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중국 - 중국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니와 우이치로 지음, 이용빈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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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중 일본 대사를 역임한 니와 우이치로의 지난 2014년 당시 일본의 베스트셀러였던 ‘중국의 대문제’를 2015년에 번역 출간한 ‘질주하는 중국’ 을 읽었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뒷부분의 옮긴이가 쓴 후기에 역자가 2014년 일본 나고야에서 머물다가 발견한 이 책을 입수해 국내에 소개하는 작업을 단계적으로 진행해왔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출판사 차원의 작업이 아니라 이 책을 흥미롭게 본 역자가 개인적 차원에서 출간 노력을 기울였던 모양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으나 어찌됐든 흥미롭긴 하더군요.

일단 저 개인적으로는 일본인이 쓴 이러한 글들을 읽을 때, 최대한 집중을 해서 보는 편인데요. 소위 일본 지식인들이라고 불리우는 이들의 중국과 한국을 보는 관점에는 일견상 조금 차이는 있지만 일관된 관점이 있습니다.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이 역사문제를 정치 및 경제를 비롯한 여러 면에서 일본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과거의 문제로 해석해 보고 있다고 여기는 등의 작위적인 이해가 보입니다. 이를테면 근래의 한중일 삼국의 냉각기에는 이렇게 일본을 기저에 깔린 역사관으로 불편하게 생각하는 한국과 중국의 인식이 비롯되어 있다고 여기는 것이죠. 뭐 사실 이러한 관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속편하기는 하겠습니다만 일본 역시 민족주의적 관점이 매우 팽배한 내부 문제를 안고 있는데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이웃 국가들의 책임 문제로 돌리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는 않겠죠.

다만 저자인 니와 우이치로는 조금 평범한 일본인들과는 조금 다른 이해의 폭을 갖고 있는데요. “명확히 기록하자면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던 패전국이다. 일본은 ‘분할통치’되어도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이 없었다면 중국과 소련에 분할 통치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잊어서는 안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이 문장이 의도하는 바가 정확히 뭔지 알기 위해 몇번을 계속 읽었는데요. 저런 저자의 관점이 립서비스가 아니라면 꽤 일반적인 역사로서 이해하고 있는 일본인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책 소개의 앞서 사설이 조금 길었습니다. 책은 전체적으로 시진핑 시대의 중국과 앞으로 일본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관점과 일반적인 중국 정치와 사회에 대한 분석을 첨언으로 담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과 지방 분권, 관료들의 부패 문제, 농민공, 소수 민족 문제 등을 대사를 역임했던 시절에 중국 각 지역을 방문하여 바라보고 느꼈던 개인적 체험을 곁들이며 서술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의 일본 대사가 아주 특이하게 일본 중앙 정부의 눈밖에 날 각오를 하고 중국 각지를 돌아본 행동은 대단하다고 느껴지더군요. 자신의 소신대로 좀 더 중국과 중국인들을 명확히 알기 위해서라고 그 이유를 들고 있는데요. 책상 앞의 책상물림은 아니어서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저자는 현재 일본이 중국과 당면하고 있는 문제로는 ‘센카쿠/댜오위다오’에 대한 영토 분쟁으로 보고 있으며, 일본측에서는 센카쿠/댜오위다오에 대한 영토 분쟁은 없다고 일관하고 있지만 중국은 1992년 영해 및 인접 구역 법이라는 볍률을 제정하며 “댜오위다오는 중국 영토”라고 명확히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와 관련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2012년 9월 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이후의 정상회담에서 회의를 마친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복도에서 이른바 ‘복도회담’을 했다고 나오는데요. 센카쿠 지역에 대한 일본의 정부쪽 구입과 관련해 후진타오 주석이 이에 대해 물었고 그런 과정에서 두 정상이 복도에서 싸운 모양입니다. 저자는 이를 ‘복도에서 싸우며 헤어지는 유치한 외교’라고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데요. 저는 전에 몰랐던 사실이라 잠시 메모를 했습니다.

