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나치 수용소에 징발(徵發)된 유일한 예술 장르이다.“ 이 파격의 메시지를 담은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1948 - )의 신간 산문집 ‘음악 혐오’를 접하고 몇몇 이름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키냐르의 말처럼 나치는 여성 수인(囚人)들로 구성한 오케스트라를 통해 교수형 집행장에서조차 경쾌한 행진곡을 연주하게 했다.

이에 여성 수인들은 ”하느님, 이런 데서 음악이라니요?“ 하며 울부짖었다.(서경식 지음 ‘나의 서양음악 순례’ 285 페이지)

저자는 이 야만을 인간에 대한 최종적인 파괴였다고 표현한 폴란드 출신의 여성 수인 조피아 조코비악에 대해 전한다.

그 여성 음악단원들은 나치로부터는 우대받았지만 다른 수인들에게는 모멸과 원한과 한탄의 대상이 되었다.

소환하지 않을 수 없는 이름 하나는 올리비에 메시앙(1908 – 1992)이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한겨울인 1941년 1월 독일령 실레지아의 괴를리츠 포로 수용소에 갇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성경을 묵상하던 메시앙은 요한계시록에서 영감을 얻어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란 작품을 만든다.

극심한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로 인해 침묵 속에서 시연(세계 초연)된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연주에 대해 훗날 메시앙은 ˝그처럼 대단한 관심과 이해를 보여준 무대나 관객을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소환하는 두 번째 이름은 현대 음악 작곡가 윤이상(尹伊桑: 1917 – 1995)이다.

1963년 4월 오랜 친구 최상학의 주선으로 쳥룡, 백호, 주작, 현무의 강서 고분의 사신도(四神圖)로부터 작곡을 위한 영감을 얻기 위해 방북한 윤이상은 박정희 정권의 조작(1967년 동 베를린 간첩단 사건...이는 부정선거에 대한 거센 비판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과장, 확대 해석된 사건이다.)으로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다.

서울 구치소에서 윤이상은 자살 시도 끝에 음악 작업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오페라 ‘나비의 꿈’을 작곡한다.

그는 달라피콜라, 리게티, 슈톡하우젠 등 세계적 음악가들의 탄원에 힘입어 수감 1년 8개월여 만에 석방되지만 끝내 정권(政權)의 방해로 고국에 들어오지 못하다가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난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5일 영부인(令夫人) 김정숙 여사가 베를린의 윤이상 묘소를 방문해 그의 고향인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성악 전공의 김 여사는 윤 선생은 학창 시절 영감을 많이 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처염상정(處染常淨)이란 문구의 윤이상의 묘비명과 부인 이수자 여사와 딸 윤정(1970년대 독일 전위 록 그룹 Popol Vuh의 보컬이었던...그들의 Hosianna Mantra를 꼭 들어보시길...)의 사진을 보며, 그리고 윤이상의 어머니가 꾼 태몽인 상처 입은 용을 생각하며 윤이상 음악제가 열리는 통영에 꼭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처염상정은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 연꽃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 이름도 낭만적인 ‘물결 높던 날들의 연가’란 책에서 서우석은 중요한 것은 공기의 파동이 귀에 들어와 우리의 뇌에 이르면 우리 마음이 무의식에 있는 여러 유형들을 꺼내 그 소리들을 곱게 또는 곱지 않게 옷을 입혀 우리 의식에 자리를 잡아주고 앉혀주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29 페이지)

우리 무의식이 곧 세상이니 음악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것은 세상이라는 말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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