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반생기
양주동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최측의 농간판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敎檀(..교단) 四十年(사십년)回憶(회억)'이란 부제를 병기하지 않고 제목만을 명기한 책이다.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결합한 저자만의 글쓰기를 수필이란 장르로 한정짓지 않기 위해서이고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사실 혼동의 소지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저자 무애(无涯) 양주동(1903 - 1977) 선생님(이하 저자)은 우리나라 최초로 신라 향가 25수를 해독한 국어학자이고 우리 고어를 의식적으로 글쓰기에 활용한 분이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몇 어찌'란 글을 통해 그 분의 성향이나 스타일을 알 수 있었거니와 깔끔한 노란 색 표지가 인상적인 전집 형태로 새 단장되어 나온 책을 보니 읽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저자의 책은 술의 힘에 편승해 써내려간 문학 책이 아니라 깊고 거침없고 정교한 사유가 압권인 책이다. 저자는 문학을 자신의 평생의 기호(嗜好)라 말한다. 자칭 한문학 중독자, 신학문 중독자인 저자의 글은 종횡무진 지식의 보고(寶庫)들을 섭렵한 내공에 기인한 유서 깊은 것이다.

 

()()() 세 방면을 겸수(兼修)한 저자의 끝내의 귀의처는 국학 곧 국문학의 사학(斯學)이었다. 저자는 열한 살 때 동네 야학숙(夜學塾)의 숙장겸 선생 역할을 수행했다.(: 글방 숙) 저자는 이때 학비 일체는 숙장(塾長)인 자신이 부담하고 월사금은 없고 속수(束脩: 입학할 때 내는 돈) 대신 한 달에 술 한 병을 지참할 것을 요구했다.

 

구학(舊學)의 대가가 신학(新學)을 접할 때 어려움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삼인칭(三人稱)이란 말을 처음 듣고 논어에 나오는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의 그 삼인행인가, 아니면 좌전에 나오는 삼인점 종이(三人占 從二)‘의 그 삼인점인가 궁구했다고.(삼인행 필유아사는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스승이 될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고, 삼인점 종이는 세 번 점을 쳐서 두 번 나온 괘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신학문 중 수학을 가장 좋아했다. 앞에서 몇() 어찌()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은 공간 속 도형이나 대상들의 치수, 모양, 상대적 위치 등을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측량과 관계된)geometry를 중국에서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기하 시간에 저자는 안기하(安幾何)로 통하는 안일영 선생이 대정각(맞꼭지각)은 상등(相等: 같다)하다는 문제를 증명해내는 것을 보고 놀라 근대문명에 지각(遲刻)하여 ”, “도장만 찍다가 드디어 봐라, 어떻게 되었느냐?”의 망국을 당한 내 나라도 대개 시골뜨기나 자신 같은 무지의 과정의 소치였구나! 오냐 기하를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는 가위로 실제 각을 만들어 대정각이 같다는 것을 증명한 저자와 달리 수식만으로 깔끔하게 증명해낸 안일영 선생이 자신의 도출 과정을 가리키며 봐라,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은 데서 나온 말이다. 저자가 이름을 날린 것은 약관 20세의 와세다대 초년급 학생으로 춘원 이광수의 중용과 철저‘(동아일보 수록)를 반박하는 철저와 중용‘(조선일보 수록)이란 글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였다.

 

춘원(1892 1950)은 저자(1903 1977)보다 11살 연상이다. 열 살 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저자는 자신의 기주벽(嗜酒癖)과 한때의 경음(鯨飮: 고래가 물을 마시듯 술을 많이 마심)은 모두 전가(傳家)의 내력이라 말한다. 저자는 기주(嗜酒: 술을 즐김)했는데 술과 관련된 중국 고전들로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단지 술만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시회(詩會)가 발전하면 주회(酒會)가 되고, 시회는 번번이 시루(詩樓)로부터 주막으로 옮겨짐이 항례였다.(135 페이지) 저자는 청춘은 한창 서럽고 인생은 그저 외롭고 사랑도 차츰 권태로워졌기에 술이 자꾸 늘어만 갔다고 한다.(138 페이지) 저자가 술과 글로 어울린 사람들은 나도향(1902 1926), 이은상(李殷相: 1903 1982), 염상섭(廉想涉: 1897 1963) 등이다.