중국의 대두에 따른 일본의 영향력 쇠퇴는 이미 예견된 일입니다. 지금도 진행이 되고 있죠. 여기에다 2차대전 종전 후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은 일본의 수정주의적 역사 문제로 중일 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간의 관계에도 심각한 냉각기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저자는 먼저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에 있어서 양측간의 무력을 사용하지 말자는 선언부터 시작해 과거 저우언라이식의 묵인하고 넘어가는 방법으로 서로간의 신뢰를 쌓자고 주장하는 듯 한데요. 아주 전형적인 일본인의 관점입니다. ‘역사수정주의자 아베’가 총리 자리에 있는 한 자신들은 별로 바뀌지 않고 한국과 중국이 바꿔라는 식의 요청이죠. 저자 자신도 막상 그 한계를 인식했는지 최종적으로 힘들 경우에는 국제 사회에 의지해 국제적 공감대를 만든다는 식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과거 역사에 대한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부터 겸허히 받아들일만한 정치인을 추리는 작업을 일본 국민들이 먼저 하는 것이 선행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적 문제를 들고 나오기 전에 자신들의 내부 문제 먼저 반성하는 것이 이치에 맞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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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의 미국사 1980~2011 - 딘 베이커가 쓴
딘 베이커 지음, 최성근 옮김 / 시대의창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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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경제정책연구소의 연구원을 역임하고 경제정책연구소를 공동 창립한 미국내의 대표적인 경제학자인 딘 베이커의 ‘가장 최근의 미국사 1980~2011’를 일독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딘 베이커의 이 책을 빨리 읽어보려고 했는데 이제서야 기회가 닿았네요.

우선 가장 먼저 이 책에 대해 밝히고 싶은 것은 번역도 그렇거니와 원래 원문 또한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로 이뤄진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문장들과 글 전체의 가독률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덕분에 즐겁게 술술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베이커는 1980년 부터 2011년까지의 백악관과 의회 위주의 미국 정치사를 담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엄밀히 따지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마지막 임기까지를 포함한 분량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2008년 뉴욕발 세계 금융 위기와 뒤이어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와 관련된 것은 추후에 씌어진 것으로 보이는 보론으로 대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됐든 간략하게나마 앞선 그 이후의 시기를 다루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일겁니다.

레이건 행정부 이전 즉, 카터 행정부까지는 그동안 자주 접했던 ‘미국의 일방주의’ 나 ‘우선적 개입주의’가 그렇게 노골적이지 않았는데요. 그래서 저자인 베이커도 이런 레이건 행정부의 출범을 ‘미국의 거대의 전환’ 이라는 측면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대외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미국이 그동안 자랑스럽게 강조해 온 ‘아메리칸 드림’의 기반인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소득과 성공이 실질적인 부유세 감세와 저학력 출신 노동자들이 기반인 되어 있던 제조업 부분의 실질 소득을 시장에 맡기며 동시에 정부의 무관심으로 일관해 복지 지출의 감소와 함께 대표적인 신자유주의적 삶을 국민들에게 감내하게 했다는 평가를 하는 것으로 비판적인 논점을 보이고 있는데요. 레이건은 임기 당시 경제 주체들에게 상당한 혜택을 손에 쥐어주고, 반대로 일반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미국의 많은 지식인들의 평가는 여기에 소개된 사례들만으로도 충분히 신빙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레이건 대통령의 임기 당시 불법한 개입이라고 봐도 무방한 ‘이란-콘트라’ 사건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요. 이란에 무기를 판매한 대금을 니카라과의 독재 정권 게릴라들에게 불법 지원한 것에 당시 국방부와 군부에서 대통령 모르게 추진했다는 일관된 발언은 뭔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었고, 레이건 임기 말에 이 사건과 관련된 관료들에게 사면권을 부여한 것은 설사 물리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황상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을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국 내에서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고 있는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1983년에 있었던 ‘그레나다 침공’ 에 대한 과정도 당시 행정부와 미군이 불법적인 수단으로 개입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상황 서술과 몇가지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사실 전반적으로 이 시기에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CIA에 의한 공작 정치와 개입, 그리고 파나마와 그레나다와 같은 군사력 투입과 같은 비도덕적인 방법도 불사했는데요. 사실 그동안 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을 통해 미국의 패권 시기의 자행된 매우 불합리한 사건으로 비판 받아왔고 단순히 미국 행위의 동조하는 많은 이들이 이것을 눈감아 왔는데요. 남미 지역을 포함한 아메리카 전역이 미국의 영향권으로 봐야되지만 여기에 속한 국가들이 미국을 신뢰하지 못한 것은 아르헨티나와 영국간의 포클랜드 전쟁 당시 미국이 잠정적으로 영국의 편을 든 선례를 남겨 앞선 그러한 비합법적인 공작과 개입과 더불어 이 지역의 미국의 평판과 신뢰에 금이 간 것으로 봐야될 것 같습니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과 같은 배경에는 이러한 측면이 분명 작용했다고 봐야겠죠.

