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
한재훈 지음 / 갈라파고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김수영 시인이 초등학교에 들어 가기 전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를 느끼던 차에 한재훈 교수의 서당 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이란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입학 통지서를 받은 일곱 살 시골 서당으로 내려가 15년간 한학을 공부해 사서삼경을 뗀 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간 저자의 특별한 이력이 반영된 책이다.

 

현재 저자는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이다. 본문에는 1904년 생인 겸산(兼山) 안병탁 선생이 아흔 살 시절 스물두 살의 저자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 노우(老友)라는 표현을 썼다는 구절이 있다.(207 페이지) 이 구절에 따르면 저자와 스승의 나이 차이는 68년이다. 그러니 저자는 1972년생이고 서당 공부를 한 시기는 1978년부터 1993년 사이이다.

 

겸산(兼山)이란 주역의 대성괘 가운데 하나이다. ()을 뜻하는 간()괘가 겹친 괘이다. 산처럼 흔들리지 않고 굳센 기질을 의미한다. 스승이 제자에게 벗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의미심장하다. 더구나 스승은 존함 뒤에 조아릴 돈()이란 글씨를 쓰기까지 했다. 퇴계(退溪)도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하지 않고 강론(講論)했다는 표현을 했다.

 

공자는 제자들이 자신을 두고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아신 분이라 칭하자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알았던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민첩하게 추구했던 사람이라 말했다.(176 페이지) 또한 누구보다도 배움에 목말라 했기에 열린 마음으로 누구에게라도 배우려 했다.(176 페이지) 스승의 완고한 자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유연한 행동이다.

 

스승은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좋은 벗이다. 스승과 벗의 관계를 말한 사상가가 있다. 명나라 양명학자 탁오(卓吾) 이지(李贄)이다. “스승이 될수 없으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고,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스승으로 섬길수 없다.”는 말이 그의 말이다. ‘분서(焚書)‘로 유명한 사상가이다.

 

저자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를 이야기한다. ’소학(小學)‘에 나오는 이 말은 스승으로부터 받는 은혜가 부모로부터 받는 은혜만큼 크다는 의미이다.(162, 163 페이지) 스승은 선택되는 존재이다. 임금이나 부모와 달리. 어버이나 임금은 바꿀 수 없지만 스승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바꿀 수 없는 관계는 간함을 통해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지만 바꾸는 것이 허용되는 관계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166 페이지)

 

이 부분에서 나올 말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은 지속적으로 열을 가하는 것 즉 변화 이전에 있는 어떤 것에 지속적으로 열을 가함으로써 변화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다.(170 페이지) 이 말에는 누구든 완벽할 수 없기에 반드시 끊임없는 배움의 열정을 가지고 늘 새롭게 하는 자기양성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스승이라는 의미가 있다.(171 페이지)

 

군사부일체를 말하며 군과 사와 부라는 주체가 아닌 그들로부터 비롯되는 은혜가 갖는 의미 또는 성격에 주의해야 한다(156 페이지)고 말한 저자는 예기(禮記)’에 나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선보인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일 수 있지만 그보다 본질적으로는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를 성장시킨다는 의미이다.

 

교학상장은 한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인바 이때 그 현상의 주체는 교사(敎師)이다.(187 페이지) 군과 사와 부라는 주체가 아닌 그들로부터 비롯되는 은혜 즉 추상 명사에 주의해야 하듯 교학상장에서도 스승과 제자라는 주체가 아닌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추상 명사에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논어위정편에서 온고이지신을 말한 공자는 예기(禮記)’ ‘표기(表記)’편에서 도()를 향해 가다가 중도에서 그만 두더라도 몸이 늙어가는 줄도 잊고 남은 날이 부족한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부지런히 하루 하루 애쓰다가 죽은 뒤에나 그만 둘 것이라는 말을 했다.

 

지속적으로 열을 가하는 것 즉 온()을 말한 공자의 다른 말인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은 깃털의 총체로서 날개를 뜻하고(199 페이지) 날개의 주체인 새는 특정 종류의 새가 아니라 날갯짓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 즉 어린 새이다.(200 페이지) 이는 공부에 끊임없이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과 늘 새롭게 자기 수양의 준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세상이란 없었던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만나지 못한 세상을 말하며 그 새로운 세상이란 세상이 변해서 우리 앞에 던져진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변화하고 성장했을 때 만나게 되는 세상이다.(203 페이지)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과 스스로 힘써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쉬지 않음을 의미하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을 연상할 만하다.

