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 - 홍성태의 서울 만보기
홍성태 지음 / 궁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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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 인사동, 정동, 광화문로 등을 주로 걷고 창경궁로, 돈화문로, 창덕궁길 등은 궁궐에 가는 길에 걷곤 했는데 어제 충정로(忠正路)를 걸었다. 충정로란 이름은 1905년 을사(乙巳)늑약(勒約) 때 순국한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의 시호에서 유래했다.

한성전기회사의 미국인 기사장 맥렐란의 사택이었던 충정각, 프랑스 대사관, 1937년에 지어진 현존 최고(最古)의 아파트인 충정아파트(토요타아파트), 돈의문(서대문), 적십자병원(경기감영京畿監營터), 감리교신학대학, 영천시장, 독립문 등을 보았다.

이 거리만의 특징은 아니겠지만 큰 길가의 고층 건물들과,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골목길의 사뭇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아기자기한 정감(情感)을 느끼려면 골목길과 전통 시장 등을 찾는 것이 제격이다.

도시와 타운을 나누는 기준은 행정 기능의 소유 여부이다. 도시는 행정 기능을 가지고 있고 행정 기능이 없는 타운은 농경 지역과 상대되는 상업적, 문화적 중심지이다. 사학자 박진빈 교수는 그런 사전적 정의들과 다르게 더 포괄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을 담고 있는 곳을 도시로 풀이한다.(‘도시로 보는 미국사’ 11 페이지)

그제 정동길 순례 후 서울역사박물관에 들러 영화 상영 정보를 알게 되었다. 제 9회 서울 건축영화제 일정으로 서울역사박물관 야주개홀(9월 4일 – 9월 10일. 무료),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2관(9월 11일 – 9월 17일. 유료), 문화비축기지 탱크6 다목적 강의실(9월 22일 – 9월 24일. 무료) 등에서 도시와 건축 영화가 상영되는 것이다.

구세군회관빌딩 자리에 있던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興化門)이란 현판 글씨는 어두운 밤에도 빛이 날 정도로 명필이었다. 이에 그 앞은 야조가(夜照街)라 불렸고 후에 야주현, 야주개 등으로 불렸다. 야주개홀이란 이름은 이에서 유래한다.

재건축과 젠트리피케이션(공간 고급화. 1964년 독일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가 런던 시내의 노동자 계급 거주지에 중상층이 유입되는 바람에 기존 거주자들인 노동자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보고 붙인 용어. gentry는 상류사회를 의미.) 등의 이슈들을 다룬 영화들이 상영된다.

우리나라도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예외가 아니고 그런 모습이 빚어지는 데에는 지역 차이도 별로 없다. 인근에 조선시대 관리들의 숙소인 객사(客舍)가 있고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전주 객리단길도 최근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지방을 예로 들기 위해 하는 말이다.

미국도시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도시사학자 마이클 카츠는 ‘왜 미국 도시들은 불타지 않는가(Why American Cities Don’t Burn)’란 책에서 1950 – 1960년대보다 훨씬 더 심해진 불평등과 가난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미국 도시들이 불타지 않는(차별받는 흑인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를 분석했다.

20 세기 내내 지속된 인종간 분리 정책으로 흑인들 입장에서 분노를 쏟을 상대(백인)가 존재하지 않아 자신들끼리 총구를 겨누기 때문이고, 소비주의의 만연으로 사회 구조 변화를 위한 투쟁의 의지가 약해졌기 때문이고, 경찰의 군대화 즉 약자에 대한 집중적 관리 때문이다.(박진빈 지음 ‘도시로 보는 미국사’ 272, 273 페이지)

우리는 물론 이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다만 홍성태 교수의 문제제기 같은 것은 들어볼 만하다. 홍 교수는 도시를 난민의 도시와 시민의 도시로 나눈다. 난민의 도시는 더 많은 이윤을 향한 이기적 경쟁 논리에 사로잡힌 도시이다. 시민의 도시는 사람을 위한 도시이다.

홍 교수는 난민의 도시를 시민의 도시로 바꾸려면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1) 난개발을 막아야 한다. 2) 자동차 중심의 거리를 보행자 중심의 거리로 바꾸어야 한다. 3) 제멋대로 들어선 전봇대와 전깃줄을 모두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 4) 건물을 어지럽게 만드는 간판들을 정리하고 어디서나 쏟아져 나오는 소음들을 막아야 한다.

홍 교수는 세종로를 감시(監視)의 거리로 규정하고 세운상가는 폭압적 근대화의 상징으로 본다. 홍 교수에 의하면 정동(貞洞)은 슬픈 공간이다. 정동은 대한제국 즉 식민지 근대의 공간이다. 정동의 대표적 낭만지인 경운궁(덕수궁) 돌담길도 우아한 곳이기보다 경찰들이 곳곳에서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이는 곳이다.(세종로가 그렇듯)

홍 교수의 책에는 미국 정부가 미국 대사관과 삼청동의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를 정동으로 옮기려 한다는 내용이 있다.(홍 교수의 책은 2004년 발간된 책이다.) 경기여고터에 새 대사관을 짓겠다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사적(史蹟)지로 보존하기로 결정되었다.(2005년 1월) 현재 미국 대사관은 용산으로 이전하기로 결정되었다.(2010년 6월)

종묘(宗廟)의 경우는 어떤가. 세계문화유산 알림 표지판에서 불과 100 미터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쓰레기 적치장이 있다. 이 사실은 안타까울 뿐이다. 저자는 전주 이씨 화수회(花樹會)에서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종묘의 담장과 그 둘레의 모습을 종묘에 어울리게 다듬는 것이라 말한다.(227 페이지)

대학로는 어떤가. 대학로란 이름은 폭력 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술을 바꾼 전두환의 기만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국풍 81이 대학생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만든 엉터리 축제이듯. 대학로는 사이비 낭만과 젊음의 거리이다. 대학로는 유흥의 거리일 뿐이다.

