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유럽 선언 - 만국의 시민이여, 연대하라
콜린 크라우치 지음, 박상준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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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기조에 의해 우리의 민주주의가 사실상 후퇴한 상황을 비판한 ‘포스트 민주주의‘을 만들어낸 콜린 크라우치는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정치학자입니다. 그는 민주주의에 있어서 신자유주의적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를 기울여 온 학자로 런던 정경대(LSE)와 옥스포드를 거쳐 현 워릭 대학의 명예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력으로 크라우치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의 유럽 대학 연구소(EUI) 정치학과의 학장을 역임하고 이후 워릭 대학의 경영대학원에서 현재 유럽에서의 배타적 민족주의에 관한 문제를 심도있게 연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크라우치와 관련해 다른 서평에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그의 ‘포스트 민주주의‘와 ‘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로 인해 영국 내부의 많은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엄청난 공격을 받은 바가 있는데요. 저는 여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적지 않은 글들을 읽었음에도 크라우치 만큼 매우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비판을 가한 학자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을 비롯한 유럽 학계에서도 학자들간에 서로 이해관계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분야에서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학자들에 대해 서슴없이 비판을 가하는 것을 보면 근래 보기 드문 학자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원제, ˝Social Europe : A Manifesto˝ 로 지난 2020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1년 5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저자인 크라우치는 현시대 유럽의 가장 큰 문제를 1장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 개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외국인 혐오 민족주의다˝라는 문장입니다. 약간의 논외로 저는 어떤 극우 유튜버의 재미난 책이 먼저 떠올랐습니다만 저자의 저 문장 자체가 현재의 유럽을 아주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1980년대 이후 떠오르는 샛별처럼 등장한 신자유주의에 의해 수많은 유럽의 진보 좌파들이 이 신자유주의적 이념을 벤치마킹하고 또한 그러한 사회화 과정에서 좌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스스로 자멸한 결과를 초래한 사회적 역사가 있었습니다. 더 많은 시장과 그에 따른 간섭받지 않는 시장 자유를 주장한 신자유주의는 ‘이익의 추구‘라는 저들의 가치에 일종의 도덕적 의무를 성공적으로 제거하기에 이릅니다. 제가 언급하고자 하는 핵심은 ˝신자유주의는 기껏해야 최소한의 자원만 갖춘 공공 서비스만 용납했고, 개개인에게는 각자도생의 이기적인 철학이 퍼지도록 부추겼다˝는 문장으로 대변될 수 있을텐데요. 크라우치의 논증대로라면 이러한 파괴적 신자유주의의 이행은 사회적 파편화를 초래했고 익히 아는 바대로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과 더 나아가서는 정치에서 소외받은 자들의 분노가 포퓰리즘의 토양이 되는 결과를 양산했습니다. 저자인 크라우치는 이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역설을 소개하고 있기도 한데요. 현재 전세계가 코로나 사태에 직면해 시민들의 보건을 위해 분배되어야 하는 백신과 마스크와 같은 보호장구 등을 국가의 역할이 없었다면 소란없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공 의료의 의무를 시장이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은 거의 허구에 가까우며 신자유주의자들의 그 허무맹랑한 이론 체계가 허버트 스펜서류의 사회 진화론에 있는 만큼 이들이 시민 다수의 안전과 건강에 주목하기 보다는 이 사태를 기화로 얼마나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겠는가에 집중했을 것이라 보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겁니다.

