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평론집을 읽는다. 나무 해설가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원인을 해결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는 내게 눈에 띄는 구절이 나타났다.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를 떠올리면 언제나 한 그루 나무가 서 있다.”(김행숙 지음 ‘천사의 멜랑콜리’ 79 페이지)는 구절이다.

나는 베케트가 자신의 작품에 늘 나무를 등장시키는 것은 징후적인가 생각하게 되는데 이는 요즘 내가 집, 나무, 사람(HTP: house, tree, person) 심리 검사 책을 읽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2년 잡지 기자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대책 없이 거리를 헤매다 숲 연구소를 발견하고 나무를 배우고 숲에 들기 시작한 이듬 해 숲 해설가 자격증을 받아들자 심신의 독기와 체기가 조금씩 사라져 갔다는 나무 전문가의 책을 읽다가 글 솜씨에 가슴 찡함을 느낀 것이 최근 일이다.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와 관련한 덕혜옹주의 사연을 들려주던 그는 낙선재 앞에 사는 서너 그루의 감나무 가운데 덕혜옹주의 애처로운 신세를 닮은 외떨어진 나무 한 그루에 감이 영글었다는 말을 한다.(‘서울 사는 나무’ 309 페이지)

책에서 그(저자 장세이)는 길가(북촌로, 삼청로, 율곡로, 새문안로 등), 공원(낙산공원, 삼청공원, 서대문독립공원 등), 궁궐(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종묘 등)에 사는 나무들을 알뜰히 불러낸다.

창덕궁(만이 아니겠지만)에 사는 나무(감나무)를 이야기한 글은 결국 집(창덕궁 낙선재), 나무(감나무), 사람(덕혜옹주)이 등장하는 드라마이다.(언제부턴가 종묘에 들면 재궁齋宮 앞 물박달나무를 찾아간다는 저자..)

HTP 전문가는 집, 나무, 사람이 만들어내는 구도의 전체적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집(궁궐, 종묘, 능)과 사람을 위주로 생각(해설)하는 내게 나무도 포함시키라고 타이르는 말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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