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해설사 동기들과 함께 본 ‘매기스 플랜‘은 근 10년여만에 영화관을 찾아 직접 본 영화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특기할 만한데 내용까지 좋아 별 다섯개를 주고 싶다.

구체적으로는 퀘이커교도인 성숙한 여주인공(매기)과 지젝의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며 소설을 쓰는 인문학 교수인 남자 주인공의 가볍고 무책임한 인생 편력이 인상적인 영화였다고 기억하고 싶다.

오늘 한 페친의 타임라인에서 ‘매기스 플랜‘에 관한 인상적인 글을 읽었다.

영화평이 그런 것이 아니라 머리가 아파 영화를 보러가 ‘매기스 플랜‘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용이 이상해 보니 ‘퍼스널 쇼퍼‘라는 영화였다는 것이다.

이 일화(逸話)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는 페친이 나이 들어서 그러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십대 때부터 그랬다는 사실이다.

페친은 그 점을 다행으로 여겼다.

흥미 위주로서가 아니라 진지하게 보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어떤 점에서는 페친의 그런 착오가 지성있는 여자의 특징으로 여겨지기까지 해 어느 면 부럽기까지 하다.

나도 실수를 하지만 그것은 영감과 창의 등이 빚어내는 실수와는 거리가 멀어 불만스러운 탓이다.

어떻든 부가적으로 이 부분에서 ‘퍼스널 쇼퍼‘가 어떤 영화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매기스 플랜‘을 보았기에 당분간 다른 영화를 생각할 여력이 없는 나는 페친이 연출한 상황과 비슷한 구절이 있는 시를 생각하느라 시간을 썼다.

시인도 생각나지 않고 제목도 긴가민가해 한 동안 머리를 굴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떻든 결국 그 시는 한강의 시 ‘저녁 잎사귀‘였다.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밤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온 것은 아침이었다

한 백년 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내 몸이
커다란 항아리 같이 깊어졌는데

혀와 입술을 기억해내고
나는 후회했다

알 것 같다

일어서면 다시 백년 쯤
볕속을 걸어야 한다
거기 저녁 잎사귀

다른 빛으로 몸 뒤집는다 캄캄히
잠긴다

나로서는 아름다운 시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페친의 일화(逸話)에 힘입어 구체성까지 느낄 수 있게까지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일요일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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