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직전 혼수 상태에서 철학자 베르그송은˝여러분, 5시입니다. 강의는 끝났습니다.˝란 말을 했다.(황수영 지음 ‘물질과 기억, 시간의 지층을 탐험하는 이미지와 기억의 미학‘ 23 페이지)

베르그송은 꼴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할 때 마지막을 늘 저 말로 장식했다. 소박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메마름을 떠올리게도 하는 말이다.

˝베르그송은 수다쟁이 즉 중언부언 이야기하는 정신에 대하여 아름다운 메마름la bele aridite을 대표한다. 베르그송은 증류법에 의하여 지속(持續)의 농축된 알코올을 얻기 위해 인생을 어지럽게 혼란시키는 문법적 범주와 형식적 말의 논쟁에서부터 인생을 정화시키려고 하였다...

단순성의 평화로운 대양 속에 베르그송적인 기쁨이 그렇게 만난다. 페느롱Fenelon의 순수한 시간의 근원인 하늘처럼 레퀴엠이나 13개의 소야곡Treize nocturnes이나 이브의 노래la chanson d’ Eve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가브리엘 포레의 무한한 밤의 평화가 단순성의 대양 속에서 만난다..”(김형효 지음 ‘베르그송의 철학‘ 192 페이지)

마음 맞는 몇 사람이 만나 나누는 따뜻한 차담(茶談) 같은 곡이라 생각하며 가브리엘 포레의 피아노 4중주 CD를 누군가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나는 포레의 피아노 4중주가 베르그송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인이 내게 자신의 시를 읽어 줄 때 나는 그것에 충분히 관심을 가지고 그의 생각 속에 들어가서 그의 감정 속에 빠져들고 그가 구절과 단어들로 흩뜨려 놓은 단순한 상태를 다시 체험할 수 있다.

그 때 나는 그의 영감에 공감한다. 나는 그것을 영감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불가분의 행위인 연속적 운동에 의해 좇는다.”(‘창조적 진화’ 316 페이지)고 말한 베르그송.

베르그송이 시인의 영감에 공감한다고 한 것처럼 나 역시 작곡가의 영감에 공감한다. 그 작곡가의 이름은 가브리엘 포레이다.

이번 가을에는 포레의 따뜻한 곡들(진노의 날이 없는 진혼곡, 피아노 4중주, 피아노 5중주 등의 실내악곡들)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베르그송의 철학을 읽을 것이다. 평화로운 가을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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