국외에서 자신들의 전제 군주를 일왕이라고 부르는 것을 격하라고 하는데 이것이 왜 격하의 표현인지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중국과 우리 그리고 동남아의 국민들까지도 일왕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보편적이라고 봐야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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