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자 기대승 프로이트를 만나다
김용신 지음 / 예문서원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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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박사 김용신의 '성리학자 기대승 프로이트를 만나다'는 퇴계(退溪)와 사칠리기(四七理氣) 논쟁(15991566)을 벌인 유명한 학자 고봉(高峯) 기대승의 사상과 프로이트 이론을 비교한 책이다. 퇴계와 고봉의 논쟁을 퇴고논쟁이라고도 한다. 물론 이때의 퇴고는 완성된 글을 다시 읽어 고치고 다듬는 것을 의미하는 推敲가 아니다. 하지만 退高 논쟁을 推敲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논의를 거쳐 진리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대승은 성리학자이다. 성리학은 세상사를 이()와 기()로 나누어 설명하는 학문이다. ()와 기()11세기 송()의 철학자 장재(張載)가 고안한 개념이다. 성리학은 주자학이라고도 한다. 주자(朱子) 즉 주희(朱熹)12세기 남송의 철학자이다. 주희가 대단한 것은 여러 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장재의 이()와 기(), 주돈이(周敦頤)의 태극, 정호의 천리(天理) 등의 개념을 하나로 통합해 자신의 철학 체계를 세웠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주희는 형이상학적인 것은 형체도 그림자도 없는 것 즉 리()라 표현했고 형이하학적인 것은 정()과 형태를 가진 것으로 기()라고 설명했다. ()가 먼저이고 기()가 나중이다.(이선기후理先氣後) ()는 만고불변의 원리이기에 다를 수 없고 기()는 형상을 위해 수없이 변할 수 있기에 같을 수 없다.(이동기이理同氣理) ()와 기()는 섞이지 않는다.(이기불상잡), 기는 이에 의해 활동한다.(이생기理生氣)

 

()는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에이도스)과 비교된다. 기는 질료(質料)와 비교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를 세계 저 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사물 자체 내에 존재하는 것 즉 이 세계의 힘을 구성하는 동적인 원리로 보았다. 이것이 형상이다.

 

사칠리기(四七理氣) 논쟁이란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의 해석을 둘러싸고 벌인 논쟁을 말한다. ()에 근거한 측은지심(惻隱之心), ()에 근거한 수오지심(羞惡之心), ()에 근거한 사양지심(辭讓之心), ()에 근거한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네 개의 실마리 즉 사단이라 한다. 7정은 희(), (), (), (), (), (), ()을 가리킨다.

 

본연지성인 4단은 인간의 선() 추구를 위한 도덕적 개념이다. 기질지성인 7정은 도덕적 개념이 아니기에 악도 존재할 수 있다. 이와 기는 현상론적인 면에서는 분리될 수 없다.(이기불상리理氣不相理), 또한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할 수 없다.(이기무선후理氣無先後), 그리고 이는 같을 수 없고 기가 서로 비슷하다.(기상근리부동氣相近理不同)

 

주자학에서 인간의 수양을 강조하는 것은 기()가 이()에 의해 생기지만 생겨나면 이는 기를 완전히 관리하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32 페이지) 플라톤이 말한 영혼(靈魂)은 성() 즉 리()에 해당한다. 성즉리란 도덕의 근원은 형이상학적 이법이라는 의미이다.(이정우 지음 인간의 얼굴’ 129 페이지)

 

육체는 감성을 포함하는 것 즉 정(: passion) 즉 기()에 해당한다. 모든 사물이 이와 기로 이루어졌듯 인간의 심은 성()과 정()으로 구성된다.(28 페이지) 본체론적인 면과 현상론적인 면으로 나누는 것은 합리(合離)의 철학 즉 합해서 보고 나누어서 보는 것이다. “그의 사유는 분리해서 보면.. 합해서 보면...이란 구조를 가진다. 분리해서 보면 이()는 기()에 선행한다. 합해서 보면 理氣는 동시적이다. 분리해서 보면 성()은 완전하다. 정과 합해서 보면 성은 불완전하다.”(이정우 지음 인간의 얼굴’ 131 페이지)

