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素隱) 박홍규 선생(철학자)의 사상을 해설한 제자 소운(逍雲) 이정우 교수의 책 ‘소은 박홍규와 서구 존재론사‘를 읽고 있다.
서구 존재론의 두 축인 플라톤과 베르그손의 사상을 다룬 책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정우 교수의 책은 열 여덟 권이다. ‘소은 박홍규와 서구 존재론사‘, ‘가로지르기‘, ‘담론의 공간‘, ‘접힘과 펼쳐짐‘, ‘주름 갈래 울림‘, ‘탐독(耽讀)‘, ‘주체란 무엇인가‘, ‘세계의 모든 얼굴‘, ‘천 하나의 고원‘,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인간의 얼굴‘ 등 모든 책이 고투하며 읽은 책들이다.
내가 처음 읽은 이정우 교수의 책은 ‘가로지르기‘이다. 20년 전의 일이니 1997년 이후 거의 1년에 한 권씩 이 교수의 책을 만난 셈이다.
소은(素隱)과 소운(逍雲)이란 호가 눈에 띈다. 한문은 다르지만 한글로는 발음이 같은 ‘소‘라는 글자를 보며 나도 소자를 넣어 호는 아니고 별칭을 하나 하나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소윤(宵贇)은 어떨까? (드물고 어려운 글자이지만) 밤 소(宵)와 예쁠 윤/ 빛날 윤(贇)을 쓰는 이름이다.
밤과 빛남은 밤과 낮처럼 완전히 반대되는 말은 아니지만 상대어라 할 수 있다.
그럼 반대되는 이름을 넣어 별칭을 지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의 속성으로 이름이 모두 채색되지 않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윤(贇)은 빛남과 예쁨 외에 문채(文彩) 즉 아름다운 문장의 빛남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문(文)과 무(武)가 모두 들어 있는 멋진 글자이다.
나는 윤(贇)이란 글자로부터 문질빈빈(文質彬彬; 외양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아름다움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을 생각한다.
다만 문과 무의 관계를 내면의 아름다움과 외양의 아름다움의 관계로 볼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