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다 히로코는 ‘최초의 모더니스트 정지용(鄭芝溶)‘에서 야나기 무네요시(유종렬; 柳宗悅; 1889 - 1961)를 언급한다.

이는 정지용이 도시샤 대학 시절 야나기 무네요시의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이 증언된 것과도 관련지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사나다 히로코는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해 일본에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선구적 연구자는 뜻 밖에도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말을 한다.(116 페이지)

이 말만으로 부족했는지 사나다 히로코는 도시샤대학 영문과의 역사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나 의외로운, 그러나 낯익은 이름에 부딪힌다는 말을 한다.(154 페이지)

이는 영문학 전공자가 아닌 야나기 무네요시가 스물 다섯의 나이에 윌리엄 블레이크에 대한 선구적 연구로 큰 화제를 낳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무네요시의 파격은 뜻 밖이란 말, 너무도 의외롭다는 말로 설명해도 지나치지 않다.

잘 알듯 도시샤대학 영문과는 윤동주가 공부한 학과이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부족하다.

윤동주는 스승격인 정지용이 공부한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선택했다고 해야 충분할 것이다.

정지용의 도시샤 유학 시기는 1923년에서 1929년 사이고 윤동주의 도시샤 유학 시기는 1942년 즉 조선인 유학생들에게는 너무 엄혹했던 태평양 전쟁 말기였다.

상당한 사회적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질 없는 가정이지만 윤동주가 한 15년 일찍 태어나 무사히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지 궁금하다.

히로코는 조선의 민중예술에 관심이 깊었던 무네요시가 시인 지망생인 정지용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는지 또 정지용이 야나기 교수를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그것에 관해서는 남겨진 글이 없어서 수수께끼로 남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윤동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무네요시가 윤동주의 시를 알았는지도 그렇다.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에서 이숭원 교수가 말했듯 ˝시 작품 속에는 시인이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의미가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기에 야나기 무네요시가 만일 윤동주의 시를 알았다면 어떤 생각으로 시들을 풀어냈을지, 우리가 헤아리지 못하고 윤동주도 의식하지 못한 부분을 야나기 무네요시가 읽어냈을지 궁금하다.(‘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에서 다루어진 윤동주 시인의 시는 ‘또다른 고향‘, ‘간(肝)‘, ‘참회록‘ 등 세 편이다.)

* 조선 미술을 비애감을 지닌 아름다움이란 말로 표현했던 사람, 민화(民畫)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 1922년 조선총독부의 광화문 철거 방침에 반대해 일본 잡지 ‘개조‘에 ‘사라지려는 한 조선 건축을 위하여‘란 글을 기고(이향우 지음 ‘궁궐로 떠나는 힐링 여행‘ 62 페이지)한 사람 야나기 무네요시를 뜻 밖의 지점에서 만나는 것은 예기치 못한 재미를 누리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야나기 무네요시의 두 얼굴‘ 읽기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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