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서정과 감각’이란 평론집으로 2014년 김달진 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자가 된 김진희 평론가에 대해 대학의 과 선배 정끝별 평론가가 쓴 작가론을 읽었다.

 

이 글에는 김진희 평론가가 대학 2년때 쓴 ‘그때 우리에겐 詩가 있었다’는 구절로 시작되는 시가 소개되어 있다.

새롭다 할 수 없는 것은 ‘시에 관한 각서’라는 평론집에서 저자 김진희 평론가가 “일찍이 시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아주 자주 시인의 마음이 되어 시를 읽는다.”는 글을 썼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저자가 시인이 되려 했으니 어느 만큼의 시를 썼음에 틀림 없는 일이라는 점이다. 특기할 것은 이 글에 이어지는 다음의 글이다.

 

“시인의 마음이 되려고 애쓰기 때문일까. 시인이 부리는 시어 하나하나에 마음이 쓰이고 비유 하나를 만들기 위한 시인의 고통이 상상되곤 한다.”

시인이 되려던 마음을 접고 그는 이제 시인의 마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시인으로 사는 것과 시인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확신할 수 없지만 시인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의 평론에는 남다른 언어 감각이 있지 않겠는가?

 

다시 정끝별 평론가의 글을 인용하자면 김진희 평론가는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도 여전히 시 쓰는 걸 놓지 않는 눈치였지만” “더 이상 시 작품을 발표하거나 보여주지는 않았다.” 이 부분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평론만을 하는 사람(김진희)과 시 쓰고 평론도 하는 사람(정끝별)의 차이를 가려내는 것일까?

그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시급한 일도 아니리라. 혹 많은 시 읽기, 시 평론 읽기가 갖추어진 후라면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또한 의도해서 써낼 수 있는 것이기보다 저절로 마음에 차오르면 말할 수 있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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