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선생님을 생각할 때면 축제(祝祭)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선생님은 이 말을 일본의 이상한 정신 세계가 반영된 말이니 쓰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축(祝)은 빌 축, 저주할 축이다. 이 역시 이상하다. 빌기도 하고 저주하기도 하니.(구체적으로 축이란 글자가 저주의 의미로 쓰인 경우를 찾지는 못했다.)
크리스테바를 인용하며 누군가를 해석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누군가를 살해하는 행위로 구성된다는 말을 한 정신과 의사 김종주 교수 생각이 난다.(‘이청준과 라깡’ 510 페이지)
어떻든 축하의 제사라니...축(祝)이란 글자가 문제인가?
축(祝)은 신에 봉사하는 종교인을 말한다. 공자는 어릴 때 제상 위의 술잔 등을 가지고 원유(原儒)의 기도나 제사지내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공자는 유자(儒子)를 종교성을 중심으로 하는 소인유(小人儒)와 예교성을 중시하는 군자유(君子儒)로 나누었다.
원유 또는 소인유는 무축(巫祝)이고 군자유 또는 대인유는 합리주의에 입각한 사상유(思想儒)이다.(가지 노부유끼 지음 ‘유교란 무엇인가’ 참고)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는 예(禮)를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 등으로 나누었다.
이 책에 의하면 삼년상을 지나 종묘(宗廟)에 부묘(祔廟: 신주를 종묘에 모심.)되기까지는 흉례, 그 이후 제사의식은 조상을 다시 만난다는 의미에서 길례이다.
축하의 제사라는 말과 연결지을 법하다. 그런데 정녕 조상을 다시 만나는 것이 길한 일이고 기쁜 일이라면 헤어질 때는 어떤가. 슬프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제(祭)와 (천도재, 예수재預修齋 등의) 재(齋)를 구분하며 제는 와서 흠향(歆饗)하라는 의미이고 재는 가라는 의미(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저승으로 잘 가기를 바라는)라 한다.
하지만 제(祭)의 대상인 혼(魂)도 결국 돌아간다. 이듬해에 다시 오겠지만. 그나저나 신(神), 제(祭), 예(禮), 축(祝), 조(祧: 불천不遷의 반대인 조천祧遷의 조), 기(祈), 도(禱), 사(祀: 사당), 조(祖), 사(社), 화(禍), 복(福), 지(祗),
지(祉: 복), 조(祚: 복), 요(祅: 재앙), 비(秘: 비밀), 상(祥: 상서로움).. 보일 시(示)변의 글자가 너무 많다. 시(示)는 귀신을 뜻한다. 오호 귀신으로 가득한 세상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