 

우리는 이황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나 이이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에 대해서는 많이 알아도 기대승의 이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기대승은 4단은 모두 선()이며 7정에는 선악이 있다는 이황의 입장에 불만을 가졌다. 기대승은 사단이란 결국 칠정이 발현(發現)하여 도덕성에 맞아떨어진 것이지 사단이 칠정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기대승의 입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연상하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은 인간의 형상이 자체적으로 있고 A라는 사람이 그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A라는 생명체의 구성과 운동 자체가 인간이라는 형상의 표현(이정우 지음 가로지르기’ 192 페이지)이라는 말로 요약 가능하다.

 

기대승은 이황에게 성()도 이기가 있고 정()도 이기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왜 굳이 사단과 칠정을 이와 기로 나누려고만 하는가 묻는다.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의 관계를 대설적(對說的: 좌우 관계)으로 보았고 이황은 인설적(因說的: 상하 관계)으로 보았다. 기대승과 이이의 이기묘합(理氣妙合) 이론은 기를 중시하는 특징을 드러냄으로써 이황의 이론과 함께 조선 성리학을 주리론과 주기론으로 양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아가 그것은 기호학파와 영남학파를 구별짓는 근거를 마련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기호학파는 기대승과 이이의 설을 이어받아 기발리승설(氣發理乘說)을 따랐고 영남학파에서는 이황의 리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따랐다. 정치적으로는 영남학파는 남인(南人)의 입장이었고 기호학파는 서인 특히 노론(老論)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58 페이지)

 

기대승을 필두로 한 주기론적 입장은 기호학파를 형성하면서 결국은 실사구시 학파들의 주장과 연결된다.(62 페이지)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심성은 덕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욕망에서 다른 하나의 욕망으로 가는 단순한 동물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다.(66 페이지)

 

마키아벨리는 덕을 강조한 고대 철학적 전통을 비판한 최초의 근대철학자이다. 홉스는 근대 철학의 시조이다. 그는 인간의 모든 사고의 근원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가 아니라 감각일 뿐이며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목적이 아닌 원인라는 이론을 도출해냈다. 이 때 원인이란 동물적 속성을 가진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니체는 홉스처럼 이성을 부정하면서 인간 행동의 기본 동기를 감성에 두었다. 니체는 이 세상에는 영원한 무엇은 없으며 영원한 진리도 없고 오직 변화만이 있다고 보았다.(71 페이지) 니체에게 불변의 도덕적 현상이란 없고 오직 현상에 대한 도덕적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니체는 무의식을 발견하였다. 니체에게 있어서 육체는 그 자체로 자아이며 이성은 인간성 내에서 아무런 작동을 하지 못한다.(72, 73 페이지) 니체는 자기 보존을 위해 설립된 문명 사회의 보이는 힘에 의해 억압받는 욕망을 지적한다. 니체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보존이 아니라 자기 실현이다.

 

저자는 서양 철학에 있어서 인간성 이해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프로이트야말로 철학적 논의에서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될 확실한 철학자라 강조한다.(74 페이지) 프로이트는 이데아나 원형의 개념을 부정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감성 자체이다. 프로이트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때는 사랑의 본능(eros), 어떤 때는 죽음의 본능이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본능이 하나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는 곧 본능이란 것이 외부 충격과 관계가 있다는 의미이다. 정신분석학은 이를 대상(對象)이라 부른다. 물론 프로이트 이론에서는 대상이 본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이 대상을 결정한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지나치게 인간의 본능을 강조한 이론이라 설명하며 외부적 조건으로서 심리 현상에 대한 문화적 영향을 강조하는 대인(interpersonal) 정신분석학을 언급한다.

