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세계는 무림(武林)의 세계이다.˝ 지난 해 말 내가 한 시인께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무림이란 무사 또는 무협의 세계를 말한다. 시인의 세계는 생존하기가 그 만큼 어려운 고난의 터라는 의미일 것이다.

최근 장석주 시인의 책(‘은유의 힘‘)에서 비슷한 글을 접했다. 시쓰는 것을 투쟁이라 말한 글이다.

우물에서 정갈한 물을 길어올리듯 새로운 은유를 생각해 내야 하니 그럴 것이다.

국문학 연구자 시나다 히로코는 정지용 시인의 작품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한국인은 자기 감정의 구석구석까지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얻었다는 말을 했다.

히로코에 의하면 민족이라는 것도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정지용 시인은 근대인의 심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창출했다.(‘최초의 모더니스트 정지용‘ 참고)

히로코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지용은 아방가르드 즉 정예 선발 전투원이었던 셈이다.

나는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들은 또 하나의 싸움 이야기이다. 윤동주 시인에 관한 것이다.

자신의 내면과 치열하게 싸운 시인이 윤동주 시인이라는 것이다. 수긍할 만하다.

물론 전쟁터 같은 삶임을 인정하며 할 말은 자신의 싸움이 가장 치열하고 자신의 싸움만이 의미 있다고 보면 안 되리라는 점이다. 양보의 미덕은 싸움을 보는 데에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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