 

저자가 서당 공부를 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의사로부터 비롯되었다. 어머니가 반대해 저자에게 선택권이 부여되었는데 저자가 형처럼 서당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함으로써 전격 결정된 사안이다.(32 페이지) 물론 저자의 아버지는 삼형제를 똑같이 학교에 보내지 않고 서당에 보내 공부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의 아버지가 너희들 가운데 한 사람 정도는 대학에 가서 현대학문을 겸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는 말을 했다. 저자는 아버지의 이 뜻에 따라 현대학문을 공부하게 되었다. 누가 새로운 공부를 할지는 형제들이 알아서 정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는데 저자가 선택된 것이다.(110 페이지)

 

검정고시와 대학 입시 준비를 거쳐 고려대 철학과에 진학한 저자는 동서양의 철학을 섭렵했다. 저자가 인상 깊게 읽은 책들 가운데 하나로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들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서당 교육과 서양식 교육의 차이를 질적으로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서당은 계단처럼 나이가 다른 학생들이 함께 기거하며 공부하고 예절을 배우는 공동체이지만 저마다 다른 글들을 읽고(61 페이지) 스승으로부터 배우지만 공부란 결국 자율적으로 보완하고 관리해가는 것(75 페이지)이며 어떤 글들을 더 읽어야 하고 어떤 글들을 덜 읽어도 되는지는 철저하게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다.(100 페이지)

 

서당에서는 100번의 성독(聲讀: 소리내어 읽기)을 통해 문장을 암송(暗誦)을 할 것을 요구한다. 서당에서 암송을 중시하는 것은 그것이 문리(文理)가 트이게 하기 때문이고(64 페이지) 글을 장악하게 하기 위해서이다.(68 페이지) 문리에 대해 저자는 글의 결을 이야기한다. 장악에 대해 저자는 글을 충분히 소화해 전체적 이해가 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라 말한다.

 

저자의 글을 통해 전통 한학 공부를 하는 서당과 현대식 학교의 분명한 차이를 알 수 있다. 현대의 교육 체계는 너무 인위적이고 통제적이고 획일적이다. 서당은 그렇지 않다. 자율적이고 인간적이고 학문적이다.

 

저자가 공부한 서당은 초동서사(草洞書舍)란 곳이다. 스승에게 받아들여질 때 우여곡절이 있었다. 저자는 먼저 공부하고 있는 형이 스승께 동생을 제자로 받아주실 것을 말할 것이라 생각했고 형은 동생인 저자가 청할 것이라 생각해 결과적으로 아무런 말 없이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결과가 빚어졌다.

 

이에 선생님이 지금 뭐하는 것이냐 물으셨고 저자는 글을 배우려 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네가 언제 내게 글 배우겠다고 한 적이 있으며 내가 언제 너를 가르치겠다고 한 적이 있느냐 하셨다.(141 페이지) 급기야 선생님은 저자에게 책 들고 당장 나가라는 말을 했다. 사태가 결말이 난 것은 선배들이 선처(善處)를 청해서였다.

 

서당 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은 촘촘한 인문학적 사유가 시종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다. 나로서는 신영복 선생님의 책들을 읽을 때 느꼈던 것과 비교할 만한 감동을 느꼈기에 상당히 고무적임을 밝힌다.

 

예에 깃든 정신이 아까워 양을 바치는 의식을 보존했다는 의미의 애례존양(愛禮存羊)의 고사를 이야기하며 이미 없어져 버린 서당을 통해 그 안에 스며있는 소중한 가치를 음미하고 그런 가치를 통해 오늘 우리가 직면한 문제 상황에 새로운 해결의 단초를 찾아보고자 한다는 말을 한 머리말에서부터 배움으로 인해 나의 삶이 변화, 성장하고 그로 인해 좋은 세상을 위한 파장이 나로부터 비롯되게 하라는 마지막 장의 마지막 말까지 저자의 책은 수미일관하고 논리적이며 따뜻한 인문학적 성찰과 사색으로 빛난다.

 

깊게, 치밀하게 사유하기의 전범(典範)을 본 느낌이다. 깊고 치밀하게 읽는다는 것은 새로움을 담보하려는 시각이 있어야 가능하고 또 그런 읽기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출 수 있는 것이리라.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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