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의 시 - 나희덕의 현대시 강의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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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관심을 좋은 해석이나 창작 등으로 연결 짓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기성 평론가들이나 시인들의 해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고른 책이 나희덕 시인의 한 접시의 시이다.

 

이 책은 나희덕 시인의 현대시 강의집이다. 한 접시의 시란 시를 음식에 비유한 말이다. 어떤 음식은 직접 그것을 만들어보도록 부추기듯 좋은 시는 직접 써보도록 하는 면이 있다. 저자는 모든 시에는 저마다의 입구와 출구가 있고 그것을 통과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한다.(5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해석에 지나치게 매일 필요가 없는바 훨씬 독창적인 해석이나 창작을 기대한다고 말한다.(7 페이지) 책은 여섯 파트로 나뉘어 있다. 시적 언어와 상상력, 화자와 퍼소나, 구조와 리듬, 묘사와 이미지, 은유와 상징, 서정과 서사 등이다.

 

시에서 중요한 것으로 우선 거론할 것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힘이다.(16, 17 페이지)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집중하는 힘이다. 가령 시적 발견을 위해서는 남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개성적인 방식으로 탐구하는 일이 필요합니다.”(19 페이지)란 글을 보라.

 

이 글은 시적 상상력은 막연한 공상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에서 시작됩니다.”(137 페이지) 같은 글과 같은 이야기이다. 저자에 의하면 제대로 본다는 것은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서 대상을 감지하고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앉히는 끈질긴 과정을 의미한다.(141 페이지)

 

한편 저자는 시를 쓰는 일은 자신의 안과 밖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목소리들을 듣는 일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115 페이지) 저자는 시를 만나기 위해서는 빈약한 발상을 언어로 다듬느라 책상 앞에서 끙끙거릴 것이 아니라 문밖으로 걸어 나가 세상에 살아 숨 쉬는 것들을 만나야 한다고 조언한다.(20 페이지)

 

시 속의 는 시인 자신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 재창조된 이다.(53 페이지) 저자는 고형렬의 거미의 생에 가보았는가를 예시하며 여러분도 바람이 차가운 날, 유리창 밖 난간이나 나뭇가지 사이에서 흩날리는 거미줄과 거기 매달린 거미를 유심히 보며 그 거미가 여러분을 향해 무어라 말하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알아들으려고 마음의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75 페이지)

 

시쓰기란 불교 승려들이 화두를 오매불망 간직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은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보아야 하고 깊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발레리는 시와 산문을 이렇게 표현했다. 시는 춤 같고 산문은 보행 같다고. 시는 심미적 특성이나 행위 자체가 목적이고 산문은 대상이나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하고 언어의 유용성을 강조한다.(87 페이지)

 

이는 저자가 말했듯 시와 산문을 리듬의 유무로 분류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다. 산문에서 리듬이 없는 것이 아니다.(87 페이지) 한편 보행과 달리 산책은 별 목적 없이 자유롭게 걷는 행위이다.(103 페이지)

 

서정시에 대해 저자는 하나의 순간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통합함으로써 영원한 현재를 창조하는 양식이라 말한다.(151 페이지) 좋은 비유는 만물에 대한 열린 마음과 감각이 깊이 체화될 때 나올 수 있는 것이다.(153 페이지)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 에둘러 말하기를 즐겨 하고 모순되는 진술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157 페이지) 시에서 에둘러 말하기, 감추면서 드러내기의 대표적 방식이 은유와 상징이다. 이 수사(修辭)들러 인해 시가 어렵게 느껴지지만 반면 그럼으로써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의미가 쉽게 탕진되지 않는다.

 

상징은 집단적이고 원형적이고 은유는 개별적이고 독창적이다.(159 페이지) 은유나 환유를 통해 시인이 표현하려는 것은 AB 자체가 아니라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미묘한 의미들이다. 은유가 불러일으키는 연상 작용에 의해 A이기도 하고 B이기도 한 것, A도 아니고 B도 아닌 제3의 의미가 생성된다.(159 페이지)

 

은유는 의미의 동일성과 보편성을, 환유는 의미의 개별성과 특수성을 중시한다.(161 페이지) 물론 두 수사는 대립적이기까지 하지만 실제로 한 편의 시에서는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원관념과 보조 관념이 너무 동떨어지면 연관성을 찾지 못해 은유의 해석이 불가능할 것이고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식상한 비유에 그칠 것이다.(161 페이지)

 

저자는 “3할은 알아듣게/ 아니 7할은 알아듣게 그렇게/ 말을 해 가다가 어딘가/ 얼른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묶어 두게라는 김춘수 시인의 말을 예로 든다. 저자에 의하면 이는 은유의 탄력성을 강조한 것이다.(161, 162 페이지)

 

세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감각과 사유의 과정이 필요하다.(164 페이지) 저자는 몽상을 통해 이미지를 제대로 길어올리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실보다 가치를 발견하라고 충고한 바슐라르의 말을 인용한다.(191 페이지)

 

한 접시의 시를 반복해 읽으면 시를 읽는 하나의 유용한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도 따라 읽고 언젠가 시를 쓰도록 하자. 우선 다른 여러 시론집들을 찾아 읽도록 하자. 섬세하며 설득력 있는 시 읽기의 모범 사례로 한 접시의 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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