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로 읽는 심리학 - 그리스부터 북유럽 신화까지
리스 그린.줄리엔 샤만버크 지음, 서경의 옮김 / 유아이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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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심리학의 대가인 두 저자(리즈 그린, 줄리엣 샤만버크)가 쓴 ‘신화로 읽은 심리학’은 기본적으로 모든 것의 시작은 가족이며 오이디푸스는 정신분석 상담실에만 갇혀 있지 않으며 삼각관계는 인류의 기록 문화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책은 1부 모든 것의 시작은 가족이다, 2부 홀로 선다는 것, 3부 사랑에 관하여, 4부 지위와 권력, 5부 인생의 통과의례 등으로 구성되었다.

저자들은 가족의 원형은 쉽사리 변하지 않겠지만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외부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적어도 우리의 내면을 바꿀 수는 있다고 말한다. 두 저자는 결혼 생활이 불행하여 그 속에서 아무런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여전히 운명적인 만남을 갈구하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 운명을 딸에게서 찾으려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25 페이지)

심리학 책들을 읽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가족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말을 한 한스 요아힘 마즈의 말(‘릴리스 콤플렉스’ 참고)을 들을 만하다.

두 저자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딸의 첫사랑이다. 아버지는 어린 딸의 모습에서 자신이 꿈꿔 왔던 최고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본다. 이는 결코 추한 일이 아니며 자연스럽고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불행하여 그 속에서 아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여전히 운명적인 만남을 갈구하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 운명을 딸에게서 찾으려 할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술과 희열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아들 오이노피온이 딸 메로페를 사랑하는 오리온이란 사냥꾼에게 도저히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과제로 제시하는 신화 이야기와 함께 제시된 부분이다. 딸이 최상의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고집하는 아버지의 소망 이면에는 딸에 대한 은밀한 소유욕이 감춰져 있다고 두 저자는 말한다.

마즈의 말을 이야기했지만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병리적인 현상은 일반적인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테세우스와 히폴리투스 편에서는 아이에 대한 부모의 적개심이란 말이 나온다. “아들이 자기보다 뛰어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세월의 무상함과 젊음만을 추구하는 세태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또한 너무도 친한 아내와 아들 사이를 시샘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와 지지는 보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들을 신뢰하고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해야 한다.”(31 페이지)

저자들은 구약 성경의 카인 아벨 이야기를 종교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연약한 아이와 강력한 그리고 불공정한/ 편애하는 부모 관계로 카인 아벨 이야기를 설명한다.

잘 알려졌듯 라이오스는 오랫 동안 자식이 없자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신탁을 받는다. 아내 이오카스테에게서 태어난 아들에 의해 죽음을 당할 운명이라는 말을 들은 라이오스는 아내 이오카스테를 멀리 떠나보내려 한다. 분노한 이오카스테는 남편을 취(醉)하게 한 뒤 품에 안아 아이를 갖게 된다.

라이오스가 아이를 유모에게서 빼앗아 산에 데려간 뒤 아이의 발등에 못을 박고 죽게 내버려둔다. 오이디푸스는 부어오른 발이라는 의미이다. 라이오스 가문은 죄 많은 가문이다. 저자들은 우리가 라이오스 가문과 같은 잔인하고 끔찍한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가족끼리 심리적으로 타격을 주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한다. 소통 거부의 독단으로 인한 결과이다.

라이오스가 신탁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듯 아들 오이디푸스도 신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경고를 듣고 신의 예언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코린트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버려졌으나 코린트 목동의 눈에 띄어 목숨을 건진 뒤 코린트 왕의 양자가 되어 왕위 상속자로 지내던 시절이었다.

2부 홀로 선다는 것에서 저자들은 에덴 동산 신화를 논한다. 아담이란 땅을 뜻하고 하와는 생명을 뜻한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 유한한 삶을 살아간다. 살기 위해 일을 하고 부모가 된다.(97 페이지) 아담, 하와의 실낙원은 상실과 독립 등의 키워드로 해석할 수 있는 우리 삶의 은유이다.

저자들은 부처의 출가도 논한다. 싯다르타(출가 전 왕자 시절의 이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운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부모는 적절한 시기에 아이를 떠나보내야 한다.(106 페이지)

저자들은 켈트 신화의 성배 전설인 페레두르(Petedur) 이야기를 논하며 어린 페레두르가 세상 속으로 나가 성인이 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통과의례의 관점으로 페레두르는 설명이 가능하다. 성배(聖杯) 이야기는 신화적인 요소는 물론 켈트, 게르만, 중세 프랑스의 문화가 녹아 있다. 또 모험, 상실, 다툼, 동정, 구원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성배는 다산의 상징에서부터 구원의 상징까지 다양하게 해석된다.(144 페이지)

저자들은 우리는 때가 되면 아이들이 세상 속으로 나가서 우리가 줄 수 없는 것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113 페이지) 신화에서 영웅은 편안한 곳을 떠나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다.(123 페이지) 이상을 위해서 우리는 선과 미를 원하지만 이상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이룰 수 없는 것이다.

환상의 세계에 너무 오래 머문다면 바깥 세상에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상과 현실 감각을 모두 유지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지금 이곳에서 이루어지며 우리의 본모습은 현실 속의 나에게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129 페이지) 저자들은 4000년 전의 바빌로니아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를 세상의 역경에 맞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 같은 작품으로 설명한다.(130 페이지)

자기의 잠재력을 깨닫고 세상의 도전에 맞서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삶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이다.(135 페이지)

핀란드 서사시 '칼레발라(Kalevala)'의 영웅 베이네뫼이넨(Vainamounen)은 신비로운 존재이지만 인간으로서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느낀다. 그는 부적의 힘을 통해 원하는 여인을 손에 넣으려 한다. 종국에는 여인이 아니라 부적 자체가 더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베이네뫼이넨의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를 좇다가 곧 다른 것에 끌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139 페이지)

3부 '사랑에 관하여'에서는 사랑을 거부하는 이야기, 치명적인 삼각관계, 결혼의 실체 등이 이야기된다. 실패한 사랑의 주인공은 에코와 나르키소스이다. 나르시시즘의 기원인 미소년 나르키소스는 상대방을 보지 못하고 이제껏 사랑받아 온 과거에만 도취되었다. 상대방이 아무리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줘도 마음의 공허가 물밀듯 몰려오면 상대방을 잔인하게 몰아치기 마련이다.

