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정동(貞洞)길을 걸었다. 정동 극장에서 경운궁 중명전(重明殿)을 거쳐 예원학교, 이화여고, 옛 신아일보사 별관,

정동 공원, 구 러시아 공사관, 캐나다 대사관 등을 보고 서울역사박물관을 거쳐 체코 대사관, 일조각, 책세상 등의 출판사와 성곡 미술관 등을 지나는 짧은 걷기 일정이었다.

볕이 좋은 가을을 실감나게 만끽한 시간이었다. 오는 길에 조선시대 과거제(科擧制) 재현 행사(2017년 9월 23일 9시 – 17시. 경희궁 숭정전) 소식도 확인했다.

축 평창동계오륜대회(祝 平昌冬季五輪大會)를 시제(試題)로 해 칠언율시를 쓰는 행사이다.(장원에게는 25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내공이 전혀 없는 나는 어느 세월에?)

미학자 이나라 교수와 프랑스 상원의회 입법사무관인 그의 남편 티에리 베제쿠르는 ‘풍경의 감각’이란 책에서 자신들을 도시를 어슬렁거리며 걷는 산책자인 플라뇌르(flâneur)로 설명하며 플라뇌르에 대한 일반적 이해와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즉 플라뇌르의 산책은 안내책자를 절대로 보지 않거나 자신만의 환상을 쫓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택한 것은 충분한 사전 독서였다.

목적 도시에 대한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도시와의 충분한 교감이다. 나는 이를 보며 맥락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정중동(靜中動)이란 말을 생각한다.

사실 어슬렁 거리며 걷는 것은 좀 더 느끼고 생각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느리게 걷는 의미는 없다.

어제 나는 산책자이되 목적의식을 가지고 걸은, 우연한 산책자가 아닌 필연의 산책자인 플라뇌르였다. 사전 준비로 독서를 한 뒤 도심 거리의 낭만을 만나고 사후 조치로 후기를 남기며 나는 벌써 다시 정동길을 걸을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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