 

외부의 영향이 자아에 미치는 관계를 내사(內射; introjection)라 하는데 대인 정신분석학은 이 내사적 요인을 강조한다.(86 페이지) 물론 중요한 점은 내사 뿐 아니라 본능이 환경을 향해 쏘는 투사(投射; projection)의 영향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멜라니 클라인의 대상관계이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클라인은 사랑과 미움을 본능이라 보는 대신 대상과의 감성적 관계에서 생겨나는 인간 감성의 핵심적 요소로 보았다.(89 페이지) 멜라니 클라인은 내사와 투사를 통해 한 인간의 감성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또한 자아의 형성이 꼭 외적 대상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자아 자체의 내적 요소와의 관계로부터도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89 페이지)

 

멜라니 클라인은 내적 이미지를 통해 자체 내에서 희열(phantasy)이나 염려(anxiety) 등의 감정을 맛보게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했다. 클라인 이후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의 본능 이론과 설리번의 외적 영향의 강조를 모두 뛰어넘어 자아의 외적 대상과 내적 대상 사이의 내사와 투사를 동시에 연구하는 쪽으로 그 비중을 옮기게 되었다.

 

현대 정신분석학의 주류적 입장은 자아가 외부를 향해 분출하는 힘과 외부의 환경이 자아로 유입되는 힘, 그리고 그 상호 관계를 연구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철학적으로 보면 자아는 외부의 영향을 받는 동시에 새로운 외부 조건을 창조해 가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즉 자아는 결정적이고 창조적인 요소를 동시에 지니는 것이다.(90 페이지)

 

이황은 사단은 순전히 선한 것이고 칠정은 선과 악이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기대승은 정이 발현할 때 절도에 맞으면 사단이지 사단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기대승은 사단도 칠정도 모두 리와 기의 혼합체인 마음에서 나오는 바 이와 기를 겸하지 않은 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93 페이지) 절도는 시대의 도덕률이 아닐지?(102 페이지)

 

기대승에게 마음이란 리와 기가 함께 있는 정()의 작용이다.(97 페이지) 기대승의 마음 분석을 정 중심적 분석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프로이트와 다를 것이 없다.(97 페이지)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이성이 아닌 정적(情的) 교감의 원리를 찾아 규명하려 한 사람이다. 프로이트의 사랑과 죽음이라는 두 개의 본능은 기대승의 칠정을 축약한 것이다.(98 페이지)

 

물론 기대승에게 성은 순수한 선 자체이지만 프로이트에게 성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가진다. 기대승에게 무조건 선이 되는 것은 없다. 만고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의미이다. 프로이트는 선과 악을 정상과 비정상, 건강과 병 등으로 대체한다. 사랑도 너무 많으면 비정상 또는 병이 되고 죽음 또는 파괴 본능도 적절히 표현되면 정상 또는 건강한 정신 상태로 이해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103 페이지)

 

프로이트가 치료를 통해 비정상이 정상으로 돌려질 수 있다고 보았듯 기대승은 수양을 통해 작성작현(作聖作賢)이 가능하다고 보았다.(107 페이지) 이황에게 있어서 정()이란 외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선한 행위를 위해서는 환경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황은 불변의 성()으로 사단(四端)의 소종래(所從來: 지내 온 내력)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단이 외부 환경에 따라 변화무쌍해지는 칠정(七情)을 다스릴 수 있을 때에만 선()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강조했다.(111 페이지)

 

기대승은 이황이 주장한 것처럼 형기(形氣)가 단순히 외물(外物)에 감응되는 것이 정이 아니라 외물이 심중에 감동을 줄 때 정()이 주도적으로 발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사단(四端)과 칠정(七情) 사이에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멜라니 클라인은 대상과의 관계에서 대상의 객관적 실체보다는 대상에 대한 자아의 느낌(감동) 여부에 따라 수많은 정(passion)이 생성된다고 보았다. 자아가 대상을 향해 쏘아대는 투사를 정의 중요한 형성 요소로 간주하는 것이다.(115 페이지)

