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종로의 한 커피 전문점에서 크림 애벌랜치(cream avalanche)란 단어로 설명된 아이스크림 사진을 보았다. 달콤하고 화려한 아이스크림이 넘칠 듯 그릇 위에 담긴 그 사진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대의 무너지는 소리 듣는다/ 눈 그친 겨울 아침, 빈 들로 밀려오는/ 그대 발자국 소리 듣는다..”
염명순 시인은 ‘눈사태’란 시를 이렇게 풀어갔다. 언젠가 나는 이 시를 인용하며 그대를 중의적(重意的)으로 즉 무너지는 주체가 눈만이 아니라 사람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글을 썼다.
애벌랜치에는 사태(沙汰), 산사태란 뜻이 있다. 나는 희생양 생각도 했다. “희생양은 죄가 없는 것도 있는 것도 아니다. 산사람이 멋모르고 한 번 외쳐댄 후 눈사태가 나는 경우처럼 그는 자신이 저지른 짓 이상으로 큰 재난을 만나기에 무죄이지만 피할 수 없는 불의가 존재의 일부인 세상에 살기에 유죄다.” 캐나다의 비평가 노드롭 프라이가 한 말이다.
쇄도(殺到)란 말은 어떤가? 달콤한 크림을 보는 사람의 뇌에 쓰나미처럼 쇄도하는(몰려드는) 기억. 사람들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기원한 프루스트 효과를 논한다. 프루스트 효과란 냄새가 오래도록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려주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냄새를 맡는 것은 자전적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데 유효하지만 서술기억을 되살리는 데는 별 효과가 없다.(존 메디나 지음 ‘브레인 룰스‘ 참고) 서술기억은 두 가지 이상의 개념들의 관계가 명제 형태로 저장된 기억이다. 자전적 기억은 특정 상황의 내용에 대한 장기 기억을 말한다.
박문호 교수는 기억을 절차 기억, 신념 기억, 학습 기억 등으로 나눈다. 오픈 시스템(유연한 사고)을 가진 사람들은 학습 기억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신념 기억은 종교적 또는 정치적 믿음이다. 신념 기억은 방향이 잘못되면 문제를 일으킨다.(’뇌, 생각의 출현‘ 478, 479 페이지)
신념 기억은 경직(硬直)을 특징으로 한다. 새로운 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의문을 갖지도 않는다. 이는 정확히 창의적인 사람과 반대되는 특징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의문을 많이 품는다. 흥미를 끄는 새로운 사건이나 개념에 반응하는 경이(驚異)의 사람이다.
그들은 감정적으로 섬세하고 신체적으로 민감하다. 나는 어떤가. 경이는 자신하지 못하지만 쉼 없이 만나는 새로운 것들에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는 점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근대를 미술관의 시대라 표현한, 루브르 박물관 수석 관장을 지낸 제르망 바쟁은 2차 세계 대전 중 일화를 이렇게 소개한다.
프랑스에서 패주하던 독일 병사들까지 가던 길을 멈추고 한 번 보게 해달라고 애원한 그림이 ’모나리자‘였다고.(이때 바쟁은 루브르의 큐레이터였다. 그는 미술관을 시간이 중지된 듯한 사원(寺院)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바쟁이 말한 독일 패주병(敗走兵)들은 절정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다.
바쟁은 “회화의 표면 전체를 천천히 훑어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캐롤 던컨 지음 ’미술관이라는 환상‘ 참고) 이렇게 미술품을 천천히 훑어볼 수 있는 눈이 내게 필요하다. 꼭 미술품에 대해서만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개념에 대해, 사건에 대해 그래야 한다. 그것이 창의성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