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1월 24일 선정릉(宣靖陵) 테마 해설 수업 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선생님(반* 선생님)과 주역(周易)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 줄곧 주역을 잊고 지내다가 오랜만에 해설서를 들추어보았습니다.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지지지지(知至至之) 지종종지(知終終之)’란 글에 눈길이 멈춥니다.
이를 데를 알아 이르고 멈출 데를 알아 멈춘다는 뜻이지요.
공자가, 망해가는 주(周)나라를 모델로 삼았다면 주희(朱熹)는 이미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주(周)의 봉건 제후들을 전범(典範)으로 삼았습니다.
부처 사후의 불교도들이 부재하는 부처를 예배해야 하는 어려움을 불상을 만들어 해결했듯 주희는 ‘주자가례(朱子家禮)’ - 조선이 궁궐 영건(營建)의 이상으로 삼았던 좌묘우사(左廟右祀), 전조후시(前朝後市) 등의 원칙의 출처이기도 한 - 를 저술함으로써 해결했지요.
제사의 중심을 사대부로 가져오고 범위를 4대 조상까지로 확대한 것입니다.
밝을 희(熹)자를 쓰는 주희(朱熹)가 그 밝음을 중화시키기 위해 그믐 회(晦)자를 써서 스스로 호를 회암(晦庵)이라 했다면, 세종대왕은 아들의 군호(君號)인 ‘안평(安平)’이 편안하고 태평하다는 뜻이기에 혹여 안이하고 게으른 마음을 갖지는 않을까 염려해 ‘비해(匪懈: 게을리 하지 않는다)’라는 호를 내렸습니다.
이제 5월이 되면 저는 마음으로만 그려오던 부암동 모처에서의 안평대군 강의를 들으러 갑니다.
휴일인 수요일 강의인데다가 시간이 7시에서 8시 30분까지로 잡혔기에 더할 수 없이 좋습니다.
계유정난때 형 수양대군에 의해 제거된 한(恨)의 인물인 안평은 시, 글씨, 그림, 거문고까지 두루 능했던 학자이자 예술가였지요. 이번 강의는 그런 안평의 매력에 푹 빠지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