 

술은 염상섭과, 글은 이은상과였다(나도향의 본명은 나경손, 호는 도향, 필명은 빈이었다.) 저자에 의하면 염상섭은 시에 자못 흥미가 없었음에 대하여 자신은 소설의 경계를 아주 몰랐다. 염상섭이 끙끙거리며 열심히 퇴고(推敲)해 쓴 치밀하고 끈기 있는 문장을 저자는 트리비얼리즘이라 평했는데 정작 그런 저자는 구상한 소설을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저자는 이를 일러 버선 한 켤레도 꼼꼼히 말아보지 못한 시골 색시가 서울 마누라의 저고리 깃, 섶 솜씨를 비평하는 격이라 말한다.(150 페이지) 저자는 그리도 자긍(自矜)이 심하던 시를 중단하고 평론과 잡문에 종사하다가 신라가요 연구에 전()하였다고 한다.(179 페이지) 저자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우연히 읽고 선생도 일찍이 자신처럼 객기를 이국에서 잠깐 부린 일이 있었거니와 만일 선생이 자신의 글을 읽는다면 후생이 가외라 했을 것이라 말한다.(208 페이지)

 

저자는 1921년에 일본에 갔다가 중간에 지진으로 인한 재해 때문에 1년을 휴학하고 1928년에 와세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6년 공부 기간을 개인의 영화나 일신의 이해를 꿈에도 계교(計巧: 여러 모로 빈틈없이 생각하여 낸 꾀)해본 적이 없고 오직 겨레를 계몽하고 지도하고 향상하여 독립과 해방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한 시간들이었다고 말한다.(228 페이지) 충분히 공감한다.

 

저자가 회월 박영희, 필봉 김기진, 빙허 현진건, 노산 이은상, 금동 김동인, 서해 최학송 등 유명 문인들과 어울린 모임 가운데 시조의 현대적 의의에 대한 토론이 가장 인상적이다. 저자는 시조의 정신을 살리자는 쪽이었는데 일부에서 봉건 시대의 이데아라고 주장했다. 두 진기한 발언이 있었다.

 

김동인(金東仁: 1900 - 1951)은 시조라는 것은 도무지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김동인은 시조를 개수작, 당치도 않은 객설이라 칭했다. 저자는 이에 자신이 한 시조혁신론의 평범, 진지한 일석의 변을 듣고 도리어 일종의 반발감을 느껴 잠깐 역설적인 독설을 농()한 모양이라 말한다.

 

신경향파의 작가 서해 최학송은 시조 집어치우라는 말을 했다. 저자는 술에 취해 한 그 말을 시조() 집어 치우고 술이나 마시자는 소리인지 시조 같은 유한 문학을 아예 현대문학에서 집어치우자는 뜻인지 알지 못하겠다는 말로 마무리한다.(314 페이지)

 

저자는 서해의 그날 밤 진의는 아마 영원한 비밀이겠으나 자신은 그것이 이념적, 위치적으로는 사회파에 기울어지고 인간적, 체질적으로는 민족파에 친근한 그의 딜레마적 입장에서 고민된 나머지 취중에도 궁여의 일책으로 고심 안출(案出)된 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314 페이지)

 

저자는 뜻 밖에도 H. G 웰스의 타임머신을 이야기한다. 사연인즉 소동파가 술을, ()를 낚는 갈구리라 칭한 것을 살짝 고쳐 술은 현실을 잊게 하는 에테르, 시간을 줄이는 비행기라 말하며 (시간 단축술을 논한) 웰스가 술이라는 간단한 틀의 축시(縮時: 시간 단축)적인 기능을 작품에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가 자신과 같은 주도(酒徒: 술꾼)가 아니었기 때문으로 실천적인 경험과 착상이 부족한 탓이니 섭섭한 일이라 말한 것이다.(351, 352 페이지)

