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이 마지막 연금술사로 불린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접한 것은 20년 쯤 전이다. 당시는 그 말이 누구의 것인지 궁금해 하지 않았었다. 답은 경제학자 케인즈의 말이다. 최근 한국의 모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경제지 기고를 통해 마르크스도 케인즈도 없는 한국 경제학을 우려하는 글을 발표했다.
‘수학 방정식에 갇힌 대학 교육이란 부제‘를 가진 글이다. 지난 2011년 데이비드 오렐의 ‘경제학 혁명’에서 이런 글들을 읽은 기억이 난다.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부정확한 생각을 미분학(微分學)의 언어로 가장하는 기발한 습관을 개발했다.”(수학자 노버트 위너),
“그들은 이 내용(물리학자들의 작업을 수학화 하려는 사회과학자들의 작업)이 다 틀렸으며 단지 사람들을 겁주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
이런 지적들은 “대부분의 경제학 수업은 경제학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고 고급 수학을 이용해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으로 구성된다.”는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견해와도 공명한다.
케인즈가 어떤 배경에서 저런 말을 한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경제학을 오로지 수식으로만 푸는 것에만 관심을 보이는 학자의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 연구의 근본적인 철학 및 역사적 원칙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결론이다.
열흘 전 나는 한 경제학 전공자에게 경제학이 엄밀 과학이냐는 물음을 던졌다. 어떤 대답이 나왔을까 궁금하지 않는가? 그는 내가 던진 그런 근본적인 또는 관념적인 질문을 처음 접했는지 미분(微分)이 어렵다는 말을 하는데 그쳤다.
케인즈가 어떤 관점(*)에서 뉴턴을 마지막 연금술사라 불렀을까를 생각해보기 전에 그의 미분 발언의 배경을 궁리해보고 싶다.
* 뉴턴은 연금술에 관심을 보인 신비주의자이다. 그가 만유인력을 주장한 것은 그런 신비적 관점에 따른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