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말 중촌 & 남촌 시연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정동이 중촌(中村)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덕수궁, 배재학당, 구 러시아 공사관, 성공회 서울주교좌 대성당, 정동제일교회 등이 있는 정동은 역사적 명소이다.

이재영 님의 ‘조선 왕릉, 그 뒤안길을 걷는다’에서 정동과 관련한 중요한 사실(史實)을 알았다.

태조 이성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들 태종이 태조 사후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정동(貞洞) 소재 정릉(貞陵)을 도성(都城) 안에 능이 있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貞陵洞)으로 천릉(遷陵)하고 능을 묘로, 신덕왕후 강씨는 왕후에서 후궁으로 격하시켰다는 부분이다.

아버지와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계비(繼妃)가 원비(元妃)의 장성한 아들들을 제치고 자신의 둘째 아들을 세자로 만든 악연 때문이다.

이현군의 ‘서울, 성 밖을 나서다’에는 선정릉(宣靖陵)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강남)에 왕릉이 들어선 것이 아니라 들어설 당시는 경기도 땅이었다가 서울에 편입되었다는 것이다.(206, 207 페이지)

그러면서 저자는 조선 시대 능은 도성 안에 들어설 수 없었다는 말을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당시 선정릉이 있던 곳은 ‘도성 안이 아닌’(도성을 조금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서울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경기도 땅이었다.

오버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경국대전’에 왕릉은 도성에서 80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 규정에서 벗어난 것이 세종의 영릉(英陵)과 사도세자의 융릉(隆陵)이다.(이재영 지음 ‘조선 왕릉, 그 뒤안길을 걷는다’ 64 페이지)

정릉(貞陵)이 있던 곳은 정동(貞洞)이고 현재 정릉이 있는 곳은 정릉동(貞陵洞)이니 재미 있다.
정릉동에서 능(陵)을 옮겼으니 정동이고 능이 들어선 동네는 정릉동(貞陵洞)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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