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공부를 한 이후 접하는 말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경복궁과 창덕궁 가운데 어느 궁궐이 더 마음에 드는가, 하는 질문이다.

창덕궁을 선호하는 사례가 더 많은 듯 하다. 그러나 나는 경복궁이 낫고 특히 왕비 전이 가장 그렇다. 전각의 배치나 구성, 장식 등이 아닌 이름이 그렇다는 것이다.

경복궁의 왕비 전은 교태전(交泰殿)이고 창덕궁의 왕비 전은 대조전(大造殿)이다. 교태전은 음이 위에 위치하고 양이 아래에 위치하는 주역의 지천태 괘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반면 대조전은 큰 것을 만드는 전이라는 의미로 큰 것이란 다름 아닌 왕자를 말한다. 멋이라고는 없는 노골적인 이름이다.

창덕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곳이다. 반면 경복궁은 창덕궁에 비해 격식과 예의가 살아 있는(반영된) 곳이다.

임석재 교수의 ‘예로 지은 경복궁‘이란 책이 말해주듯.

정문(광화문)에서 정전(근정전)이 보이는 경복궁이 정문(돈화문)에서 정전(인정전)까지 일직선이 아니고 방향을 두 번이나 바꿔야 하는 창덕궁보다 더 곧고 바르게 보인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 왕들의 입장에서는 창덕궁이 나았겠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경복궁이 낫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경복궁은 정도전이 설계한 궁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경복궁은 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음)의 정신이 반영된 곳이기도 해 의미가 깊다.

이번 연구원 수업에서 묘하게도 4대궁 중 창덕궁(7월 5일)과 경복궁(8월 2일)을 시연하게 되었다. 김동욱 교수의 신간 ‘서울의 다섯 궁궐과 그 앞길‘을 읽어야겠다.

앞서 정문에서 정전에 이르는 길을 말했는데 이 책은 담장 밖의 세계를 다룬 본격 궁궐 입문서이다. 내 문제의식을 넓히기를 요구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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