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자연의 법칙들은 어둠 속에 있었네. 하느님이 말씀하시길, ‘뉴턴이 있으라!’ 그러자 온 세상에 빛이 가득했네.(Nature and Nature‘s laws lay hid in Night: God said, Let Newton be! and all was light.)”

이는 18세기에 활약했던 영국의 유명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지금도 널리 회자되는, 시인 자신보다 더 유명한 말이다.

이 말이 “그때 신이 ‘빛이 있으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빛이 생겨났다.”는 구약 성경 창세기(1장 3절)의 한 구절을 바탕으로 나온 말이라는 사실도 유명하다.

포프의 저 말은 뉴턴의 묘비에 새겨진(명銘) 글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리차드 바이스는 ‘빛의 역사’에서 교황을 뜻하는 Pope라는 말 때문인지 뉴턴의 묘비명을 “교황이 쓴(말한)” 것이라 말한다.(228 페이지)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이론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드는 증거와 숫자를 나열하고, 더하고 나누고, 도표와 도형을 계량한 박식한 천문학자를 보며 알 수 없게 금방 따분하고 지루해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빠져 나와 홀로 거닐며 촉촉하게 젖은 신비로운 밤공기 속에서 이따금 하늘의 별들을 말없이 올려다보았다고 말한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 – 1892)보다 알렉산더 포프의 감정을 더 선호한다는 말을 했다.(‘우주의 풍경’ 172 페이지)
휘트먼에게 별은 자연과학으로부터 느낀 따분하고 지루한 감정에 대한 해독제였을까? 그가 데이트 상대 여성으로부터 “별이 참 예쁘네요.”란 말을 듣고 “현재 이 지구상에서 별이 빛나는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나 뿐.”이라는 말을 했다는, 핵융합 반응과 질량 결손(缺損)에 따라 빛을 내는 별의 원리를 처음 밝힌 한스 베테(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이과 바보 문과 바보’ 58 페이지)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런데 우리는 ‘빛이 있으라’는 신의 말씀으로 빛이 생겨났다는 사실에 경외(敬畏)를 느끼지만 우치다 다츠루가 그랬듯 그 구약 성경 구절로부터 빛보다 소리가 먼저 있었다는 사실(우치다 다츠루 지음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139 페이지)을 왜 읽지 못하는 것일까?

다츠루는 소리야말로 빛의 기원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는 절대자에게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지? 그리고 빛이 있으라는 말로 인해 빛이 생기게 되었기에 소리가 빛의 기원이라 하지만 엄밀히 말해 신의 의지(意志) 또는 사유가 빛을 있게 한 것이다.

빛과 소리를 차별화해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츠루의 의도는 신을 시각적으로 표상하는 것은 금기이지만 청각적으로 표상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고 음성을 표상보다 근원적인 지향적 차원으로 간주하는 유태교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에 있다.

그런데 빛과 소리를 전혀 다른 것이 아닌 파동(波動)의 상이한 종류로 볼 수는 없을까?(빛도 파동이고 소리도 파동이다.) 형상으로 신을 표현하는 것은 불경하고 소리로 신을 표현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가?(다츠루는 신의 티자성을 훼손한다는 표현을 썼다.) 생각해볼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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