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미뤘던 청소(淸掃)를 했다. 윤동주 시인의 말처럼 삼동(三冬)을 참아온과제를 전격 감행한 것이다. 먼지 쌓인 불필(不必)의 잡동산이(雜同散異)들을 증거인멸(證據湮滅)하듯 없앴다. 복사 해놓고 읽지 않은 자료들과 유효 기간을 넘긴 건강보조 식품들이 줄줄이 나왔다.

 

자료들이야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비싼 돈 주고 산 식품들을 버리려니 마음이 아팠다. 청소는 정리(整理)를 포함한다. 정리(整理)는 정리(定離) 즉 헤어짐이기도 하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책들을 바로 찾을 수 있게 된 것이 정리(定離)의 결과이다.

 

이런 저런 짐들로 빼곡했던 책장 꼭대기를 치워 공간을 만들고 바닥에 쌓아 두었던 책들을 그 자리에 올렸다. 지난 겨울부터 이번 봄 사이에 필요해 찾다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다시 산 책이 두 권이나 된다. 청소(淸掃)라는 글자는 쓸어 없앤다는 뜻의 소()이다. 그러니 비로 쓸고 물을 뿌림을 의미하는 소쇄(瀟灑)라 해도 좋다.

 

마음에 쌓인 먼지 같은 것들을 불사르는 것이니 다비(茶毘)라 해도 좋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에서 바람과 물을 얻고 지키는 것이 풍수(風水)라면 신외(身外)의 물()들을 청소해 표류하던 마음의 바람과 물을 바로 흐르도록 한 오늘의 청소는 마음의 풍수라 할 수 있다.

 

예전 나는 책상을 정리하지 않으면 책을 읽지 못할 정도였으나 그런 강박은 어느새 무신경으로 변했다. 그 무신경을 딛고 정리를 하게 된 것은 어제 들은 김진 목사님의 함석헌과 간디강의 덕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은 일을 한다는, 아니 그런 존재가 사람이라는, 아니 미물(微物)도 노동한다는.

 

신영복 선생님은 달팽이도 공부한다는 말을 했다. “지난 여름 폭풍 속에서 세찬 비바람 견디며 열심히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을 깨달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에 의하면 공부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 형식이다.(‘담론’ 18 페이지)

 

그렇다. 공부와 노동이다. 덧붙일 것이 있을까?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사랑한다는 말이리라. 공부와 노동, 그리고 사랑이 하나로 수렴하는 삶을 살아야 하리라. 아니 그런 삶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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