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상처라고 가르치는 정원은/ 밤낮없이 빛으로 낭자했어..˝ 장석남 시인의 ‘오래 된 상처‘라는 시의 한 부분을 펴본다.

시인은 오래 된 정원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데 ˝...몸이 아프고 아픔은 침묵이 그립고/ 내 오래 된 정원은 침묵에 싸여/ 고스란히 다른 세상으로 갔지...˝란 부분을 보면 시인이 말하는 정원이란 마음에 대한 은유로 쓰인 말인 듯 싶다.

정신분석 비평을 하는 박지영 시인에 의하면 시인들은 증상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다. 나로서는 정원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지만 마음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박지영 시인은 프랑스 이야기를 한다. 그 나라에서는 가족 중 누군가 죽으면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는 것이다.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속으로 삭이고 지나간다는 사실이다.(‘욕망의 꼬리는 길다‘ 93 페이지)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리라. 그런데 죽음 말고도 트라우마가 되는 것들은 많지 않은가.

박지영 시인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과 상담을 받기보다 손쉽게 점집을 찾는다고 말한다. 박지영 시인은 주역이나 역학에 관심을 갖는 것을 현실도피의 한 방편으로 본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현실도피의 한 방편임을 증거하기보다 아픈 사람들이 많음을 증거하는 말로 보고 싶다.

왜 삶은 아픔으로 가득한 것일까? 부정편향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프다. 그렇기에 존재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고통을 당함으로써 인식되는 자아는 강력한 자아가 아니라 어떻게 하든 자신을 잊어버리려 하고 애원하고 항의하는 자아˝이다.(박승찬 외 지음 ‘괴로움, 어디서 오는가‘ 182 페이지)

아픔에 잠식되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 휩싸인다는 말 만큼 리얼한 것은 없을 것 같다.

정신분석가 이승욱은 삶의 핵심과 관련된 고통일수록 단박에 잘라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 고통을 받아들여 친구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상처 떠나보내기‘ 264 페이지)

이 말은 ˝정신분석은 증상의 소멸이 아니라 주체가 증상과 화해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말(백상현 지음 ‘라깡의 루브르‘ 98 페이지)과 차원이 같다.

이런 논리가 다른 심리 분야에도 있는지 알 수 없다. 무엇을 권할 수 있을까?

최근 내가 읽은 심리상담 책 중 권하고 싶은 것은 명법 스님의 ‘은유와 마음‘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의도대로 조작할 수 없다는 은유의 실체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모든 저항을 뚢고 휘몰아쳐서 본심을 드러˝내게 하는 은유는 너무 강력해 내담자는 그에 빨려들어가 내가 해체됨으로써 깊은 무의식의 내용들이 드러난다고 한다.(‘은유와 마음‘ 118 페이지)

은유 스토리텔링은 내담자와 상담자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함께 은유를 확장시켜나가는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새로운 은유로 전환해 심리 문제를 해결하는 기법이다.(113 페이지)

권할 것이 아니라 내가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다. 굳이 권한다는 말을 하려면 문제를 드러내는 듯 감추는 나에 대해서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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