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인간의 몰락 - 왜 사람들은 고립되고, 원자화되고, 파편화되는가?
김윤태 지음 / 이학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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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자 과거 영국 캠브릿지 대학과 런던 정경대에서 수학한 김윤태 교수는 학자로서의 이력 뿐만 아니라 한국정치에도 본인의 행적이 있는데요. 지난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뿐만 아니라 국회정책연구위원과 국회도서관장을 역임해 단순한 정당인에 그치지 않은 경력도 갖고 있습니다. 이를 학자와 정치인의 결합이라는 ‘폴리페서’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꽤 흥미롭긴 한데요. 더욱이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와 같은 몇몇 유명한 글의 저자로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대학 시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것도 어쩌면 마찬가지겠죠.

김윤태 교수의 이 책은 크게 독립된 글이라 봐도 무방한 유명한 서문과 총 9장의 주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관통하는 요점은 오늘날의 현대 사회에서의 ‘사회적 자본’이 붕괴하여 벌어지는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도 동일합니다.) 다소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가 서로 균형있게 발전하지 못한 또다른 원인의 배경 설명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이 점과 관련해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동시적 협력 발전과 경제 권력이 정치 부문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등의 문제 등을 여러 방면에 걸쳐 분석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오늘날의 개인의 파편화와 수단화, 심각한 불평등, 몰인간성 등은 노동 문제부터 각 사회 현상의 심각한 변화와 분화 등의 원인이 결국에는 정치 체제에서 정치 스스로가 자립하지 못하고 자본주의가 이기심의 발현이라는 잣대로 종래의 정치가 해야만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강제당하거나 하는 악화된 결과로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회학자들로부터 이미 사회적 인간이라 불러도 무방한 각 개인들이 이렇게 파편화되고 분자화 되는 것의 진정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여기 김윤태 선생은 이와 관련하여 세분화시켜 각각의 미치는 현상들을 독자들에게 상당한 근거와 여러 학자들의 입을 통해 알리고 있는데요. 다만 이러한 의미들의 확장에 따른 분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이를테면 ‘낙하산은 나쁜 것인가’, ‘왜 모든 사회에서 근친혼은 금기인가’, ‘사랑하면 결혼해야 하는가’ 등의 몇몇 소주제에서는 그렇습니다. 또 한 가지를 지적한다면 “남성이 여성을 선택할 때 외모를 보고, 여성이 남성을 선택할 때 경제력을 본다면 여성들의 입장에서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성과 없는 남성의 경제 수준의 차이가 클 때 성형 수술에 대한 동기부여가 크고, 남자는 여자의 외모 여자는 남자의 경제력의 도식이 꽤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하는데요. 이러한 도식은 사회생태학적인 결정론에 가까워 이것만으로 단정지어 판단하는 것은 익히 그 취지는 공감이 되었으나 약간의 아쉬운 점으로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위에 짤막하게 언급한대로, 저자의 이 책에는 정말 많은 분야의 학자들과 주장한 내용과 원전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최근 흥미를 끌고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는 학문적 주장들의 다채로운 모음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이렇게 많은 원전들이 등장함에도 글 전반의 독해는 비교적 수월하게 읽혀졌습니다. 이것은 저자 스스로가 얼마나 다독을 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이 책의 큰 맥락인 사회 내에서의 개인의 분자화 및 파편화가 오늘날 어떤 식으로 발현되고 목격되고 있는지에 대한 선명한 증명이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이즈음의 이러한 개인의 고립이라고 불릴만한 이 현상이 앞으로 좀 더 어떻게 파급될지는 좀 더 봐야하는 문제이기도 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과연 전통적인 사회화 과정으로 되돌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진단이 나오지는 않아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분화되고 원자화 된 개인들이 자신들의 사회와 이를 해석하는 사회학에 좀 더 관심을 갖자는 주장은 익히 나온 것이고, 비슷하게 정치 불신과 관련된 문제 역시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는 종래의 구호와 차이가 없어서 뭔가 읽으면서도 더 배고픈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곳곳에 보이는 저자의 통찰력은 절로 호의로 다가왔는데요. “최근 현대사회에서 급속하게 확산되는 노동의 유연화는 단순히 기술의 변화 혹은 소비자의 욕구의 변화라기 보다는 사회의 구조적 변화라는 근본적인 사회학적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과 “복지 국가를 지지하는 유럽 국가들은 복지국가를 자본주의를 합리적으로 철저하게 개혁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했고 대부분의 이들 국가는 사회주의적 국유화에는 반대했다”는 분석은 의미심장했습니다. 관료제와 관련된 부분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이 기존의 기득권체제와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여러 곳에서 목격되는 것 만큼 관료제가 민주주의 체제에 이로운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이처럼 저자가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전하는 주제들이 있어서 ‘전체적인 사회적 불안’에 대한 조망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보고 판단해야 될지에 대한 가까운 조언을 저자가 하고 있다는 부분은 크게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미 최근까지 우리 바깥의 학자들인 리처드 세넷이나 랜들 콜린스 등이 시민의 사회학적 관심을 유도하는 글들을 내고 있는데요. 물론 우리의 많은 지식인들도 이와 비슷한 의도로 좋은 글들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의 불안을 어떻게 개선시켜야 하는 점은 분명 쉬운 과제는 아닙니다만 그것을 오로지 정치인들과 국가에만 맡기는 것은 다소 현명하지 못한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선거로 선출된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결과를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고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와 그외 곁가지들에게도 큰 의미가 되는 글이 아닌가 말미에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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