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110층에서 내려다본 시선은 도시의 모든 곳을 다 볼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의 시선이며 그것은 관음증적인 신의 시선이다.
철학자 박영욱 교수가 ‘필로 아키텍처‘에 인용한 프랑스 철학자 미셀 세르토의 말이다. 흥미를 자극하는 논쟁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철학자가 건축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은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책에서 신을 관음증적인 존재로 묘사한 내용을 만나는 것은 희귀한 일이다.
신을 관음증적인 존재로 단언하기는 어렵겠지만 문학평론가 도정일 교수가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에서 한 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시각 쾌락의 원칙은 태초부터 하느님의 것이다. 하느님이 자신의 이미지를 따서 아담과 이브를 만들었을 때 그가 거둔 첫번째 성과는 시각적 즐거움(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두 남녀가 추락하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거적때기로 알몸을 가렸을 때 하느님이 진노한 이유는 그의 시뮬레이션에 발생한 변화가 그의 시각적 즐거움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이 박탈은 인간 추방의 충분한 사유가 된다.(‘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199 페이지)
관음증은 오래 전부터 미술, 문학, 정신분석 등의 주요 소재가 되어왔다. 그 관련 자료들을 충분히 둘러본다 해도 신이 관음증적인 존재인지를 해명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울 것이다.
다만 슬퍼하고 진노도 하고 후회도 하는 희로애락의 존재인 신을 관음증적인 존재로 볼 여지는 충분할 것이다. 어떤 분야의 어떤 책들을 읽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