 

저자는 문재(文才)도 뛰어나고 그 만큼 아량(雅量)도 크다. 저자의 아량을 문재에 기반한 아량이라 할 수 있다. 초나라 왕이 명궁(名弓)을 잃자 신하들이 찾아보기를 청하자 왕이 초나라 사람이 잃은 것을 초나라 사람이 얻었으리니 찾아서 무엇하겠는가, 라 말했다. 이를 들은 공자가 왕의 생각이 크지 못함을 아까워 하였다. 왜 사람이 잃은 것을 사람이 얻었으리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라 말했다.

 

이에 저자는 공자의 생각이 크지 못하다. 왜 자연은 얻고 잃음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왜 하필 사람이리오?라 말했다.(368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두 가지 지적 결함을 이야기한다. 하나는 독일어를 통 모르는 것, 다른 하나는 아주 음치(音癡)인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릴케, 카프카의 여러 작품을 원어로 읽어보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라는 것이다. 또한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도 아무 영감이 없었음이 괴로운 일이었다고 말한다.(431 페이지)

 

저자는 1923년 일어난 관동대지진을 말한다. 당시 저자는 휴학중이었다. 저자는 이를 천운(天運)으로 돌린다.(442 페이지) 저자는 위방불입 난방불거(危邦不入 亂邦不居: 멸망할 듯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으며 정치와 풍속이 어지러운 나라에는 머무르지 않는다: ’논어태백편), 화염곤강 옥석구분(火炎崑崗 玉石俱焚: 곤강에 불이 나면 옥과 돌이 모두 같이 불탄다. 재난이 있으면 선한 자 악한 자 구분 없이 모두 다 죽을 수 있다는 의미.)이란 경전 내용으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자신의 스무 살 직후 청춘기의 글벗이요 애인이었던 K와의 인연을 꺼내기도 한다. 재래의 봉건적 가족 제도에 의한 친권 중심의 도덕관에 대향하여 연애와 결혼, 이혼의 개인적인 자유를 믿고 주장하고 그대로 실천에 옮겨 조혼(早婚)에 의한 결혼을 솔선 파기하는 등 진보적 행태를 보임으로써 일본 유학생회에서 제명 논의가 있자 저자는 스스로 모임에서 탈퇴한 뒤 고별 연설을 겸하여 한 바탕 문학 강연을 시험했다.

 

연애지상주의, 자유 연애 등을 주제로 게거품을 물었는데 그 열변을 들은 K가 찾아왔고 저자는 그녀를 제자 겸 애인으로 두었다. 저자에 의하면 그녀는 참으로 지식욕이 엄청나고 감수성이 날카로운 만큼 연애에 대해서도 미상불(未嘗不: 아닌 게 아니라) 뜨겁고 용감하였다.(458 페이지)

 

저자는 뜻하지 않은 한 불행한 일로 그녀와 헤어진 날 비가 와 날이 음침한 탓도 있었겠으나 대낮인데도 시야가 컴컴하여 길이 온통 보이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아마 내가 K를 무던히 사랑했던가 보다. 그 빛나는 눈, 참새 같은 몸매, 훤칠한 이마, 그 재주, 그 소박함, 그 정열, 그 영리, 또 그 까불음 모두 다 좋았다.”(462 페이지)

 

K는 소설가 강경애(1907 1943)이다. 강경애는 병으로 일찍 타계했다. ‘인간 문제등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불문과에서 춘원이 자신과의 논쟁에서 물과 밥 같은 평범, 건실함의 문학으로 칭한 영문학과로 적()을 옮긴(474 페이지) 저자는 문학행동과 술 마시기에만 몰두하며 날뛰다가 졸업 3개월 전에 논문을 쓰게 되었다.(490 페이지)

 

