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禮)와 종(宗), 이 두 글자에도 시(示)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 禮는 조상의 위패<示>, 갖가지 음식을 뜻하는 곡(曲), 제단(祭壇)을 의미하는 두(豆) 등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禮는 제단에 차린 음식을 고루 나누는 것과 연결된다. 벼를 뜻하는 화(禾)와 그것이 입<口>에 고르게<평平등하게> 들어감을 의미하는 평화(平和)도 나눔과 관련된 말이다.
정의로움을 의미하는 의(義)도 희생양(羊)을 칼(아我는 칼을 뜻함)로 고루 나누어야 정의롭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종교(宗敎)라는 글자에 쓰이는 으뜸 종(宗)자는 상에 위패<시示>를 놓고 제사 지내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이다.(장인용 지음 ‘周나라와 조선’ 102 페이지) 장인용은 삼국시대 이전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데릴 사위 제도를 언급하며 그것은 시집간 여자도 재산을 상속받았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장인용에 의하면 따라서 여자들도 재산을 지니고 있었으며 오히려 그 재산을 바탕으로 남편을 선별했다.(122 페이지) 장인용은 제사와 상속은 별도의 문제 같지만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140 페이지) 제사를 지내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든다. 고대 사회에서 그것은 모두 토지의 수확물로부터 나왔다. 그렇기에 누군가 제사를 맡는다는 것은 그 만큼의 상속을 더 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조선 초기는 형제자매가 재산을 균분상속을 받았다. 이런 제도는 후에 종법宗法 제도 시행으로 인해 와해된다. 이 부분에서 정도전이 죽임당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시대상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궁금하다.
전제개혁(田制改革)을 펼침으로써 고려 말의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뻔했던 정도전,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도덕성이 높은 왕과 유학으로 철저히 무장한 사대부들의 유교 이상향인 국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던 정도전...그가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개혁을 완성했다면, 하는 아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