나의 참모습을 상대방에게 들킬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에코는 자기가 꿈꾸는 이상과 사랑에 빠졌다. 건강한 자존감을 갖지 못하면 큰 상처를 받기 쉽다. 에코의 복수는 더 큰 슬픔을 불러왔을 뿐이다. 그녀는 이루지 못한 사랑과 분노에 갇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스러졌다. 에코와 나르키소스의 이야기는 모든 실패한 연인들의 이야기나 마찬가지다.(166 페이지)

저자들은 북유럽 신화의 게르다와 프레이르 이야기를 통해 상대방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장벽은 허물어지고 진정한 사랑이 싹틀 수 있다고 말한다.(201 페이지) 프레이르가 게르다의 마음을 얻은 것은 마법 무기도 황금사과도 아름다운 반지도 아니었다. 외로움에 대한 그녀의 두려움을 공략해 성공한 것이다.

4부 지위와 권력에서는 미노스 왕과 황소가 주목할 만하다. 미노스 왕의 이야기는 오이디푸스 이야기 만큼이나 드라마틱하고 교훈적이다. 제우스와 에우로페 사이에서 세 아들이 태어난다. 에우로페에게 연정을 품은 크레타의 왕 아스테리오스가 에우로페와 결혼하고 세 아들을 양자로 맞는다.

아스테리오스가 죽자 왕위를 두고 형제간 다툼이 벌어진다. 장자인 미노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계시를 보여달라고 기도한다. 포세이돈은 미노스가 왕위를 잇는 것이 신의 뜻임을 증명하기 위해 바다에서 황소를 보내겠다고 약속한다. 미노스는 왕권이 포세이돈에게서 온 것임을 인정하는 증표로 황소를 다시 신에게 바치겠다고 한 뒤 지키지 않았다.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를 바다에서 올라온 황소에게 정신 없이 빠져들게 했다. 파시파에는 장인 다이달로스의 도움으로 불타는 욕정을 해소했다. 다이달로스는 나무로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은 암소를 만들었고 파시파에는 이 나무 암소에 몸을 숨겼다. 황소는 가짜 암소에 속아 파시파에와 정을 통했다.

이 비정상적인 결합으로 태어난 인물이 미노타우로스이다. 미노스는 이 수치스러운 괴물을 숨기기 위해 다이달로스에게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거대한 미로를 만들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매년 아테네에서 아홉 명의 소년과 소녀를 잡아와 미노타우르스의 먹이로 주었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노타우르스를 죽이고 끔찍한 저주로부터 크레타를 해방시킨다. 이 이야기에서는 아리아드네의 실이 유명하다. 또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낙소스의 아리아드네란 오페라가 나왔다.

5부 인생의 통과제의에서는 욥 이야기와 파우스트 이야기, 부처의 깨달음 이야기가 주목할 만하다. 저자들은 구약의 신이 욥을 사탄에 넘겨준 이유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음을 지적한다. 고통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저자들은 그렇기에 세상의 불가사의 앞에 겸손해져야 하며 살면서 겪는 아픔과 상실, 그리고 의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결론짓는다.(291 페이지)

지적 허영심이 넘쳤던 파우스트는 흑마법과 연금술로 세상의 비밀을 풀려 했다. 이 계획이 어긋나자 절망에 빠진 파우스트는 지옥의 혼령을 부른다. 그의 소환을 듣고 서재에 홀연히 검은 개가 등장해 악령으로 변신하더니 스스로 메피스토펠레스라 칭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끊임 없이 파우스트의 영혼을 어둠의 세계로 끌고 가려 했고 파우스트는 세상의 비밀에 대한 메피스토펠레스의 지식을 얻고자 했다.

그들은 계약을 맺고 서명했다 피로 서명했다. 이 땅에서는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섬기고 다음 세상에서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를 섬기기로 한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가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았지만 파우스트는 자신이 치를 대가가 영혼을 영원히 포기하는 것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308 페이지)

저자들은 파우스트 박사의 이야기는 도덕에 관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면으로의 여정에 관한 것으로 파우스트 속 등장 인물은 모두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는 동전의 양면처럼 인간의 양면성을 반영한다. 남을 무시하고 삶을 무가치하게 여길 때 우리는 자신 안의 악령을 보게 된다. 삶에 환면을 느낄 때마다 메피스토펠레스를 소환하는 셈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단순한 악마가 아니다. 괴테의 희곡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영원히 악을 원하지만 선을 행한다." 우리는 내면의 악을 통해서 선으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311 페이지) 저자들은 부처의 깨달음에 관해 그는 평범한 인간이기보다 하나의 모범이라 말한다.(317 페이지)

저자들의 설득력 있는 설명을 통해 신화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고 의미로 충만한 모습으로 다가온 것은 특기할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이야기, 미노스와 아리아드네, 테세우스 이야기를 확실히 알게 되어 좋았다. 더구나 그리스 신화 뿐이 아니라 북유럽 신화, 성경 등 다양한 소스를 제시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가 막힐 때, 의미를 찾고 싶을 때 펼쳐볼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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