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곡괭이로 땅 파뒤집어놓고 남해 간다”는 한 시인의 글을 읽고 부러운 마음에 잠시 허공을 쳐다 보았다.

보리암, 남해 금산, 물건리(勿巾里)에서 미조(彌助)항까지의 물미(勿彌) 해안...

시의 소재가 된 절경이 즐비한 곳. 미(彌)란 글자 때문에, 그리고 비슷한 위치 때문에 미륵도(彌勒島)가 있는 통영과 비교하게 되지만 어디까지나 마음 속의 그것이니 공허하다.

대안으로 나는 조용미 시인의 시 ‘마량 간다’를 펴본다.

“..나는 늙은 푸조나무도, 밤나방처럼 가만히 붙어 몇백/ 년이라도 꽃살문을 떠메고 있으려는 커다란 나비경첩이/ 주는 무거움도 내려놓고 꽃살문 앞 떠난다 마량 간다 까/ 막섬 간다”는 구절로 끝나는 시.

마량은 강진의 마량(馬良)이다. 무거움을 내려놓는다는 말을 음미하게 된다.

나는 오늘 날이 밝으면 사직단(社稷壇)에 간다. 거기서 접선하듯 한 분을 만나 무언가를 건네 받은 뒤 책을 고르기 위해 교보에 갔다가 심리 상담을 받으러 성수동으로 간 뒤 저녁에는 정독(正讀)에 가서 강의를 듣는다.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떠안기 위해 가는 길이지만 심정적, 공간적으로 좁은 지경(地境)을 벗어나니 좋다.

다만 비가 내릴 것이라니 더 추워질 날씨가 걱정이지만 모두 잘 풀릴 것이라 짐짓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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