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 만큼 여러 차원에서 논의된 박물관도 드물다.

남의 나라들에서 약탈해온 미술품들로 채워진 박물관이라는 논의(이보아의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

군주의 갤러리에서 공공미술관으로 바뀐 첫 사례라는 논의(‘캐롤 던컨의 ‘미술관이라는 환상‘),
강박증, 히스테리, 멜랑꼴리, 도착증 등이 읽히는 그림들로 채워진 정신병동으로서의 박물관이라는 논의(백상현의 ‘라깡의 루브르‘),

반드시 보아야 할 관람품들이라는 논의(나카노 교코의 ‘처음 가는 루브르‘),

대표 소장품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훔친 빈첸조 페루지아를 이야기하며 논의를 전개한 경우(다리안 리더의 ‘모나리자 훔치기‘) 등등..

당시(1911년) 페루지아는 ‘모나리자‘가 자신에게 미소를 짓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이 말은 지어낸 말은 아닌 듯 하다.)

음악을 간단한 재생 기구로 들을 때와 고급 앰프로 들을 때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나듯 복제 또는 픽셀 형태의 그림을 보다가 실제 박물관에서 그림을 볼 때 생기는 느낌의 차이는 놀라울 것이다.
감동, 뭉클, 환희 등등의 말을 사용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미술사가인 캐롤 던컨은 루브르 박물관의 큐레이터를 지낸 제르망 바쟁과 스웨덴의 작가 고란 쉴트의 미술관론(論)을 소개한다.

제르망 바쟁은 미술관은 시간이 정지된 사원(寺院)이라는 말을 했고 고란 쉴트는 미술관은 삶의 투쟁과 자아에 대한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방을 제공하는 초연하고 초시간적이며 고양(高揚)된 명상의 상태를 추구하는 무대라는 말을 했다.(‘미술관이라는 환상‘ 38 페이지)

스탕달 신드롬이란 것이 있다. 거대한 미술관 안에서 너무 큰 놀라움에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은 서글픈 경험을 하거나 아름다움 앞에서 너무 감탄하다 못해 절망스러워지는 체험을 말한다.(레진 드탕벨 지음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70 페이지)

사원이기도 하지만 스탕달 신드롬을 느끼게 되는 곳이기도 하고 빈첸조 페루지아처럼 기이한 체험을 하는 곳이기도 한 미술관 또는 박물관..

나는 사실 스탕달 신드롬은 과장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스탕달 이후 그와 같은 기이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내게 미술관 또는 박물관은? 나는 미술관 또는 박물관에서 감동, 불편함, 시간 정지의 기이한 느낌, 고양된 명상감 등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탕달 신드롬은 절대 느끼지 않을 것 같고 다만 생각할 수 있는 곳, 느끼는 곳 즉 도서관에 가깝다. 새해에는 다양한 미술관, 박물관 등을 갈 생각이다.

올해 내가 관람한 미술전시 가운데 서울시립 미술관에서 열린 자율진화 도시전(展)과 교보 아트 스페이스의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화전(윤동주 시인의 시들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전시한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는다.

박물관 프로그램 가운데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쇠 - 철 - 강‘과 ‘왕이 사랑한 보물‘이 좋았다.

문학관은 김수영 문학관이, 영화는 ‘매기스 플랜‘(2017년 2월 2일. 시네큐브)이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 2017년은 어느 해보다 희망적이었고 열심히 애썼고 그런 만큼 힘도 많이 든 해였다.

아듀 2017.. 내년을 기약한다. 아쉬움과 기대 속에 2017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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