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어와 법고와/ 낮은 해거름 사이/ 뒤돌아보면, 천년을 기어 뻘밭을 통과한/ 진흙게 한 마리/ 대웅보전 민흘림 두리기둥을/ 자욱한 범종 소리로 짚어 오르고 있다.”..김명리 시인의 먼 길의 마지막 부분이다. 흘림은 뿌리, 몸통, 머리 등 기둥 부위의 지름에 변화를 주는 것임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민흘림 기둥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게 마름질한 기법의 기둥이고 배흘림 기둥은 중간 부분을 굵게 하고 위와 아래 부분을 가늘게 마름질한 기법의 기둥이다.

 

두리기둥은 둥근 기둥이다. “벌레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란 구절이 있는 조지훈 시인의 봉황수(鳳凰愁)‘란 시가 생각난다.

 

한 블로그에 기둥이 종류별로 분류되어 예시된 것을 보았다. 이 블로그는 배흘림 기둥의 예로 부석사 무량수전 기둥을, 민흘림 기둥의 예로 논산 쌍계사와 경복궁 경회루의 기둥을, 둥근 기둥인 원주(圓柱)와 모난 기둥인 방주(方柱)로 구성된 직립(直立) 기둥(다듬은 기둥)의 예로 경복궁 교태전 기둥을, 원목을 껍질만 벗겨 자연 그대로 세운 기둥인 도랑주의 예로 충남 서산의 개심사(開心寺) 기둥을 들었다.(직립이라는 말이 맞지만 곧게 다듬은 기둥이라는 의미이고 도랑주는 휘어진 모습을 그대로 세웠다는 의미이다.)

 

흘림은 착시(에 의한 불안한 심리)를 교정 또는 보정하는 기법이다. 기차길 같은 평행선은 먼쪽이 좁아 보이고 가까운 쪽이 넓어 보이지만 기둥은 높은 쪽이 굵어 보인다아래보다 위가 굵으면 불안해 보인다. 이를 교정하는 것이 흘림이다. 귀솟음과 안쏠림도 착시 교정을 위한 방편이다.

 

귀솟음은 기둥을 모두 같은 높이로 하면 건물의 양쪽 끝이 낮게 보이는데 이런 착시를 보정하기 위해 네 귀퉁이의 기둥을 약간 높게 하는 것을 말한다안쏠림은 귀기둥을 곧게 세우면 윗 부분이 밖으로 벌어진 듯한 착시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보정하기 위해 귀기둥을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지게 하는 것을 말한다.(착시 현상이 심할 경우에만 주로 한다.)

 

문화재보수 기술자 김종남은 귀솟음의 예로 완주 화암사 극락전과 서산 개심사의 대웅전을 들었다반변 종묘(宗廟) 정전(101 미터)처럼 도리칸이 한없이 늘어나는 목구조에서는 귀솟음 기법을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말을 했다.(’한옥 짓는 법‘ 188, 189 페이지)

 

기둥을 알면 한옥 구조의 절반은 안 것이라고 한다우리나라의 기둥에는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놀라운 과학적 원리, 세계의 건축가들이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수준 높은 건축 기법이 감추어져 있다.

 

조선의 궁궐 공간 구조와 건축‘(궁궐 지킴이), ’궁궐 건축 양식과 용어’(궁궐 길라잡이) 등의 프로그램에서는 상기(上記)한 것들을 배우는가궁궐이든 일반 가옥이든 공간 구조나 건축 양식을 모르면 해설에서 그 구조물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만 하게 된다.

 

클래식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내적 구조를 모르기에 작곡가 개인 이야기만 하는 것처럼궁궐 지킴이나 궁궐 길라잡이의 건축 프로그램에서 무엇을 배우든 별 관심이 없다.

 

그냥 가서 들으면 듣는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수준이 어떻고..“식의 논의는 불편하다. 프로그램의 수준은 결국 강사 즉 전문가의 수준이다. 전문가는 결국 극복의 대상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러기 위해 배울 수 있으면 그들에게 배우면 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한국의 재발견이 궁궐 지킴이인지 길라잡이인지, 또는 우리문화숨결이 궁궐 지킴이인지 길라잡이인지 적응이 안 된다.(머리가 나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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