이후 클린턴 정부 시기의 모니카 르윈스키로 비롯되는 성추문과 애초에 이것이 언론에 알려졌을 때 순순히 시인을 했다면 국내 여론이 심각하지 않았을 문제를 완강히 부인하다가 나중에야 시인해 이 사건의 여파가 작지 않았고, 북미자유협정안에 대해 민주당의 핵심지지층들이 반발을 보여 이에 따른 문제도 있었습니다. 클린턴 정부 동안은 대체로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렸으나 그 이면에서는 증시가 버블 상태에 있어서 이 점을 살펴보지 않고 경제적 호황만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를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2000년 대선 당시 플로리다 주 개표 논란으로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던 당시 개표 조작 사건은 조지 W. 부시에게 최종적으로 백악관의 열쇠를 손에 건넸지만, 정국 초기에 이러한 논란 등으로 당선된 신임 대통령이 의회와 국민들에게 보다 겸허한 자세로 나설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많은 득표를 배경으로 당선된 대통령처럼 부시 자신이 그렇게 행동했으며, 이러한 정치적 기조는 2001년 9. 11 테러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거치며 부시는 미국 대통령 역사상 가장 논란에 서게 됩니다. 이라크 전쟁 당시 주요 동맹국이라 불리우는 프랑스와 독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UN의 입장을 거부하면서까지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실제적 증거 없이 개입해 쿠바 관타나모 기지 등에서의 국제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포고 고문 사건까지 드러나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외면을 받았습니다. 현재의 트럼프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의 이러한 미국 우선주의에 향수를 느끼고 이를 본받으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양 국가의 개입에 막대한 전비를 쓰고서도 해당 국가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지도 못하고 오히려 내부 갈등만 더 심화시킨 결과로 이어진 것은 교훈을 삼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딘 베이커는 여러 행정부의 주요한 사건들에 비교적 상세한 자료를 갖다대며, 강한 비판을 하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부시 행정부 다시 카트리나 허리케인의 루이지애나 상륙 당시 부시는 재난본부 인사를 그에 맞지 않는 측근을 임영시키고 휴가를 갔다가 3일만에 백악관에 등장해 그 지역 대부분의 피난민이 흑인이었던 상황에 대응 실패로 1000명이나 되는 희생자가 발생하게 된 것은 미국 사회가 얼마나 인종적 편견과 사회 안전 기반 시설이 얼마나 되어 있지 않은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그동안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적지 않은 글들을 접해봤지만 지금의 미국은 시민들의 안전과 인간적 권리에 대한 의식이 정치권에서는 특히나 결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고 더불어 보편적 복지에 대한 미국인들 자체의 극심한 편견과 이기주의적 입장이 팽배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전세계 민주주의의 대형 내지는 수장이라고 봐도 무방한 미국이 나날이 ‘금권 정치화’ 되고 있는 현실이 우리에게도 위협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이익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소외의 범위에 있는 많은 미국 시민들이 나날이 마땅히 누려야 될 인간적 권리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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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전쟁 -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그레이엄 앨리슨 지음, 정혜윤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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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포드 대학으로 유학, 이후 여러 이력을 거쳐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의 학장을 역임, 전 미국 국무부 장관 헨리 키신저를 지도하고 오늘날에는 니얼 퍼거슨과 함께 응용역사학 선언문을 발표한 그레이엄 앨리슨의 ‘예정된 전쟁’을 일독했습니다. 원제는 Destined For War 인데요 번역된 국문 제목과는 약간 어감이 다르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크게 신경쓰이지는 않았습니다.

