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한 연구‘의 박상륭 작가께서 돌아가셨다. 내공이 깊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표류(漂流)하기 딱 좋은 그 분의 문학적 깊이와 사상의 폭을 늦게나마 제대로 따라 가보자고 다짐했던 것이 얼마 전인데...
죽음이라는 슬픈 사건을 추모하며 그 분이 남기신 책의 한 단락이나마 음미하고 싶다.
돌이켜 보면 김현 평론가의 글을 읽고 내가 ’죽음의 한 연구‘를 읽었기에 이런 저런 추억들을 단편적으로나마 떠올릴 수 있는 것이리라.
‘죽음의 한 연구‘의 도입부에 나오는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이란 길고 긴 주부(主部)를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유쾌하다.
요즘 책이 최고의 명함이라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는데 그 훨씬 이전부터 나는 누군가의 책을 읽고 간직하는 것으로 그 누군가를 기억하고 책을 명함처럼 소장해오고 있었다.
읽지 못하고 명함처럼 소장하고만 있는 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참 오래 전 빌려 읽고 말았을 뿐인 ’죽음의 한 연구‘를 사야겠다.(내가 읽은 것은 한 권 짜리 버전인데 지금은 두 권으로 분책되었다.)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