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거리를 걷는데 알라딘 중고 서점 건너편 쪽에서 스마트폰을 구입하면 노트북을 준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42만원 상당의 노트북으로 새 기종의 스마트폰은 석달간 8만여원의 요금제를 의무적으로 유지해야 하고 그 이후에는 5만원대로 월 납입액을 낮출 수 있는 조건으로 제시된 LG V 30이다.

 

설명을 듣고 망설이다가 다음에 오겠다는 말을 하고 매장을 나왔다. 직원은 행사용 노트북의 잔여 수량이 석대 뿐이라는 말을 했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 다시 말하면 선택을 하지 못하겠는 것이다.

 

홈쇼핑을 통해 장기 할부 조건으로 출시된 노트북을 사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문제는 거실에나 내 방에 티브이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올해 예년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책을 리뷰하는 데 그쳤다. 그렇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스마트폰 때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해 9월 말 스마트폰을 처음 구입했는데 내가 1월부터 그때까지 읽은(리뷰한) 책이 142권이었고 그 이후 3개월간 30권의 책을 더 읽는(리뷰하는) 데 그쳤다. 월 평균 16권을 리뷰하다가 스마트폰 구입 이후 평균 10권을 리뷰하는데 그쳤으니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변화이다.

 

머리가 아픈 것도 지나친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는 스마트폰으로 글을 주로 쓰니 유희도 중독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철을 타면 알겠지만 승객의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하고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대부분은 인터넷을 한다. 글은 쓰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리뷰의 수는 많이 준 대신 에세이류의 글은 충분히 썼고 지금도 그러고 있기에 큰 문제는 아니라 할 수 있다.

 

리뷰만이 글(의 본령)이고 다른 글은 잡기(雜記)는 아니다. 만일 그렇다고 말한다면 논문만을 인정하는 학계의 글쓰기 풍토 또는 사고 구조를 불합리한 것으로 여기는 내가 이중적 가치를 장착하고 있는 모순의 주체가 되었다 할 수 있다.(내가 학계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오독하지 않으리라 믿으며 쓰는 글이다.)

 

오늘도 윤동주 시인 탄생 100, 순절(殉絶) 72년을 맞아 나온 '사진으로 읽는 하늘과 바람과 별'을 읽다가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는 내용이 나오는 부분에서 구효서 작가가 윤동주 시인에 대해 말한 부분을 떠올리고 관련 내용(윤동주 시인을 민족 시인으로 한정해서는 안된다는..)을 가지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한 채 책을 덮고 구글로 가 관련어 검색을 시도하는 일탈을 범하고 말았다.

 

리뷰에 반영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부분만 글로 만들어내려는 성급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라 보는 것이 맞을 터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리뷰 수가 줄어든 것이 부정적이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한다. 리뷰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 만큼 읽고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마트폰 구입 초기에 내 모토는 글감을 제때 찾아 글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즉 책이 많은 곳 또는 상황에서도 스마트폰으로 글감을 찾았으니 다짐이 의미 없게 된 것이다.

 

스마트폰을 구입한 지난 해 9월 말 이후의 리뷰 외의 글 수를 그 이전과 비교하면 크게 줄지는 않았다. 당연하다. 책을 읽다가 다른 곳으로 가지치기하듯 리뷰가 아닌 글 또는 리뷰에 반영될 것이 아닌 글을 쓰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픈 데에는 스마트폰 말고 다른 이유들도 작용했다. 스마트폰 사용은 취침 두 시간 전까지만 하라는 지침도 지키지 않은 지 오래이다. 초심으로 나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 내 친구이고 스승인 책에 대한 열의와 애정을 예전처럼 회복하려면 스마트폰에서 많이 벗어나야 한다. 스마트폰이 아주 섭섭해 하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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