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들은 노래 3 – 한강(韓江)

나는 지금/ 피지 않아도 좋은 꽃봉오리거나/ 이미 꽃잎 진/ 꽃대궁/ 이렇게 한 세상 흘러가도 좋다// 누군가는/ 목을 매달았다 하고/ 누군가는/ 제 이름을 잊었다 한다/ 그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새벽은/ 푸르고/ 희끗한 나무들은/ 속까지 얼진 않았다// 고개를 들고 나는/ 찬 불덩이 같은 해가/ 하늘을 다 긋고 지나갈 때까지/ 두 눈이 채 씻기지 않았다// 다시/ 견디기 힘든/ 달이 뜬다// 다시/ 아문 데가/ 벌어진다// 이렇게 한 계절/ 더 피 흘려도 좋다

* 한강의 시를 읽는다. 몇 편을 읽고 덮어두었고 얼마 지나지 않았으리라, 시집(‘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을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는데 벌써 4년 몇 개월이나 전의 일이다.

나보다 더 나를 잘 표현해주는 남의 글이 있음을 모르지 않지만 “피지 않아도 좋은 꽃봉오리거나/ 이미 꽃잎 진/ 꽃대궁”이란 말은 무릎을 치게 한다.

좋은 것은 반복되는 구절(이렇게 한 세상 흘러가도 좋다, 그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이렇게 한 계절/ 더 피 흘려도 좋다)이 묘한 위안을 준다는 사실이다.

너무 늦게 피어오르거나 너무 일찍(섣부르게) 피어오르는 열정은 난감한 일일 터.

윤증(尹拯)이 내세운 리은시사(離隱時舍)는 때<시(時)>가 무르익었을 때 은둔<은(隱)>에서 벗어나는<리(離)>, 용(龍)으로 비유되는 현자(賢者)의 상황을 ‘주역(周易)’ 구절을 참고해 의미화한 당호(堂號)이다.

감정도 뜻도 계획도 때에 맞게 세상에 나와야 할 것. 이미 피웠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지 말고 피울 무언가의 때를 만들 것.(새벽 4시 배고파 잠이 깨 간단 요기(療飢) 후 생각 한 줄 총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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