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읽는 하늘과 바람과 별 - 책으로 만나는 윤동주 100년 생애 전시회
윤동주 100년 포럼 지음 / starlogo(스타로고)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윤동주(尹東柱) 시인 탄생 100년의 해가 다 저물어 간다. 여러 기념 행사가 열렸고 최근 윤동주.윤일주(尹一柱: 1927 1985) 형제 동시집 민들레 피리도 출간되었다. 이 책은 윤동주 형제들에 대한 관심을 끈다. 31녀인 윤동주 형제 가운데 셋째인 윤일주 시인은 건축학과 교수를 지낸 시인이다. 넷째 윤광주도 시인이었다.

 

윤동주 100년 포럼이 엮은 사진으로 읽는 하늘과 바람과 별을 통해 윤동주 시인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얻는 것은 어떨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10여 페이지의 이 책은 사진과 글 자료가 비슷한 분량과 비중으로 담겼다. 전체 7(1부 가족, 2부 소년기, 3부 청춘, 4부 유학, 5부 옥(), 6부 죽음, 7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긴밀하게 엮였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 시들은 어떤 것들일까? ‘별헤는 밤’, ‘자화상’, ‘십자가’, ‘참회록’, ‘편지등이 포함될 것이다.(나는 쉽게 씌어진 시를 가장 좋아한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같은 구절 때문이다.)

 

19171230일 북간도 명동(明東)에서 태어나 해방을 6개월여 앞둔 19452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獄死)한 윤동주 시인은 대표적인 민족 저항시인으로 알려져 있다.(명동明東은 동쪽의 조선을 밝힌다는 의미이다.)

 

지난 98일 종로구 청운동 소재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열린 윤동주 탄생 100주년 특별 강연에서 구효서 소설가는 윤동주 시인의 시들을 자신의 내면과 투쟁하는 뛰어난 세계관을 갖춘 시로 평하며 그의 뛰어난 시들을 세계문학으로 넣고 싶다면 민족 저항 시인이라는 특수한 프레임 안에 가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평생 윤동주 시인에 빠져 윤동주 시인을 연구한 일본의 시인이자 윤동주 시인의 릿쿄 대학 후배로 윤동주 선배가 자신과 같은 의자에 앉아 공부했다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한 야나기하라 야스코(楊元泰子)의 주장과 맥이 닿는다. 그는 윤동주 시인은 저항을 넘어 보편 가치를 추구한 지성(知性)이라 말했다.

 

윤동주 시인은 의대 진학을 바란 아버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윤동주 시인의 6촌인 가수 윤형주도 부친이 의대 진학을 원했다. 윤형주는 연대 의대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윤동주 시인은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 문과(文科)에 입학했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을 마치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윤동주 시인에게는 많은 인연이 있었다. 절친으로 50대 후반에 늦봄이라는 아호를 짓고 시인으로 데뷔한 문익환 목사,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 2년 후배로 윤동주 시인에게서 받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필사본이 책으로 출간되게 한 정병욱(1922 1982) 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 고향 용정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던 분으로 1948년 월남할 때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와 사진 등을 가지고 내려온 윤혜원(1923 2011), 윤동주 시인과 같은 해 같은 집에서 태어난, 윤동주 시인의 고종사촌으로 독립운동 혐의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 송몽규, 1948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도록 한 분으로 윤동주, 송몽규 등과 연희전문 입학 동기이자 경향신문 기자였던 강처중 등..

 

이 밖에 직접 인연이 닿지는 않았지만 윤일주 교수의 요청을 받고 용정 동산에 있는 교회 공동묘지에 묻혀 있는 윤동주 시인을 찾아낸 일본인인 오무라 마스오 교수, '바다와 독약'이란 책을 발표해 일본이 윤동주 시인 등에게 행한 생체실험을 폭로한 문인이자 일본의 양심으로 불린 엔도 슈사쿠, 앞서 언급한 야나기하라 야스코(楊元泰子やなぎはら やすこ: 윤동주 연구자, 릿쿄(立敎)대학 시인 윤동주 기념회 회원, 시인 윤동주의 고향을 찾는 모임 회원. 1946 - )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윤동주 시인(1917 1945)과 그가 타계한 해에 태어나 윤동주 연구가가 된 야나기하라 야스코(1946 -)의 관계는 성호 이익(1681 1763)과 그가 타계하기 1년 전에 태어나 그를 사숙했던 다산 정약용(1762 1836)의 관계를 연상하게 한다.

 

릿교대학을 다니던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시적 스승인 정지용(1902 1950) 시인이 다닌 도시샤(同志社)대학으로 적()을 옮겼다. 시인은 194242일 릿쿄 대학에 입학했으나 단발과 군사 훈련 등을 강요한 일본 군국주의 체제가 싫어 한 학기만에 도시샤 대학으로 편입했다.

 

윤동주 시인은 이곳에서 독립운동가인 사촌 송몽규와 자주 만나 민족의 진로에 대해 논의한 것 때문에 독립운동죄로 기소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정체불명의 생체 실험용 주사를 맞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고문을 당한 윤동주 시인은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유달리 허약했고 뼈만 남았을 만큼 말랐다. 한 시인은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가졌는가’(함석헌 선생님의 글)를 연상한다고 말한다.(경상일보 2017528. 엄계옥 시인)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윤동주 시인의 부친 윤영석(1895 1965)과 모친 김용(1891 1948)을 생각하게 된다.

 

청운동의 윤동주문학관을 다시 가보아야겠다. 연희전문 입학 2년 만에 기숙사를 나와 지금은 서촌이라 불리는 종로구 누상동에서 정병욱과 하숙을 시작한 윤동주 시인은 효자동 길을 따라 인왕산에 올라 시상을 다듬곤 했다. 나도 윤동주 시인처럼 윤동주문학관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윤동주 시인에 대한 책들을 더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