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39) 임동확 시인의 시집 '누군가 나를 간절히 부를 때'를 두 번째로 샀다. 알라딘 중고서점 가로수길점에서였다. 직원이 "이 책 구입하셨는데 또 하시나요?"란 말을 했다

  

구입 장소(첫번 째는 종로점)가 다르지만 같은 알라딘 중고서점 내에서 이루어진 구매이기에 자료가 통합되어 남음으로써 생긴 일이다. 나는 "선물하려고 그래요."란 말을 했다. 안 해도 되는 말이었을까?

 

어떻든 설마 구입한 책을, 그것도 며칠 사이에 다시 구입하겠는가 생각하고 불편해 할 수도 있겠지만 마치 간단한 책 상담이라도 받은 듯 싶어 기분이 좋다.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을 처음 보는 책으로 알고 또 구입하는 것은 탐서가들의 특성 중 하나이다. 지금껏 5000권이 넘는 책을 구입했지만 책벌레가 아니어서인지 나는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

 

그런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들의 실수가 부럽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순간적 영감으로 충만한 천재 유형의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책도 술술 읽어낼 것 같다. 나처럼 구체 세목들을 기억하느라 애쓰지도 않고 재빨리 핵심과 요점을 파악한 뒤 그 내용을 잊었다가 필요할 때 무의식에서 잘 인출할 것 같다.

 

무의식이 있다는 것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자기동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최화 지음 박홍규의 철학’ 15 페이지) 자기 동일성이 있어서 나를 나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물질은 기억이 없으므로 자기동일성이 없어 매순간 타자화한다.(= 다른 존재가 된다.) 물질은 분자 차원에서 매순간 진동한다,(물론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자기동일성을 외부에 투영해 매순간 달라지는 물질(사물)을 동일한 것으로 파악한다. 무의식이 우리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입증하는 것이다.(최화 지음 박홍규의 철학’ 15 페이지)

 

인간은 태어났다가 죽는 과정으로서의 (존재가 아닌) 사건이다. 24시간마다 모든 세포가 교체되는 췌장, 열흘만에 전면 갱신되는 백혈구, 한달만에 대부분의 단백질이 교체되는 뇌 등 복잡한 사건의 집합이 인간이다.(송희식 지음 존재로부터의 해방’ 71 페이지)

 

존재로부터의 해방이란 말은 3(3: 인간, 시간, 공간)이 존재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는 말이다. 3(3)은 존재가 아닌 사건이라는 의미이다. 상호의존, 상호연결되었다는 의미이다.

 

최화 교수는 인간은 기억이 있어 자기동일성이 있다고 말하고 송희식 변호사는 인간은 존재가 아니기에 자기동일성이 없다고 말한다. 두 저자가 사용하는 말은 같지만 맥락이 다르다. 최화 교수의 말은 인간이 물리적으로 동일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변화함에도 자신을 자신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재훈 교수의 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연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명사로서의 자연인 반면 서당이라는 공간적 특성에서 보는 자연은 명사가 아닌 형용사 또는 동사로서의 자연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가 자연을 명사로 인식하는 것은 자연을 인간이 정한 범주의 틀 속에서 대상화하는 것으로 이런 대상화로 인해 결국(結局: 바둑 용어에서 일반 용어로 유입된 말)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향유하고 보호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오만함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자연을 형용사 또는 동사로 이해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과 그것들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 전개되는 현상에 공감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태도를 내포한다.(126, 127 페이지)

 

이는 신()을 명사로 이해하는 것과 형용사로 이해하는 것(신적인..)의 차이와도 연결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서당은 내게 그리움(경험하지도 못하고서!)의 대상이자 희유(稀有)의 매력을 가진 공간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이미 소멸했지만..)

 

물론 나는 이 시대착오적 동경(憧憬)에서 잠시 머물다가 나갈 생각이다. 어쩌면 내가 주역(周易)’을 읽고 논어(論語)’를 읽는 것은 그 갈 수 없는 경지를 간접 체험하려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광섭 교수의 물리학과 대승기신론도 인용하고 싶었지만 큰 공사(!)가 될 듯 해 생략. 다만 이 세계는 찰나생 찰나멸하는 (실체가 아닌) 사건들의 집합이라는 말은 하고 싶다. 송희식의 존재 = 소광섭의 실체. 이제 다시 과학책들 좀 읽을 때가 되었다. 이강영 교수의 스핀’, 리언 레더먼, 크리스토퍼 T. 힐의 힉스 입자 그리고 그 너머’, 사카이 쿠니요시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상대성이론같은 책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