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자꾸 사야 할 책들이 생긴다. 신간이 아닌 구간을 그것도 책 내용이 아닌 저자의 행동 때문에 사게 되다니.

다름 아닌 일본의 카톨릭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 - 1996) 이야기이다.

읽지 않고도 그의 이름, 그의 작품 이름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김은국(金恩國) 작가의 ‘순교자‘를 읽고 관련 자료로 함께 읽으려 했었지만 실패해 이름만을 기억하자고 생각한 덕이다.

‘순교자‘를 읽은 것은 1989년 시골교회 청년회 시절이다. 담당 전도사께서 추천하신 책이었다. 문제의식을 일깨우는 인상적이고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읽으려 하는 것은 그가 윤동주 시인 등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한 일제의 만행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다와 독약‘이 윤동주 시인 등에 대한 일제의 생체실험을 직접적으로 폭로하지는 않았다.

‘바다와 독약‘은 2차 세계대전 말기 일제가 미군 포로에게 행한 생체해부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일제의 생체 실험 폭로의 서막이 된 것이다.

김승철에 의하면 ‘바다와 독약‘은 액체성의 제목이 붙은 소설이다. 액체성은 서구 기독교와 일본의 정신적 풍토를 날카롭게 대립시켰던 엔도 슈사쿠가 물이라는 상징을 매개로 두 대립항을 어우러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벚꽃과 그리스도‘ 37 페이지)

엔도 슈사쿠의 대표작은 ‘침묵‘, ‘깊은 강‘ 등이다. 김승철이 인상적으로 해석한 엔도 슈사쿠의 액체성은 가스통 바슐라르의 4원소의 상상력을 떠올리게 하고 더 나아가 주역(周易)까지 생각하도록 만든다.

개그 같지만 엔도 슈사쿠의 ‘바다와 독약‘, ‘침묵‘은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으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 물론 개그라 하기에 ‘바다의 침묵‘은 엔도 슈사쿠의 정신 세계와 통하는 바가 있다.

‘바다의 침묵‘을 쓰기 전 소설을 쓴 적이 없었던 화가 베르코르가 소설로 그린 세계는 거대 담론보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순수한 개인들의 세계이다.

아, 이 순수(fine)한 무목적의 논의라니! 순수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 즉 끝(피날레; finale)이라는 의미이다.(모티머 애들러, 찰스 반 도렌 지음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23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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