 

기대승이 강조하는 것은 경()이다. 인간의 마음이 외물과 접하여 발현될 때 나타나는 모든 정()이 선()만일 수 없기에 악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에는 경이라는 요소가 있어 이 경의 역할로 인해 인간은 발현된 정의 의미를 선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이때 경이란 성선설(性善說)을 뒷받침해주는 개념으로서 본질적인 성()을 따르려는 의미는 지닌다. 경은 공경한다는 의미보다 삼가다는 의미이다.(118, 119 페이지)

 

기대승의 경()과 프로이트의 초자아는 매우 흡사하다. 이황도 기()가 강하기에 이()에서 비롯된 기가 현실의 악이 생긴다고 보았지만 사단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와 기()의 관계를 초자아와 자아 이상(理想)의 관계로 보면 성리학적 해석과 정신분석학적 해석에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된다.(131 페이지)

 

기대승의 칠포사(七包四: 사단과 칠정의 관계) 이론이 조선 성리학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성리학의 논리는 이 세상 만물은 이와 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인간성을 논함에 있어서도 이와 기의 개념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기대승은 우주를 논하는 태극설에서는 이와 기의 개념을 인간성 이해에서처럼 사용하지 않았다. 기대승은 태극에서 이는 이 자체로 존재한다고 보았다.(150 페이지)

 

많은 학자들이 프로이트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신화를 오독했다고 비판한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왕뿐 아니라 안티고네’, ‘콜로노스에서의 오이디푸스라는 두 개의 이야기도 썼는데 이 이야기들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내용이 있다.(165 페이지..‘오이디푸스왕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다.)

 

에리히 프롬은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신화를 일방적으로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프롬에 의하면 그 신화들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프로이트가 말한 것과 같은 어머니를 사랑하고 싶은 근친상간의 욕망과 아무 관련이 없다.(167 페이지)

 

또한 많은 학자들은 근친상간의 경우 부모가 잔에게 먼저 성적 요구를 하며(특히 아버지와 딸 사이에서) 때로는 강제성까지 띤다는 임상학적 자료를 제시하면서 어린이가 부모에게 느끼는 성적 욕망이 인간 최초의 성적 욕망이라는 프로이트의 주장을 비판한다.

 

저자는 오이디푸스왕에 대한 이야기만 가지고 보면 프로이트를 비판한 사람들이야말로 오이디푸스 신화를 잘못 이해했다고 말한다.(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것이 상식이라는 것이 프로이트를 비판한 사람들의 논리이다.) 저자는 라이오스가 아들을 죽이려 한 것은 자식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공포심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프로이트가 말한 자식이 부모에 대해 갖는 적대감이 먼저라는 말이 타당하다고 말한다.(171, 172 페이지)

 

그런데 정말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려 했을까? 라이오스가 오이디푸스를 죽이려 한 것은 예언가의 말을 듣고서이다. 예언가는 아들(오이디푸스)이 장차 아버지(라이오스)를 죽이게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 예언은 말 그대로 예언이다. 맞는지 장담할 수 없는. 물론 프로이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예시한 소포클레스의 두 신화(‘안티고네’, ‘콜로노스에서의 오이디푸스’)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것은 무의식적인 적대감이 아니다.

 

프로이트 비판(‘오이디푸스왕이야기를 잘못 읽었다는 비판) 가운데 한스 요하임 마즈의 것이 설득력이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병리적인 가정에서나 발생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들뢰즈의 오이디푸스 가족 삼각형‘(에 국한된 것이라는) 비판도 새길 만하다.

 

결론이야 어떻든 성리학자 기대승 프로이트를 만나다는 매우 적절하고 중요한 책이다. 180여 페이지의 얇은 책에 어려운 논의를 실었고 결론적으로 멜라니 클라인의 논의에 대한 관심을 더욱 촉발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대상 관계이론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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