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프레드 로델 지음, 이승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1980년 6월에 작고한 (이 책에는 1981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나와 있으나, 위키백과에서는 사망 날짜까지 표기되어 있습니다) 프레드 로덱은 26세에 천재성을 인정받아 미 예일대 로스쿨 교수로 일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40여년간 존경받는 법학자로 명성을 떨치고, 특히 1939년에 출간된 이 책이 미국의 거의 모든 법률가들이 읽게 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킨 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어느 호텔에서 이름모를 변호사를 만난 일화에서 또한 손수 서문을 남긴 진보적인 판사 ‘제롬 프랭크 판사’의 소개까지 미루어 짐작해보면 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됩니다. 앞서 짧게 언급한대로 이 책은 지난 1939년 “Woe, Unto You Lawyers!”라는 원제로 처음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4년 후마니타스에 의해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간략히 이 책의 구성을 소개해드리자면 총 12장의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각 개별 주제들은 1장부터 10장까지 차례대로 논증되며, 그리고 11장과 12장이 글의 결론이자 이상적인 대안을 표방하는 형태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글의 해석과 관련하여 전체적으로는 미국의 연방법과 연방대법원 및 독립 시기의 헌법 취지와 시민권 및 대공황시기의 루즈벨트 행정부 시대를 주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법의 문외한이 특히나 미국의 연방법 체계와 이를 바탕으로 하위 법률로 실제 법치주의에 이르는 과정 전반을 다루고 이해하는 것은 다소 어렵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은 미국 헌법을 다루고 있는 국내 학자의 책 한권을 중도에 그만두었던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연유로 조만간 다시 잡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습니다.

