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피노자를 좋아하게 된 배경이나 이유가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물론 미지의 것으로 보이는 남녀간의 호감도 헤아려보면 이유가 있으니 철학자를 좋아하는 데 이유가 없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는 어쩌면 스피노자 사상의 핵심인 신 즉 자연(神 卽 自然) 사상에 깊은 호기심을 가졌을 수도 있고 한 점의 군더더기도 없는 그의 담백한 성품에 매료되었을 수도 있다.

복잡하고 군더더기가 많은 감정들 사이에서 길을 잃기 잘하는 내가 스피노자에게서 느끼는 가장 큰 부러움은 인간의 감정을 기쁨과 슬픔이라는 두 가지 감정으로 분류한 그의 명쾌함이다.

물론 스피노자는 결코 평탄한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숱한 고난을 이겨낸 의지의 인물이었다. 그의 성(姓)이 ‘고통스러운 곳으로부터‘를 의미하는 포르투갈어 에스피뇨자(espinhosa)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시사적이다.

스피노자 전문가인 스티븐 내들러(Steven Nadler)에 의하면 스피노자 안에서 철학과 과학을 통해 세상의 더 넓은 지식을 찾으려는 욕구를 깨어나게 한 것은 교육에 대한 관심과 유대 공동체에서의 종교적 삶에 대한 불만족, 그리고 지적 호기심만이 아니다.

스피노자로 하여금 더 넓은 지식을 찾게 한 것은 평범한 직업이 가져다주는 허무함에 대한 깊은 의식, 그리고 진리에 대한 욕구였다.(‘철학을 도발한 철학자 스피노자‘ 211 페이지)

스피노자를 수행자와 같은 인물로 대하는 시선이 있는 만큼 신비와 은둔의 철학자로 대하는 시선도 있는 듯 하다.

주지의 사실인지 모르지만 스피노자는 지극히 합당한 이성(理性)의 눈을 가진 철학자였다. 그의 사랑론에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스피노자는 성적 매력에만 이끌리는 것을 욕정으로, 경제적 매력에만 이끌리는 것을 예속으로 규정한 철학자였다.

스피노자는 상대의 일부가 아닌 완전하고 큰 전체에 주목하는 사랑의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는 부분 대상이 아닌 인격적 전체를 사랑할 것을 강조하는 정신분석적 가르침(‘헬조선에는 정신분석‘의 한 필자인 정지은 교수)과 상통한다.

일과 사랑, 진리, 그리고 그것들 모두를 아우르는 삶이란 무엇일까? 실현되기 어려운 것(칼레파 타 칼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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