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도봉 문화 유산 코스(벽초 홍명희 집터, 고하 송진우 집터, 가인 김병로 집터, 위당 정인보 집터, 간송 전형필 가옥, 연산군 묘역, 김수영 문학관, 함석헌 기념관)를 순례(식사 포함 10시 30분 - 14시)하고 시간을 내어 종로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 책 두 권(박이문 교수의 ‘둥지의 철학‘, 임동확 시인의 ‘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을 산 뒤 다시 함석헌 기념관 유리 온실에서 수요일의 락(樂) 읽기 모임을 가졌다.(18시 30분 - 20시)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 갖기로 한 이 낭독 모임은 오늘이 첫날이었다. 오늘 모임에서 낭독한 글은 함석헌 선생님의 ‘씨알의 설움‘이었고 참석자는 모두 일곱 명이었다.(생각 외로 성황이어서 좋았다.)

오늘 읽은 내용들 둥 문질빈빈(文質彬彬)이란 말로 설명할 글이 있어서 반가웠다.

산 책 가운데 이런 구절을 읽고 한동안 그 뜻을 음미하며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철학은 과학적 이론이나 서술처럼 세계의 객관적 재현이 아니라 상상적 산물인 소설 즉 픽션에 가깝다.. ‘주역‘, ‘도덕경‘, ‘중용‘과 같은 중국 고전의 저자들의 세계관이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 니체, 베르그송, 화이트헤드, 콰인, 사르트르, 메를로 - 퐁티 등 서양 철학사를 빛낸 철학자들의 세계관들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그냥 우주, 자연의 거울이 아니라 앞뒤가 서로 맞아 떨어지는 방대한 하나의 소설, 한 편의 시와 같은 언어로 구성된 세계라는 픽션 즉 언어적 구조물들 가운데의 몇 가지 대표적 예들에 불과하다.˝(‘둥지의 철학‘ 44 페이지)

‘주역‘이 그렇듯 다른 철학 체계도 언어로 구성된 세계 즉 픽션이라는 말이다. 관건은 얼마나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가, 이리라.

문제(?)는 ‘주역‘의 특이성이다. 이 책은 일관성 있는(때로 종잡을 수 없는) 픽션이되 예측과 관련된 책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오늘 낭독 모임에서 나는 보르헤스가 한 ˝말은 흐르고 글은 남는다는 격언은 말이 하루살이처럼 덧없이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에 비해 글이 항구적이며 죽어 있다는 것. 말은 빠르고 가벼운 것, 플라톤의 말처럼 빠르고 신성한 것이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모두 말로 가르친 스승들이었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흐른다‘는 의미를 소통으로 풀었다.

오늘은 이렇게 하루가 갔다. 내일은 더 짜임새 있는 준비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