낙산(駱山)으로 오르는 길이 있는 동숭아트센터 옆 골목까지 유흥의 물결에 의해 잠식되었다.(242 페이지) 낙산(駱山)은 풍수에서 좌청룡(左靑龍)이다. 우백호(右白虎)는 인왕산(仁王山)이다. 남주작(南朱雀)은 남산(南山)이다. 북현무(北玄武)는 북악산(北岳山)이다. 일제 강점기에 인왕산(仁旺山)으로 개명되었으나 1995년 본래 이름인 仁旺山으로 환원되었다. 해방 후 50년이나 지나 환원되었다는 것이 씁쓸하게 여겨진다.

우백호인 인왕산에 비해 좌청룡인 낙산은 아주 작아 조선시대에서는 이곳에 숲을 울창하게 조성해 모자란 부분을 채우려 했다. 그런데 일제때 이곳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토막(土幕)을 짓고 살기 시작하는 바람에 조금씩 숲이 없어졌고 박정희때는 그 꼭대기에 시민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낙산은 더 이상 자연공간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245 페이지)

낙산은 해발 125미터, 인왕산은 해발 338미터이다. 한양 천도 초기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主山)으로 삼고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을 동쪽으로 내자고 주장했지만 정도전과 그 지지 세력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풍수에서 좌청룡은 남자와 장자(長子)를, 우백호는 여자와 차자(次子)를 상징한다. 유교는 적장자(嫡長子)을 우선시한다. 한편 하륜은 안산(鞍山: 무악毋嶽)을 주산으로 삼자고 했었다. 무학대사의 주장대로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으면 좌청룡은 북악산이 된다.(북악산은 342미터이다.)

저자는 우리로서는 불행한 일이지만 한국의 근대화는 식민지 시기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다.(284 페이지) 저자는 명동(明洞)을 어두운 동네로 표현한다. 일제 시대에 명동은 명치정(明治町)이라 불렸다. 정(町)은 마치(まち)이다. 제국주의의 길을 닦은 일왕의 이름을 슬쩍 바꿔 밝은 동네라는 뜻으로 고친 것이다.

명동은 사실 언제나 어두운 동네이다. 높다란 건물들로 둘러싸여 햇빛이 제대로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풍수에서 말하는 명당은 명당(明堂)이다. 명당(名堂)이 아니다. 도시가 생명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녹지공간을 시내 곳곳에 조성해야 한다. 당연히 그것은 엄청난 땅값과 싸워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311 페이지)

경우가 다르지만 서울 도심의 선정릉(宣靖陵)을 보면 서울에 이렇게 넓은 녹지가 들어서 있다니, 하고 놀라게 된다. 저자는 희망의 사례로 난지도를 든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는 이제 생태공원이 되었다. 주변에는 상암 올림픽 경기장이 있다.

난초(蘭草)와 지초(芝草)를 아우르는 은은한 행기를 지닌 난지도는 철따라 온갖 꽃이 만발해 꽃섬이라 불리던 아이들의 놀이동산이었는데 이후 육지와 연결되었고 사람들이 이곳에 쓰레기를 매립하기 시작했었다고 말한다.(‘풍경의 감각’ 141 페이지)

2017 서울 세계건축대회 팜플렛을 보니 건축문화 투어로 몇 가지 프로그램이 소개되어 있다. 경향신문 사옥, 돈의문터, 경교장, 한양성곽, 홍난파 가옥, 권율 도원수 집터, 딜쿠샤, 독립문, 독립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순례하는 ‘공간 속 역사, 그 흔적을 찾아가다’가 이미 지나갔고 예정된 것들 가운데는 후암초등학교, 독일문화원, 남산중앙교회, 해방촌교회, 해방촌성당, 해병대초대교회, 보성여고, 남산교회 등을 답사하는 ‘서울의 역사와 기억을 보존하다. 해방촌과 서울로 7017’(9월 15일. 18시 30분 – 21시 30분)이 있다.

물론 신청은 이미 마감되었다. 다만 나는 정독도서관에서 열리는 ‘우리가 몰랐던 궁궐 이야기’ 강의를 들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 강의는 조선궁궐과 음양오행, 조선궁궐과 풍수지리, 조선궁궐과 조선왕릉의 구조는 똑같다? 실록으로 읽는 조선궁궐 등으로 이루어진 강의이다.( 9월 19, 21, 26, 28일. 19시 – 21시)

서울을 말하는 여러 책들이 있다. 그 책들을 크게 둘로 나누면 홍성태 교수의 ‘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처럼 비판적 안목을 바탕으로 한 책과 낭만에 초점을 맞춘 책이 될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도움이 된다. 비판과 낭만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지?

‘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는 공동체 의식과 바른 지향점을 생각하게 하고 낭만에 초점을 둔 책은 소중한 느낌을 간직하게 한다. 많이 읽고(다독多讀), 많이 듣고(다청多聽), 많이 돌아다녀야(다순多巡) 할 것이다. 박태원의 소설에 소설가로 나오는 구보는 서울 거리를 배회하며 느끼는 내면 의식의 변화를 드러낸다.

지금 내 모습은 세태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기만 할 뿐인 구보를 닮은 듯 하다. 당시(1930년대)에는 지식인만이 도시 거리를 걸으며 비판 정신을 가질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세상은 문제적으로 보인다. 다만 박태원의 소설은 몽타주 기법과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작품이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다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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