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
테사 모리스 스즈키 지음, 서미석 옮김 / 현실문화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To The Diamond Mountains 라는 제목으로 지난 2010년에 출간된 호주의 역사학자 테사 모리스 스즈키의 책을 읽었습니다. 국내에는 2015년에 번역 출간되었구요. 저는 얼마전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서평이 알라딘 이 달의 역사책 리뷰에 선정되어 현실문화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기증받았습니다. 자리를 빌어 감사하단 말씀 드리고 싶군요.

책의 첫머리에 저자인 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한일병합이 이뤄진 1910년 경에 만주와 조선을 둘러보고 글을 쓴 ‘에밀리 켐프’의 당시 행로를 떠올리며 여행을 시작하고 있는데요. 켐프의 특별한 개인사를 언급하며 그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래전에도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동양을 둘러보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여겨지는데요. 더욱이 에밀리 켐프는 조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에 그녀의 기록의 곳곳에 마음이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추정한건대, 테사 모리스 스즈키 역시 분단국가인 한국과 북한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신이 스스로 읽힌 역사의 흔적들로 오로지 외부의 환경과 냉전 초기의 이념적 대결이 잉태한 책임이 오늘날 한민족에게 놓여져 있다고 여기면서 글 곳곳에도 켐프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애정이 보입니다. 켐프와 모리스-스즈키가 시공을 초월해 가지는 공감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지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저자의 행적은 하얼빈과 선양, 장춘을 거쳐 단동, 신의주, 평양을 향하게 되는데요 과거 하얼빈에서의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언급하며, ‘안중근은 조선을 장악하여 복속시키려는 일본의 야욕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근대화와 이토의 정치적 견해를 열렬히 지지하던 추종자였다.’ 라고 짧게 소개하고 있는데요. 일찍이 안중근 의사가 소위 아시아주의적 입장의 지식인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개화기와 그 시기의 한복판에 있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행적을 추종했다는 것은 너무나 믿기 어려웠습니다. 원전의 출전이 소개되었다면 좋았을텐데 조금 아쉬웠습니다. 또한 중국의 동투르키스탄 합병과 복속된 위구르 족과는 달리 중국에 동화되지 않고 떠도는 후이족을 소개하고 일제가 세운 만주국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일화들까지 엮어내어 꽤 흥미롭더군요. 불교에 대한 저자 자신의 감화적 태도도 심도있게 서술되고 있는데, 동아시아 역사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의 학문적 이해가 깊다는 것을 또 알 수가 있었습니다. 서양인이 이 정도로 우리를 비롯한 이 지역에 대해 면밀한 이해를 갖고 있는 것은 특히 놀랍더군요.

이후 평양에 도착에 받는 느낌과 도중에 만난 다른 나라의 관광객들에게 사람들이 정치적 신념 때문에 고문 당하고 살해당하는 나라의 땅을 밝아야 하는가, 밟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 전근대의 식민지 유산을 탈피하겠다고 하더라도 평양에 20세기 초 일본 근대주의자들이 깔아 놓은 격자도로가 기반이 되어 오늘날 도로의 기본이 되었다는 평가, 평양의 중류층 이상의 사람들은 북한의 동북지방에 산재해 있는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소개에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책이 쓰여진 2010년경은 남한의 박근혜 정부나 미국 일본 등도 김정일 사후 급속하게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보고 북한의 상황을 방치하기까지 했는데요. 자신들이 주체 사상이라는 이념으로 주민들을 철저히 관리하고 체제 유지에만 급급한 북한 정권과 북한의 지도층들이 서독이 붕괴해가는 동독을 사실상 떠맡은 사례를 그들은 생각조차 하기 싫을 것이라는 본래의 진실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판문점과 서울, 부산과 거제도를 거쳐 원산에 이르는 길은 결국에 책의 원제가 말하는 종착지인 금강산을 향하게 됩니다. 4대 사찰과 불교 유산이 산재해 있는 민족의 영산, 더불어 도교적 흥취까지 스며있는 일제 시기에도 일본인들 마처 경탄을 금치 못했던 금강산을 마지막으로 스즈키의 여정은 끝이 나는데요. 그녀는 영험하고 신성한 금강산에서 자신의 마음속 한켠에 어떠한 느낌을 두고 왔을지 궁금합니다. 자신의 학문적 연구를 통해 알게된 한반도와 근대 이후의 동북아시아의 역사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지도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또한 우리 한국인들은 저 이북의 땅은 밟지 못하지만 그녀가 전하는 북한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은 이 책으로나마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될지도 모르겠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