이 글의 저자인 프레드 로덱은 미국의 사법체계와 그 관료들의 행태와 시스템을 여지없이 비판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배경에는 바로 “사법제도 및 사법부 역시 시민의 마땅한 견제를 받아야만 한다”는 권력이 마땅히 국민으로부터 나와, 각 정부 기관이 그러한 위임을 받아 정당한 통치 행위를 실행한다는 취지의 인식에 기반하고 있었는데요. 즉, 사법부가 크게는 민주제하에 정부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시민 모두의 견제와 감시를 받아야만 하는 당위성을 바탕으로 1장에서 그렇게 밝혀두고 있습니다. 약간 극단적인 주장일 수도 있으나 “우리의 정부는 ‘인민의 정부’가 아닌 법률가의 정부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미국에서 조차 연방대법원과 사법체계 및 사법 관료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또한 “법률업은 간단히 말해, 고등 사기술 high-class racket 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하는 것도 헌법에 기반한 하위 법률들이 판사의 재해석과 판결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며, 그러한 재해석이 과연 개인의 의견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헌법의 정의와 의지에 기반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역시 깊은 회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 홈스 대법관은 이와 관련하여 “법이 모호하고 부정확 할 때 법관 개인의 편견이 작용할 위험성”을 경고했고, 연방 대법원장인 찰스 에반스 휴스는 “우리는 모두 헌법 아래 있다. 그러나 헌법이란 법관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은근슬쩍 말했던 것은 특히,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사가 어떠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이렇게 논증이 이어지는 6장에서는 “법적 절차의 공허함과 부적절함”으로 사법 제도의 불분명성이 강조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저자의 인식에는 헌법의 각 조항을 하위 법률로 해석할 경우 각 법관들이 심각히 추상적이고, 불분명한 법적 용어들과 중의적인 표현으로 조항 자체를 누더기로 만들어 자신들이 아니면 (법률가들)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어 시민들의 정의를 위한 사법체계 자체가 더욱더 괴리와 거리가 생기는 결과를 낳았다고 저자는 일침합니다. 또한, 법률가들은 자신이 속한 직업세계에 대한 당위적인 반응과 필요성에 집착하여, 한발 떨어져 법과 사법 제도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심지어 “지역 사회에서의 지위, 업계 동료들 사이에서의 위신, 스스로에 대해 갖는 자부심이 몽땅 자신이 말하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가정위에 매달려 있다”고 이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률가는 그저 법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문장은 그것의 본위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법률가들은 알지만 비법률가들은 모르는 것”과 “법이라는 언어의 마술은 사회적 한계를 알지 못한다”는 등의 실랄한 표현들은 특히 법률과 해석에 이어 이러한 생태계 안에 들어가 있는 수많은 법률인들이 법은 아무나 다룰수가 없으며 설사 권력의 주체가 다수 시민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명확히 실현하고 합리적으로 다수 전반을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법률가들 뿐이다”라는 것은 실로 통탄할 지경입니다. 우리는 익히 수많은 정치학자들과 정치학을 통해 국가의 정당하고 필연적인 당위성을 제공하는 것이 헌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헌법은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좀 더 수월한 통치를 받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국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민들이며 과거 계몽주의적 공리에 따라 정당하고도 정의로운 가치를 사회와 국가에 세우기 위한 틀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그러한 헌법과 법률을 다루는 기술을 오로지 엘리트 관료주의와 다름없는 현 체계에 의해 매우 강력하고 틈이없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재교육 없이 “뛰어난 관료 자체”에게 일임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저자인 프레드 로델은 우리가 그동안 사법체계와 결탁한 거대기업 총수들과 부유층 들의 과도한 권력 행위에 대해 수도없이 또한 끊임없이 귀에 딱지가 붙도록 비판해 왔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역설합니다. 저는 일례로 기존의 사법 시스템의 관료들을 선발하는 로스쿨과 같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경력이 오래된 고위 판사들이나 대법원의 판사들 가운데 얼마정도는 지방 선거를 통해 선출하거나 출중한 능력의 변호사들 가운데 다수로 선발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강력하고 자비없는 사정을 판사들에게도 시행되어야 하며, 우리나라와 같이 판사를 해임하는 것을 오직 국회에 맡기는 제도 또한 시급히 개선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저자는 실효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사법 제도에 대한 개선안을 11장에서 여럿 제시하고 있습니다. 경제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의 처리를 위임하는 방안이라든지, 법원 안에 따로 결정기구를 만들어 기존의 판사들의 협의체가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이 아니라 ‘법률 실행위원’으로 위촉해 시민들이 전문적인 판결을 받게하자는 등의 제안들입니다. 사실 어느 민주국가이든 사법 당국의 기득권과 폐쇄성은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만들정도로 그 폐해가 심각했습니다. 헌법을 통해 인간이 인간을 판결하는 것 자체가 단순히 판사와 법정에 참석한 해당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저자인 로델이 밝히고 있듯이, 모든 일반인들이 “마땅히 동등하게 법을 살 수 있어야” 하며, 특별히 억울한 일을 당한 시민들이 적절하게 구제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공익 변호인 법인과 같은 기구를 만들어서 얼마간 공적 자금을 지원해 현재의 국선 변호사의 업그레이드 판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지 이 책을 통해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비범한 시민들이 각자의 생각을 제안하고 정치 자체의 책임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버트 달은 대중 정치의 오욕을 극복하여 모든 시민이 자신들의 비범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건전한 시민들이 모여 만드는 정치를 저는 아직도 희망하며, 이러한 가운데 사법과 행정 및 입법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시민들이 권력에 경종을 울리는 사회가 하루빨리 완성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풍오장원 2020-02-02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법률만능주의만큼 위험한 것도 없지요. 어떻게 보면 극도의 반지성주의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 같기도 합니다...

베터라이프 2020-02-02 19:37   좋아요 1 | URL
우리가 사법체계에 접근하기가 실로 어려운 부분이 시민과 법을 괴리시키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여기에는 법관들의 권위라는 문제. 판결에 이의는 없다는 등의 다소 비타협적인 측면도 한몫 한다고 생각이 드네요. 제가 극도로 경계하는 반지성주의는 우리 시민들이 무조건 멀리해야 하는 폐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댓글 감사드립니다.

숲노래 2022-06-13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마니타스가 처음이 아닙니다.
박홍규 님이 1986년에 처음 우리말로 옮긴 책이고
2014년 이 판은 ‘복간본‘입니다.

베터라이프 2022-06-13 09:10   좋아요 0 | URL
보충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숲노래님. 잠깐 첨언을 드리자면 원서의 처음 출간을 말씀드린거고 글 보시면 후마니타스가 국내 처음 번역이라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하여튼 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