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이 새 작품을 쓸 능력이나 의욕을 잃은 상태를 의미하는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이란 용어가 있지만 작가가 아닌 나에게 쓸 말은 아니다.

다만 글쓰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미적거리다가 마감 날짜에 임박해 글을 쓰는데 그렇게 시작하면 무언가 알 수 없는 힘 같은 것이 휘몰아치듯 글을 쓰게 한다는 한 페친의 글은 음미할 만하다.

예열 없이 바로 시작하지 못하는 습관은 나에게도 해당한다. 슬럼프 시기를 건널 때 놀랍게도 내공이 놀라운 분들이 페친을 신청해온다.

‘좋아요’도 누르고 댓글도 달지만 대개 신청만 하고 묵묵부답이다. 물론 이는 탓할 일이 아니다. 자신의 글을 읽으라는 초대장이라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초대장을 받고 그의 타임라인에 가서 실마리를 얻곤 하는 것이 나다. 감사한 일이다.

오늘 내게 초대장을 보낸 사람이 아닌 내가 팔로우하는 시인의 글을 읽었다. 뜻 밖에도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한 이야기이다.

지난 86년 봄부터 겨울까지 일주일에 한 두번 과천의 그 시인(물론 당시는 서울대생이었다.) 소유의 아파트에 모여 일어판 ‘자본‘을 나눠 가져간 뒤 국역한 원고를 독일어 원전과 비교하던, 서울대 80 학번 다섯 사람의 이야기이다. 시인은 그 다섯 사람들 중 하나였다.

사연이 풍부하고 이야기거리로서는 극적이기에 멋진 글이 될 수 있었지만 시인의 재주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많은 문장론 책들이 거의 다라고 해도 좋을 만큼 모든 훌륭한 문장들은 거듭 고치고 다듬은 결과라는 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내가 접하는 멋진 글들은 모두 막힘 없이 술술 써내려간 글들인 듯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그럴까?

어떻든 아지트, 가명, ‘자본‘ 등의 말을 들으며 나는 최윤 작가의 ‘회색 눈사람‘을 생각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제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절판이 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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