책을 열자마자 다소 의외였던 것은 우리가 한번쯤은 해외 기사를 통해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인물들의 찬사들이 소개되어있는데요. 500페이지 분량의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앨리슨이 인용하고 주장하는 내용들이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 특유의 관점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예상못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요즘의 중국 대두론과 그에 따른 중국 위협론에 대해 꽤 강경하고 현실적인 대처를 미국에게 요구하는 내용들이 근래의 흐름이었다면 저자는 미국과 중국 양측이 서로가 원하는 부분을 겸허하고 진지하게 고려해보자고 말하고 있는데요. 이 책의 3부에서 그러한 내용으로 ‘중국도 미국과 똑같다고 상상하라’는 소제목으로 읽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책의 도입 부분에는 과거 그리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을 통해 도출된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대해 상세히 입장을 밝히면서, 이 패권국과 도전국의 긴장관계가 예상치 않은 결과로 이어졌고, 더욱이 동맹 관계의 도시국가들로부터 반강제적인 연루까지 당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예기치 못한 전쟁에서 오늘날 미국과 중국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민주 평화론’과 함께 중국 위협론에 많은 학자들이 설명할 때 인용되는데요. 뒤이어 앨리슨의 세계1차대전의 상황에 대한 분석에도 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딱 들어맞는 사례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1차대전하에서 프랑스와 영국과 대응해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사소한 결전이 결국에는 전유럽의 청년층을 말살시키며 최악의 인명 피해와 극심한 사회 침체, 정치 적 혼란을 잉태한 최악의 대전으로 우리도 알고 있듯이 현재의 미국과 중국의 있을지도 모를 패권 대립은 양국이 이미 핵보유국으로 핵강국의 사소한 대결은 과거 케네디와 흐루쇼프간의 핵전쟁 가능성까지 치달았던 상황을 다시금 밟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리 모두에게 경고하는데요.

미국은 대 중국 관계에서 동서 냉전시기 소련을 제어하기 위해 양국이 협력했듯이 아예 양국의 이해의 접점이 전무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더군다나 미국과 미국의 안보동맹국들이 참여하는 대 중국 봉쇄에 이르기에는 그 위험부담이 적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앨리슨도 구 소련에 대한 봉쇄와 같은 방법을 중국에게 사용하기에는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타이완과 남중국해, 센카쿠/댜오위다오. 한반도 등지의 가상 시나리오들을 상세히 언급하며 이 지역의 아주 사소한 불씨는 미국과 중국의 전면적인 대결을 야기시킬 것이고 양국의 핵무기가 사용되는 상황은 필연하게 방지해야만 하는 차원에서 양국간의 서로에 대한 겸허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요즘의 트럼프 정부까지 미국의 대 중국 정책은 ‘중국이 과거 독일과 일본의 전철을 밟지 모른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런 과정은 대체로 중국 관련 정책이 모순된 상황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이에 미국의 핵심 국가 이익에 관한 명확한 설명과, 중국의 목표가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하고 전략과 국내의 산적한 문제에 대해 먼저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미국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반도와 관련해서도 미국과 중국의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제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요. 북한이 붕괴될 때, 워싱턴과 베이징은 한반도에 대한 서울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미국은 이에 한국에 주둔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일종의 빅딜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사고의 전환이랄까요. 물론 그 가능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미중 서로간의 입장과 이해를 교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꽤 흥미롭고 생각해볼만한 문제가 아닌가 저는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이 책을 3일에 걸쳐 읽는 동안 앨리슨 교수가 설명하는 국제정치와 지경학과 비슷한 형세 설명에 끊임없이 저도 머리를 굴렸는데요.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제안일까하는 일종의 머릿속 연구를 즐겁게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한반도에 대한 현실과 우리와도 밀접하게 혹여 연루의 위험이 될지도 모르는 센카쿠/댜오위다오, 대만 문제 등에 대한 앨리슨 교수가 혹여 있을지도 모를 가상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려해보는 꽤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한번쯤은 읽어보시길 권유 드려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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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내부의 적 - 자유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다
츠베탕 토도로프 지음, 김지현 옮김 / 반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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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체제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시민이라면 읽어볼 만한 그리고 그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제목의 ‘민주주의 내부의 적’ 을 일독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츠베탕 토도로프는 그 개인의 인생 여정이 남다른 면이 있는데요. 냉전 시기의 동유럽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1963년 프랑스로 이주한 다음 구조주의 이론가로 연구에 몰두했으며, 자기 자신이 이 책에서 스스로 인정했듯 사상가로서 문명의 교류나 충돌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약간의 논외지만 자기 자신을 사상가라고 지칭하는 스스로의 평가에 뭔가 신선한 느낌이 들더군요. 글의 맥락과는 다소 관계가 상이할 수도 있지만 사상가적 삶을 살아왔다고 담담하게 인정하는 태도가 어쩐지 부럽기도 하더군요.

