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연이어 두 분의 타계 소식을 접했다. 어제는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선생님, 오늘은 혈기도 사범 우혈(宇穴) 허장수 선생님. 모두 1936년생으로 내 어머니와 같은 연세시다. 황병기 선생님은 지난 해 12월 한무숙 문학관에 들렀을 때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었고 허장수 선생님은 지난 해 여름 갑자기 타계하신 것을 오늘 확인한 것이다.

 

잘 아시듯 황병기 선생님의 아내 한말숙 선생님이 한무숙 선생님의 동생이다. 지난 해 3월경 창덕궁 앞의 혈기도장을 방문해 선생님을 뵙고 일이 끝나는 5월 이후 등록할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었다.

 

그리고 4월경에는 그 분의 신간 몸이 나의 주인이다를 샀다. 82세의 연세에도 다리를 찢고 찍으신 사진이 인상적인 책이다. 물론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거리가 너무 멀어서 슬그머니 생각을 접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어제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 앞에서 나희덕 시인의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란 시를 외우고 그 의미를 설명한 것이 기억난다.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는 목련 그늘이 좋으니 꽃 지기 전에 놀러오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친구에게 끝내 놀러가지 못하고 그가 타계한 뒤인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놀러간다는 시이다.

 

우혈 선생님은 20대 후반 설악산에서 만난 천우(天宇) 선생님이란 분으로부터 17년간의 산중 수련을 받고 하산해 오늘에 이른 분이시다. 어제는 타계 사실도 모르고 지인에게 그 분 이야기를 했었다. 책에서 무엇보다 흥미를 끄는 부분은 스승인 천우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선생님과 함께 설악산에서 산 지 17년이 지난 어느 날 선생님의 영()이 암굴을 나가더니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한다. 우혈 선생님은 이를 천우 선생님이 뼈와 가죽만 암굴에 남겨두고 정좌한 채 세수(歲數) 107세로 시해등선(尸解登仙)하신 것이라고 풀었다.

 

우혈 선생님은 세수 82세로 타계하셨다. 건강하신 분이 왜 갑자기 타계하셨을까? 타계 소식을 알린 한 네이버 블로거에 의하면 혈기도는 행공 하나하나가 고되고 통증이 큰 수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달은 고사하고 한 두 번만에 중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세조차 잡기 힘들고 무엇보다 호흡이 아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초심자는 익숙한 분들의 동작을 흉내내는 것도 어렵고 보통의 경우 창피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해 수련하는 두 시간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꽤 힘들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몇 달을 버티다 보면 큰 고비는 넘기게 되지만 그럼에도 은은한 통증은 계속 되는 이 수련을 왜 하냐고 묻는다면 몸의 변화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그 블로거는 말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고 고통 속에서도 몸이 시원해지고 가뿐하다는 것이다. 압권(壓卷)이라 할 것은 권하지는 못하지만 인연이 있는 분이라면 꾸준히 하셔서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그 블로거의 말이다.

 

나는 선생님의 타계가 믿어지지 않아 도장에 전화를 하고 말았다. 사고사(事故死)가 아니라면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과 몸이라는 소우주의 질서는 별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허수경 시인의 혼자 가는 먼 집의 한 구절을 생각하게 된다.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陳設)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 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치병(治病)과 환후(患候)가 따로인 경우가 있는 것처럼 세상사는 제 길이 있는 것 같다. 선생님의 타계는 요즘 암()이란 몸의 정상적인 질서를 벗어난 세포가 무한 분열이라는 자기 길을 가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하나의 숙제로 다가온다. 나는 지금 선생님의 유품인 '몸이 나의 주인이다'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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