더욱이 크라우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현재 유럽 내부에서 과거 히틀러에 대한 유대인 학살의 역사를 겪고 나서도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주의가 근절되지 않고 잔존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슬람 이민자들에 대한 도를 넘는 증오와 과거 유럽의 계몽주의적 역사와 사회 민주주의의적 가치에 위반되는 행동임에도 보수 우파와 많은 기독교 우파들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싶어하는 서유럽과 이미 이러한 기반을 닦고 있는 헝가리와 같은 동유럽의 정치적 변화는 실로 기형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저자는 이슬람인들이 유럽의 기독교를 ‘이슬람화‘시키려는 음모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있는데, 이들의 비정상적인 프로파간다가 결국 제2의 히틀러를 불러오게 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에서 ‘세계화‘와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가 그들의 교조에 아주 상반되는 극우 포퓰리즘과 배타적 민족주의자들의 정치적 배경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화학적으로 저 극단주의자들과 맞지 않는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결탁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만 우리 정치에서도 이미 보수 우파와 신자유주의적 개발론자들이 아주 매끄럽게 결합한 것만큼 이와 같은 크라우치의 경고를 무슨 터무니없는 소설로 몰아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오늘날 신자유주의로 인한 문제는 전방위적인 이익화에 정치와 도덕을 제거한 나머지 이 고삐 풀린 망아지를 제어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점에 있습니다. 이미 미국 의회에서는 ‘지구 환경 변화에 대한 문제‘를 환경론자들의 음모로 몰고가는 로비가 공격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중고등학교 과정에 기독교적 창조론에 입각한 과학 수업을 개시하기 위한 로비에 막대한 자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적인 과학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권력이 다시 어느 정도 자신들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회복하여 정치 근간에 자신들의 입김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그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최소한의 계몽적 가치에 의거 엄격한 정교 분리와 독일과 같은 기독교 사회 민주주의 세력이 이를 잘 제어해 왔으나 전 유럽에 진보 좌파가 몰락하면서부터 이런 미래는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봐야할 것입니다. 저는 교조와 교조는 서로 일맥상통한다는 말을 믿고 있는데요. 기독교 교조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교조는 서로간의 이익에 대한 의견 교환이 극우 포퓰리즘이라는 매개로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음모론적인 시각이 아니며 신자유주의가 스스로의 ‘소위 글로벌주의‘를 부분적으로 철회하게 된다면 이와 같은 정치적 결합이 터무니없는 상상만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기독교주의가 노동자들의 고통을 더 요구하는 등의 사회 개혁과는 반대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 자체만으로도 신자유주의자들의 이익에 기본적으로 부합되는 것이며, 현재 유럽의 상황에서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인들을 성공적으로 축출해 내기 위해 민주주의적 다원주의를 무력화 시키기 위해선 신자유주의자들의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에서 이들의 야합이 상상속의 일로만 끝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유럽이 과거의 사회 민주주의적 가치를 외면하고 이런식으로 나아갈 경우 종래에 다시 한번 파시즘이 부활할 수 있다는 것에 저로서도 크게 공감하게 되었는데요. 이미 극우 포퓰리즘이 전혀 제거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코로나로 인해 배타적 민족주의가 들고 일어설 기반이 충분한 작금으로서 사회적 파행을 늦추기 위해선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토대가 저자의 말대로 개선될 필요성은 있어 보입니다. 즉, 이것은 신자유주의를 좀 더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것으로 변화시켜 저들이 더 많은 시장을 요구할 때, 우리는 더 많은 사회 보장책을 요구하는 것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크라우치는 요약하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극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제거하기 위해 나서는 것보다 인간성을 가미시키는 것에 초점을 보이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다만, 그동안 민주주의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공격이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이에 부역하는 많은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이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시민들 스스로가 얼마만큼 행동에 나설 수 있을지가 성패의 관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2008년 이후에 이 신자유주의적 이행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있어야만 했으나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여러 규제가 다시 미미해지면서 거대 부유층의 사적 로비가 사회적 자원을 등에 업고 많은 정부에 성공적으로 정책 회귀를 시킨 역사가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그러했고 유럽 또한 미국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신자유주의적 기조가 유지되는 상황으로 빠르게 전개가 되었습니다. 특히, 최근 영국의 브렉시트는 이를 아주 잘 대변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콜린 크라우치의 이 책은 1장과 2장이 신자유주의 비판의 날 것 그대로이면서 독자들에게 신자유주의가 어떤 식으로 우리의 권리와 정치를 훼손시켜 왔는지에 대한 서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나레이션은 특히 랑시에르 혹은 지젝은 갖고 있지 않은 매우 직설적인 어조를 담고 있어 에둘러 표현하는 다른 학자들과는 상이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전혀 돌려 말하지 않는 그의 양심은 우리에겐 꽤 귀중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문득 인간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독백이 자꾸 귓가에 맴도는 것은 크라우치와 제가 생각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론적 관점에서 약간 첨언을 드리자면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와 18세기 계몽주의 시기의 자유주의는 완전히 다른 개체임을 밝혀둡니다. 왜곡된 관념의 자칭 우파 독서인들이 자유주의의 유산을 신자유주의가 이어 받았다고 하는데 크라우치의 이 글에서도 언급되고 있듯이 유럽의 자유주의 좌파와 같이 앞선 자유주의가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맥락임을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인간 진보와 그에 따른 사회적 운동 등 억압 받는 사람들의 권익을 위해 움직인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와 비교하는 것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인식입니다