냉전시기의 폐쇄된 공산 독재 사회에서 생활하다 사사롭게는 개인의 자유와 의지를 존중하는 자유 세계에 안착한 토도로프의 일전의 소회가 어땠을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만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사유 스펙트럼이 꽤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고려할 만한 기본 여건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더불어 실제로도 이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애정과 관심 또한 이 글 전체에 잘 녹아 있다고 여겨지더군요.

토도로프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들 중에 (정치적) 메시아주의, 신자유주의, 포퓰리즘, 다문화주의에 대한 극단적 배격 등을 로마시대의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대립으로 시작하고 있는데요. 인류 역사상 일찍이 법에 의한 인간 자유에 대한 규제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의 대결이 위의 두 인물에게 시작되어 투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결과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자연 상태에 풀어놓는 것을 거부한 ‘일종의 법에 의한 자유 규제’로 사실상 추가 기울었다고 봐야하는데요. 14세기 르네상스와 그 이후 계몽주의의 확립과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지는 근대 민주주의의 확립에 ‘인간의 의지’에 의한 논쟁이 지금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자는 더불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는 9. 11 테러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개인 경제 주체들에게는 자유를 허용한 반면, 반대로 시민의 자유는 점점 더 통제했다고 평가하며 신자유주의를 자발적으로 채택한 이 서구의 두 강대국은 시민의 권리와 자유에 있어서는 ‘거대한 정부’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요즘 우리가 느끼는 감상일겁니다. 또한 하이에크와 애덤 스미스와 그들에게 동조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상 ‘사회적 균형’애는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시장주의하에 자율적 경쟁과 이윤 추구가 오늘날 ‘극도의 사익화 인간’을 만들어낸 주범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에 있어서 얼마나 해악이 되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이 민주주의 체제의 선도 국가를 자임하면서 그들이 정치적 메시아주의를 내걸고 우리가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슬로건으로 이라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유고슬라비아에 예방주의적 개입과 적극적 전쟁으로 일관하면서도 결국에는 해당국의 석유 자원과 지리적 고려를 통한 자국의 이익 추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토도로프는 꼬집고 있는데요. 서구 언론과 여론이 너무나도 민주주의를 확대시키고 해당 국민들을 민주화의 대열에 동참시킨다는 명분으로 결과적으로는 큰 희생과 파괴가 동반되었다는 점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자의적인 프로파간다 시대에 놓여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유럽에 확산되고 있는 이슬람 인구의 유입과 그로 인한 종교적, 인종적 거부, 다문화주의에 대한 배격과 이를 토양으로 세를 넓히고 있는 포퓰리즘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진보하는 것은 선이라고 여기면서도 오늘날 민주주의 내부를 황폐화시키고 분리시키는 것들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있어야만 하고 이들을 어떻게 하면 개선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각자의 몫으로 남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도 마찬가지로 요즘의 유럽의 변화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으며, 과거부터 오랫동안 쌓아온 ‘유럽의 다양성의 전통’에 기대를 갖고 여기에 시민들이 ‘지금 당장 민주주의를!’ 이라고 나서서 외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진정 서로 존중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정치체제라면 우리들의 자유와 인권, 평등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거대한 정부나, 이익집단, 기득권층들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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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
테사 모리스 스즈키 지음, 서미석 옮김 / 현실문화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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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To The Diamond Mountains 라는 제목으로 지난 2010년에 출간된 호주의 역사학자 테사 모리스 스즈키의 책을 읽었습니다. 국내에는 2015년에 번역 출간되었구요. 저는 얼마전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서평이 알라딘 이 달의 역사책 리뷰에 선정되어 현실문화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기증받았습니다. 자리를 빌어 감사하단 말씀 드리고 싶군요.

