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칼 폴라니 - 우리 시대의 경제적 고통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와카모리 미도리 지음, 김영주 옮김 / 생각의힘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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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와카모리 미도리는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교 경제학 교수로서 칼 폴라니의 사상을 기반으로 인간의 경제활동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마찬가지로 이 글 또한 이러한 저자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약간의 논외지만 현재의 일본 학계의 분위기에서 이러한 글이 일본인 학자에 손에서 쓰여졌다는 것이 다소 놀랄만하게 느껴졌습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더 신고전주의적 경제학으로 유명한데요. 밀접한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영향아래 있는 일본의 경제 및 경제학계를 고려하면 개인적으로는 여기의 이 글이 꽤 대단한 성과물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 시대의 경제적 고통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라는 이 책의 부제는 칼 폴라니의 사상적 핵심과 관련이 깊은 주제라고 느껴지는데요. 역으로 더 들어가면 “우리의 사회와 삶에 깊이 스며든 자유주의적 시장경제가 과연 우리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라는 질문의 칼 폴라니의 전체적인 답변이라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우선 저자인 와카모리 미도리 교수는 칼 폴라니의 저작 ‘거대한 전환’을 틀로 삼아 그의 일생의 행적과 맞물려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장 경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관점이 선이라 일컫는 전통적인 주장들에 대해 칼 폴라니의 놀라운 해석을 담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일찍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난 후에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기본적인 시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자유와 연계되어 시장에 참여하는 권리에 대한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입장을 만들었고 도식적으로 시장 본연의 역할을 자유의 입장으로서 침해하면 안된다는 불가분의 정언 명령과 같은 견고한 이론을 이끌었는데요. 산업 혁명 이후 인간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취급하고 이를 가지고 생산 활동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 초기 산업 사회의 모습이 칼 폴라니의 입을 빌어 그것이 인간에게 유익했는가와 더불어 이 시기부터 인간의 자유는 시장 경제와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얽혀 있었다는 측면으로 다르게 증명이 된 셈입니다. 더욱이 초기 시장 경제주의의 태동에서 멜서스의 이론으로 초래된 ‘생태학에서 비롯된 인간도태론’에 대한 무비판적인 이론적 추가는 길게는 오늘날의 시장 경제에서 무늬만 바뀐채 수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인간의 능력 여부에 따라 도열된 순서로 밑에 있는 계층들은 당연하게 도태되는 것은 자연순리적이라는 은밀한 주장과 이를 복지와 맞물리게 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복지가 자연적인 인간의 도태를 방해한다”는 멜서스주의적인 주장들과 함께 말이죠.

이렇게 폴라니에 따르면 “시장 경제라는 제도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정신을 구현한다는 것이며 경제적 자유주의는 자기 조정적 시장에 의해서 사회 생활을 재편하려는 끝없는 욕망”이며, 이러한 자기 조정적 시장이 가능하려면 경제 영역이 정치나 문화와 같은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 분리된 영역으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중요한 핵심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노동의 실업 문제를 보다 문화적인 것으로 인지했던 폴라니의 해석을 곁들인다면 앞의 이 자기 조정적 시장의 가능성을 믿고 이 자체가 시장 경제체제의 본질이며 시장 경제 영역과 정치 영역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을 새삼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시장 경제가 사회와 정치 영역을 침범해 다른 대안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상황을 조장했다는현실에서 앞의 중요한 전제 조건은 의미심장한 것이죠.

끝내는 이렇게 시장의 허구적 욕망이 본질적으로 세계대공황과 이에 따른 파시즘의 발현을 초래했고, 이후의 금본위제 붕괴 또한 이러한 상황을 가일층 심각하게 만든 것으로 적지 않은 역사적 사례를끄집어 내며 덧붙이고 있습니다. “폴라니가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금본위제의 재건에 의한 시장 사회의 재생이라는 유토피아적 기획의 실패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또한 여기에는 허버트 스펜서와 같은 이들의 반자유주의적 음모가 더해졌다고 보고 있는데요. 이것은 시장이 마비되고 경제가 붕괴되는 것은 그 자체의 원인이 ‘반자유주의적 행태’에 있다고 몰아가는 것이며 이것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 뿐만 아니라 매우 많은 곳에서 이론적으로 몰아가고 있는 현상이라 폴라니는 판단합니다. 뒤이어 도래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와 자동적으로 포섭당해 이러한 주장들이 널리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즉, 우리에게 이러한 경제적 고통을 초래하게 된 원인이 이 반대편에 있는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시장에 대한 반자유주의적 행동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시장 자체가 목적과 동일시 되어 국가의 역할을 나날이 제한시키고 인간을 도구화 시켜 시장과 자본 자체에 종속시켜 나타난 결과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가 파멸에 이르게 된 것은 반자유주의의 범람이며 이것은 곧 자기 모순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것이 얼마나 그동안 이들에 의해서 견고하게 이론적으로 확산되었는지에 대한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이러한 시장주의적 상황에 놓여 있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경제적 교양과 정치적 교양을 갖춘 새로운 민중 문화”가 필요하며 하이에크가 주장한 민주주의는 결코 그 자체가 완전무결하지도 확실하지 않다는 개념적 판단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우리가 ‘시장의 자기 조정적 기능’을 어떻게 하면 다시 되살릴 수 있는지에 대해 민주주의적이고 정치사회적인 입장에서 다시 고찰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않는가 다시 되새겨 보게 되었습니다.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이 책을 정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는데요. 원문이 일본어임에도 역자의 노력이 제대로 구현되어 번역의 질이 나무랄데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요. 책의 뒷쪽에는 제가 좋아하는 홍기빈 선생의 추천사와 이곳 알라딘 북플의 유명한 어떤분의 흥미로운 짧은 글도 보였습니다. 정말로 어쩌면 무분별한 시장주의에 대한 이 책이 그 분의 입을 빌어 ‘강력한 해독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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