두 개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외국인 혐오 민족주의다

신자유주의는 기껏해야 최소한의 자원만 갖춘 공공 서비스만 용납했고, 개개인에게는 각자도생의 이기적인 철학이 퍼지도록 부추겼다

대체로 정치적 우파는 외부인의 배제를 추구하는 모든 내부 집단들의 대표자로 정의되었다

가장 큰 위험은 새로운 형태의 국가사회주의, 나치 이데올로기가 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재분배적 과세와 공공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은 가난이 대개 무기력과 게으름에 기인하며, 자칭 ‘노력해서‘ 성공한 부자들과 중산층들의 재산은 보호받아 마땅하다는 주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유럽연합에서 교조적인 신자유주의가 부상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 불평등의 폐해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 그래도 이 순간은 지나갈 것이고,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설교하는 보다 이기적인 사회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좌파 및 중도 정치 세력들은 지금 이 순간을 포착할 필요가 있다

질서 있는 노동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재정적 기여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기업의 요구에 따라, 고용 보장 비용은 고용주로부터 국가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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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5-19 0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개인적인 고민과 문제때문이긴 한데, 유럽을 배회하는 그 두 유령...기독교 안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요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에서 문제의 핵심을 발견할 지도 모르겠네요. 리뷰 감사해요 ^^

베터라이프 2021-05-19 15:21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han22598님. 부족한 서평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을 짦게 언급했습니다만 미국에서는 상당부분 정치권력화가 이뤄진 상황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저들의 이해관계가 이미 사회적으로 연관이 깊어서 쉽게 철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제가 우려하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지금도 견제책이 거의 없다고 봐야하는데 여기에 다른 세력이 콩고물을 먹기 위해 신자유주의적 기조에 탑승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조금 장황스럽게 썼습니다만 신자유주의의 비판과 유럽 상황을 폭넓게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크라우치의 이 책을 읽을 필요성이 있다 생각되네요. 좋은 독서되시기를 바랍니다 ^^

han22598 2021-05-20 05:12   좋아요 1 | URL
견제책이 없다는 점이 암울하네요.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해결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방향이나 지향점 정도는 제시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저는 사실 잘 아는 부분이 아니지만, 새로운 자극의 일환으로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초딩 2021-05-20 2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GAFAM 의 다섯 남자들만이 세금을 낼 날이 올거라고도 합니다. Google amazo facebook apple ms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그 단어가 참 좋지 않은것 같습니다. 찬양하는 건지 비꼬는건지 :-)
종의 다양성을 없애면 종이 멸망하듯이
신자유주의는 온 지구촌을 획일화 시키는 것 같습니다.
전주 한옥 마을도 여기가 명동인지 전주인지 모르게요. 그리고 그게 코로나 시대에 도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 같고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베터라이프 2021-05-20 21:01   좋아요 1 | URL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유가 획일적이고 제한적이라는 측면에서 차별적인데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도 있어요.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저항하지 못할 만큼 내면화가 너무 되어 있어서 경제에 좋은 거면 다 좋은거다 라는 식의 편의주의도 이에 한몫했지요. 거대 자본가들의 이익에 맞으니 신자유주의가 역사에서 퇴장하는 시기는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모두가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갈길은 너무나 멀었습니다 ^^ 댓글 감사합니다 초딩님.

추풍오장원 2021-05-24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입니다. 양손 엄지 척척!

베터라이프 2021-05-24 20:46   좋아요 1 | URL
너무 부끄러운 글인데 이리 좋아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오장원님도 잘 지내시고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