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도봉(道峯) 답사일은 낮에는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밤에는 진눈깨비가 날린 시간이었다. 일정에 포함된 두 주인공인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의 묘와 연산(燕山)의 묘가 대비되어 보였다.

 

나는 연산의 묘를 보며 폐군(廢君)의 묘는 일반인의 묘보다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역 중천건괘(重天乾卦)도 생각했다. 중천건괘의 여섯 효() 중 마지막 여섯 번째 효는 너무 높이 날아오른 용이 후회하는 것을 뜻하는 항룡유회(亢龍有悔)의 의미를 갖는다.

 

다섯 번째 효는 날아오른 용이 하늘에 있음을 의미한다. 우응순 교수는 경복궁(景福宮) 경회루(慶會樓)의 경회(慶會)를 군신간에 서로 덕()으로 만나는 것이라 전제한 뒤 주역 중천건괘()의 구오(九五)가 그 대덕(大德)으로써 구이(九二)의 대덕을 보고, 지기(志氣)가 서로 맞아서 그 도를 행하는 것 같이 하면 모든 어진 이가 부류대로 나와서 국가가 창성하게 될 것이니 이른바 용이 구름을 따르고 범이 바람을 따르는 것으로 설명한다.(‘누정(樓亭), 선비문화의 산실’ 95 페이지)

 

삼가 한번 논해보건대란 단서를 달고 말한 이 부분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구오(九五)와 구이(九二)를 설명 없이 인용했다는 점이다. 주역에서 구()는 양을 뜻한다.(; 은 음을 뜻한다.) 구오(九五)는 다섯 번째 양효(陽爻), 구이(九二)는 두 번째 양효(陰爻)인데 저자가 그 의미를 설명하지 않은 것은 그 정도는 다 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중천건에서 다섯 번째 효는 날아오른 용이 하늘에 있음을 뜻하고 여섯 번째 효는 너무 높이 오른 용이 후회하는 것(항룡유회: 亢龍有悔)을 뜻하니 당연히 군주는 다섯 번째 효에 배당되어야 하리라. 연산(燕山) 같은 경우가 항룡유회일 것이다. 연산은 재위 10년인 1504년 갑자(甲子) 1125일 이런 시를 지었다.

 

<덕도 없이 외람되게 왕업을 이어받아/ 백성에게 임한 지 십년이 넘네/ 매양 밝지 못해 부끄럽고/ 항상 교화가 하소함을 한하노라...> 이름을 가리고 보면 영락 없이 겸양의 시로 읽히지만 안타까운 후회의 글이 아닐 수 없다. 쓸쓸해서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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