책의 첫머리에 저자인 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한일병합이 이뤄진 1910년 경에 만주와 조선을 둘러보고 글을 쓴 ‘에밀리 켐프’의 당시 행로를 떠올리며 여행을 시작하고 있는데요. 켐프의 특별한 개인사를 언급하며 그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래전에도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동양을 둘러보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여겨지는데요. 더욱이 에밀리 켐프는 조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에 그녀의 기록의 곳곳에 마음이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추정한건대, 테사 모리스 스즈키 역시 분단국가인 한국과 북한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신이 스스로 읽힌 역사의 흔적들로 오로지 외부의 환경과 냉전 초기의 이념적 대결이 잉태한 책임이 오늘날 한민족에게 놓여져 있다고 여기면서 글 곳곳에도 켐프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애정이 보입니다. 켐프와 모리스-스즈키가 시공을 초월해 가지는 공감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지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저자의 행적은 하얼빈과 선양, 장춘을 거쳐 단동, 신의주, 평양을 향하게 되는데요 과거 하얼빈에서의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언급하며, ‘안중근은 조선을 장악하여 복속시키려는 일본의 야욕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근대화와 이토의 정치적 견해를 열렬히 지지하던 추종자였다.’ 라고 짧게 소개하고 있는데요. 일찍이 안중근 의사가 소위 아시아주의적 입장의 지식인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개화기와 그 시기의 한복판에 있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행적을 추종했다는 것은 너무나 믿기 어려웠습니다. 원전의 출전이 소개되었다면 좋았을텐데 조금 아쉬웠습니다. 또한 중국의 동투르키스탄 합병과 복속된 위구르 족과는 달리 중국에 동화되지 않고 떠도는 후이족을 소개하고 일제가 세운 만주국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일화들까지 엮어내어 꽤 흥미롭더군요. 불교에 대한 저자 자신의 감화적 태도도 심도있게 서술되고 있는데, 동아시아 역사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의 학문적 이해가 깊다는 것을 또 알 수가 있었습니다. 서양인이 이 정도로 우리를 비롯한 이 지역에 대해 면밀한 이해를 갖고 있는 것은 특히 놀랍더군요.

이후 평양에 도착에 받는 느낌과 도중에 만난 다른 나라의 관광객들에게 사람들이 정치적 신념 때문에 고문 당하고 살해당하는 나라의 땅을 밝아야 하는가, 밟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 전근대의 식민지 유산을 탈피하겠다고 하더라도 평양에 20세기 초 일본 근대주의자들이 깔아 놓은 격자도로가 기반이 되어 오늘날 도로의 기본이 되었다는 평가, 평양의 중류층 이상의 사람들은 북한의 동북지방에 산재해 있는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소개에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책이 쓰여진 2010년경은 남한의 박근혜 정부나 미국 일본 등도 김정일 사후 급속하게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보고 북한의 상황을 방치하기까지 했는데요. 자신들이 주체 사상이라는 이념으로 주민들을 철저히 관리하고 체제 유지에만 급급한 북한 정권과 북한의 지도층들이 서독이 붕괴해가는 동독을 사실상 떠맡은 사례를 그들은 생각조차 하기 싫을 것이라는 본래의 진실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판문점과 서울, 부산과 거제도를 거쳐 원산에 이르는 길은 결국에 책의 원제가 말하는 종착지인 금강산을 향하게 됩니다. 4대 사찰과 불교 유산이 산재해 있는 민족의 영산, 더불어 도교적 흥취까지 스며있는 일제 시기에도 일본인들 마처 경탄을 금치 못했던 금강산을 마지막으로 스즈키의 여정은 끝이 나는데요. 그녀는 영험하고 신성한 금강산에서 자신의 마음속 한켠에 어떠한 느낌을 두고 왔을지 궁금합니다. 자신의 학문적 연구를 통해 알게된 한반도와 근대 이후의 동북아시아의 역사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지도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또한 우리 한국인들은 저 이북의 땅은 밟지 못하지만 그녀가 전하는 북한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은 이 책으로나마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될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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