토마스 하디의 소설 기교론을 주제로 한 논문인데 하디의 전작과 평론의 참고서들을 부랴부랴 구해 단시일내에 모조리 섭렵, 독파하고 결국 논문을 완성한 뒤 고국에서 온 아내와 함께 논문을 나누어 정서(淨書)해 마감 10분 전에 제출까지 했다.(493 페이지) 저자는 논문에서 (하디를 염두에 둔 바에 따라) 운명론, 염세주의 따위는 당초부터 엄밀한 의미로서의 문예상의 이즘이 아니며 형식에서 출발하여 내용에 미치고 드디어 그 총체에 도달함이 문예 비평의 모든 행정(行程)이라는 말을 했다.(500 페이지)

 

저자는 가을 날 황혼에/ 줄나무 길을 혼자 걷다가/ 신을 만나면, 나는 그에게 말씀하리라 - / 당신을 찾지 않을 만한/ 굳센 힘을 제게 주소서같은 존 골즈워디의 시를 읊곤 했다.(509 페이지) 저자는 대학 3개년 전 과목 성적의 4/5가 갑()이어야 취득할 수 있는 고등면허를 위해 나머지 학기에서 모두 갑을 얻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공부에만 매진 목표를 이루는 등 몰입하는 대단한 힘을 보이곤 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오로지 불후의 문장에 야망을 두었던 바 시인, 비평가, 사상인이 될지언정 학자가 되리란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그런 자신으로 하여금 국문학 고전 연구에 발심(發心)케 한 것은 일본인 조선어학자 오구라 신페이씨의 저서 향가 및 이두의 연구라 말한다.(557 페이지) 우리의 문화가 언어와 학문에 있어서까지 완전히 저들에게 빼앗겨 있다는 사실이 저자에게 통절(痛切)함을 안겨주었다.(558 페이지)

 

저자의 글은 현란한 한자어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독학무사(獨學無師: 스승 없이 홀로 배운 것), 독서불구심해(讀書不求甚解: 책을 읽을 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그대로 접어두고 그 뜻을 깊이 연구하지 않는 것), 염운(拈韻: 운자를 뽑는 것), 촉각시(燭刻詩: 초에 금을 그어놓고 촛불이 거기까지 타들어가기 전에 짓는 시. 짧은 시간 안에 짓는 시), 학숙(學塾: 글방),

 

후생가외(後生可畏: 후학이 두려워 할 만하다는 뜻으로 논어 자한(子罕)편이 출처이다.), 일일지장(一日之長: 하루 먼저 세상에 태어났다는 뜻, 나이가 조금 높음을 이르는 말.), 시참(詩讖: 우연히 쓴 시가 자신의 앞날을 예언한 격이 되는 경우), 기주벽(嗜酒癖: 술을 즐기고 좋아함), 경음(鯨飮: 고래가 물을 들이키듯 술을 몹시 많이 마심), 일람첩기(一覽輒記: 한 번 보면 다 기억한다는 뜻),

 

중인개취아독성(衆人皆醉我獨醒: 모두 술에 취해도 자신만은 깨어 있음을 이르는 말로 굴원의 어부사(漁父詞)‘가 출처), 궁즉통(窮卽通: 궁하면 통한다는 뜻으로 주역(周易)‘이 출처), 겁나(怯懦: 겁이 많이 마음이 약함), 치의(緇衣: 승려), 치문(緇門.. ()는 검은 비단 치자로 치문(緇門)은 물들인 옷을 입은 사람들의 세계(世界)라는 뜻으로 승도(僧徒)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일지반해(一知半解: 하나쯤 알고 반쯤 깨닫는다는 의미. 지식이 충분하게 제 것으로 되어 있지 않거나 많이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 필흥(筆興: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일어나는 흥취) ..

 

문주반생기는 대단한 책이다. 발간 60년이 다 된 책인데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것이 놀랍다. , , 학문, 우정, 사랑.. 이 모든 것이 책에 담겨 있다. 천재이지만 필요할 때 놀랍게 몰입한 사정은 노력의 힘을 일깨운다. 오래 된 문주반생기를 한글 세대들이 이해하기 편하게 새로운 감각과 주해(註解) 등으로 새롭게 단장한 최측의 농간(출판사)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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