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부에 남은 세종(世宗)의 발자취를 조사, 정리하는 숙제를 해야 한다.

마음이 언제 움직일지 장담할 수 없다. 안산, 광명, 수원, 화성, 평택, 용인, 성남, 광주(廣州), 이천, 여주, 안양 등 경기 남부의 여러 지역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

세종의 능인 영릉(英陵)이 있는 여주는 너무 많이 알려져 하기 싫고 내가 살고 싶었으나 이주에 실패한, 퇴촌(退村)이 있는 광주는 우울해 하기 싫고...

동기들의 숙제를 열람하지 않아 장담할 수 없지만 나는 아픔이나 기쁨 등 인간 이도(李祹)의 인간적 면모에 초점을 두고 숙제를 할 생각이다.

세종은 재위시 다섯 차례 왕릉을 조성했다. 그가 아버지 태종(太宗)의 승하(昇遐)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특별히 알려진 것이 없어 그의 정감을 아는 데 한계가 있지만 그는 총애해마지 않았던 맏딸 정소공주가 열세 살에 죽자 염(殮)을 못할 정도로 시신을 오래도록 끌어안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세종은 며느리를 얻는 과정에서도 큰 아픔을 겪었다.

세자와의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던 문종의 첫 번째 빈인 휘빈 김씨는 세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세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신을 태워 가루를 내 술에 타 마시게 했고 두 번째 빈인 순빈 봉씨는 동성애로 물의를 빚고 쫓겨났다.

세 번째 빈이 바로 단종을 낳은 현덕왕후 권씨이다. 권씨는 출산 후 이틀만에 세상을 떠났다.

세종의 인간적 면모라 했지만 문종이 빈(嬪)과 악연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하는 부질 없는 상상을 하게 된다.

권씨는 안산군 치지고읍산(治之古邑山)에 매장되었다가 후에 남편 문종의 현릉(顯陵: 경기도 구리 동구릉 중 하나)으로 이장되었다.(신병주 교수 지음 ‘조선왕실의 왕릉조성’ 66, 67 페이지)

이재영은 현덕왕후 권씨가 묻혔던 곳이 현재의 경기도 시흥 군자봉 자락이라 말한다.(‘조선 왕릉, 그 뒤안길을 걷는다’ 78 페이지)

조선은 왕들이 거의 예외 없이 가족 중의 누군가를 죽인 패륜의 나라(인류학자 김현경의 표현)이거나 세종이나 정조처럼 성격은 다르지만 슬픔으로 얼룩진 나라였다.

자꾸 이렇게 슬픔만 보이는 것은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겠다. 순응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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